염증을 다스리는 사람이 더 오래 건강하게 산다[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편집자주 ...필자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뇌신경과학 분야를 연구한 학자이며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으로 의료계와 학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의학과 치의학의 경계, 장애인 치과, 지역사회 구강돌봄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칼럼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은퇴 후 황금 노후를 준비하는 어르신들에게 건강한 노후, 슬기로운 노후 준비를 위한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최근 노화 자체를 질병으로 보고 치료하려는 연구와 함께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거대 자본들이 '장수(Longevity)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다. 과연 오래 사는 것이 목표일까, 아니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목표일까.

현재 노화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인플라메이징'(Inflammaging)이다. 이는 '염증'(Inflammation)과 '노화'(Aging)를 합친 용어로, 나이가 들수록 우리 몸속에 오랫동안 낮은 수준의 염증이 지속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겉으로는 특별한 증상이 없지만 몸속에서는 지속적인 염증이 전신, 특히 혈관, 근육, 뇌, 면역계를 서서히 손상하고 있다. 실제로 심혈관질환, 당뇨병, 치매, 근감소증, 암과 같은 대표적인 노화 관련 질환에 만성 염증이 관여한다.

노화를 앞당기는 보이지 않는 적, 만성 염증

인류가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많은 자본과 시간을 투입해 첨단 신약과 유전자 치료 등 어렵게 방법을 찾고 있지만 우리 일상에도 이미 염증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규칙적인 운동은 염증물질을 감소시키고 면역 기능을 향상한다. 충분한 수면은 손상된 조직을 회복시킨다. 신선한 채소와 균형 잡힌 규칙적 식사는 내 몸의 산화 스트레스를 줄인다. 동네 공원에서 걷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활동 역시 스트레스 호르몬을 감소시켜 염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결국 건강한 장수는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일상에서 염증을 줄이는 생활습관을 얼마나 꾸준히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경기 의왕시 청계산에서 걷고 있는 어르신. (뉴스1DB) ⓒ 뉴스1 박세연 기자
우리 몸은 설탕 과잉에 취약하다

우리 몸의 진화 과정에서 단맛은 귀한 에너지원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단맛을 선호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봉지커피, 빵, 과자, 소스 등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설탕이 포함돼 있다. 과도한 설탕 섭취는 비만과 당뇨병뿐 아니라 만성 염증을 증가시키고 노화를 촉진하는 요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첨가당 섭취를 하루 총열량의 10% 이하, 가능하면 5% 이하로 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1인당 설탕 소비량이 증가할수록 충치 발생률도 함께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일본에서는 설탕 공급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어린이 충치 발생률도 함께 감소했고, 전쟁 이후 설탕 소비가 다시 증가하자 충치 역시 빠르게 늘었다. 많은 사람은 설탕을 얼마나 먹느냐에만 관심을 갖지만, 충치 발생에는 섭취량보다 섭취 빈도가 더 중요하다.

입안의 세균은 설탕을 먹고 산을 생성하는데, 이 산은 치아 표면의 무기질을 녹여 충치를 유발한다. 설탕이 입안에 들어오면 20~30분 동안 산성 환경이 지속된다. 그 때문에 하루에 설탕을 한 번 많이 먹는 것보다 소량이라도 여러 번 나눠 먹는 경우 치아는 반복적으로 산 공격을 받게 된다.

특히 사탕, 젤리, 탄산음료, 가당 커피와 같이 입안에 오래 남거나 자주 섭취하는 식품은 충치 위험을 많이 증가시킨다. 설탕은 구강 염증을 증가시키고, 이는 다시 전신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건강한 노후를 위해 설탕 섭취를 절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울시내 한 마트에 진열된 설탕.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장수의 출발점은 입 안의 염증 관리

구강은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세균이 존재하는 기관 중 하나다. 구강 염증이 지속되면 세균과 염증물질이 혈류를 통해 전신으로 퍼진다. 그 때문에 만성 치주염은 당뇨병, 심혈관질환, 폐렴, 치매, 암 등의 전신질환과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특히 고령자에게서는 구강 기능 저하와 구강 염증이 영양 상태 악화, 삼킴 곤란, 폐렴, 근감소증, 낙상 위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혈압과 혈당만 관리할 것이 아니라 구강 건강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머지않은 미래, 장수 기술은 분명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가장 쉽고 확실한 일상의 건강장수 전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몸속의 불필요한 염증을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모든 선택에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가 존재한다. 설탕이 주는 달콤함 뒤에는 염증이 있고, 현란한 장수 기술에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건강한 장수란 더 많은 것을 얻는 삶이 아니라 불필요한 염증을 줄이며 몸의 균형을 일상에서 지켜가는 삶이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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