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으로 잘 늙읍시다! [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사람들은 오래 사는 법을 묻는다. 더 젊어 보이는 법을 찾고, 노화를 늦추는 식단과 운동, 영양제도 챙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늙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화를 끝까지 밀어내고 부정할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이고 준비하며 설계할 삶의 과정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노후의 질은 달라진다.
요즘 노화와 관련된 말들이 많다. 건강노화(healthy ageing), 활동적 노화(active ageing), 저속노화, 항노화(anti-ageing) 등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관점과 맥락은 서로 다르다. 건강노화는 병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삶을 꾸려갈 기능과 환경을 지키는 데 무게를 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강조하는 활동적 노화는 사회적 참여와 역할을 중시하고, 항노화는 마케팅과 에이지테크(age tech) 산업의 색채가 강하다. 반면 학문적으로 정립된 성공노화와 '잘 늙어간다는 것'(ageing well)은 늙음에 저항한다기보다는, 늙어가면서도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것인가를 묻는 말에 가깝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 유행한 저속노화다. 이 말은 매력적이다. 조금만 더 절제하고 관리하면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약속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늙음을 회피하려는 불안과 공포가 숨어 있다. 노화는 질병처럼 치료하거나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다.
더구나 늙음은 홀로 오지 않는다. 늙으면 병이 따라붙고 죽음도 가까워진다. 인생의 네 가지 괴로움인 생로병사(生老病死) 가운데 세 가지가, 젊었을 때와는 달리 정신·신체적 여력이 줄어든 시기에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런데도 세상은 자꾸 더 늦게 늙고, 더 젊게 보이고, 더 오래 버티라고 재촉한다. 노화를 회피의 대상으로 밀어낼수록 노화에 대한 불안과 불편감은 더 커질 뿐이다. 살아가는 데 도움이 안 된다.
물론 '성공노화'라는 말이 불편한 이들도 있다.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잣대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잘 늙어간다'(ageing well)는 표현이 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주름 없이 늙는다는 뜻도 아니고,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건강한 노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도 남아 있는 기능을 지키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삶의 의미를 놓지 않는 상태, 남보다 젊어 보이는 삶이 아니라 내 삶의 조건 안에서 자립과 존엄을 지키는 삶이 곧 잘 늙어가는 삶이다.
성공노화는 성공한 사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니다. 큰 병이 없어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고, 끝까지 생산성과 젊음을 유지해야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면서도 삶의 리듬을 스스로 다시 조정해 가는 능력에 가깝다. 몸이 예전보다 느려졌다면 그 속도에 맞는 생활을 새롭게 만들고, 혼자 감당하기 버겁다면 기꺼이 기대고 의지하며, 과거의 역할을 내려놓았다면 또 다른 의미와 가치를 찾아 나서는 태도 말이다.
잘 늙는다는 것은 잃지 않는 기술이 아니라 잃어가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노년의 품격은 젊음의 연장이 아니라 삶의 변화에 대한 긍정적 수용과 적응에서 나온다. 유행하는 노화 관리법을 좇기보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읽고, 마음을 돌보며,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용기까지 갖출 때 비로소 노후는 잘 준비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천천히 늙느냐가 아니라, 변해가는 몸과 마음에 어떻게 품위 있게 적응하느냐다. 늙음을 인정한다고 해서 더 빨리 늙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 수용은 노화에 대한 적응의 출발점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보다 지금 남아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사회적 관계망을 더 촘촘히 가꿔가려는 생각과 행동이 필요하다. 그것이 성공적으로 잘 늙어가는 핵심 개념이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으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다. 오늘의 올바른 식사와 구강 관리, 꿀잠, 적당한 활동, 소중한 인간관계, 항상 배우려는 자세가 차곡차곡 쌓여 성공적으로, 그리고 잘 늙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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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필자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뇌신경과학 분야를 연구한 학자이며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으로 의료계와 학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의학과 치의학의 경계, 장애인 치과, 지역사회 구강돌봄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칼럼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은퇴 후 황금 노후를 준비하는 어르신들에게 건강한 노후, 슬기로운 노후 준비를 위한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