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보다 케어…일상의 구강 돌봄이 고령자 건강 지킨다 [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 고령자의 건강은 식사, 대화, 표정이라는 일상의 작은 움직임에서 무너진다. 그 출발점은 '입안'이다. 발음이 불분명해지고, 음식을 넘기기 어려워지며, 입냄새와 구강 통증을 호소하는 어르신이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구강 기능 저하를 의심해야 한다.

문제는, 일본에서는 질병으로 정의된 구강 기능 저하로 인한 증상들이 한국에선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간주되며 방치된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제를 문제인지 모르는 데 있다.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 2명 중 1명은 5개 이상의 약물을 동시에 복용하는 '다제약물'(polypharmacy) 상태에 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심부전, 골관절염, 우울증, 치매 등 다양한 만성질환을 관리하기 위해 복수의 약물이 병용되며, 여기에 건강기능식품까지 더해지면서 하루 10가지 이상 약을 복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러한 다제약물 복용은 약물 간 상호작용, 낙상 위험 증가, 인지 기능 저하, 구강건조증과 같은 부작용을 유발한다. 특히 침샘 기능을 억제하는 항우울제, 항히스타민제, 진정제, 이뇨제 등의 복용은 고령자의 구강 건강을 급격히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구강건조증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서 충치, 치주질환, 삼킴곤란, 구취, 심지어 흡인성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령자의 구강 관리, 방치하면 생명까지 위협
올바른 칫솔질 등 구강위생 관리법을 배우는 학생들. (뉴스1DB) ⓒ News1 공정식 기자

문제는, 초고령사회에서 고령자 스스로 적절한 구강 관리를 못 하는 데 있다. 칫솔질이 구강 관리의 다가 아니다. 구강 관리의 목표는 그날 생긴 치아에 붙어 있는 플라크뿐만 아니라 구강 점막에 붙어있는 바이오필름(생물막, 세균막)까지 그날 제거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비장애인의 10% 미만만 가능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치매, 뇌졸중, 파킨슨병, 와상 등 다양한 질환으로 인해 스스로 구강 관리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의 입안은 점차 '돌봄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결국 구강 관리는 방치된 문제’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로 진화하게 된다.

구강 돌봄의 부재는 전 세계적으로 고령자 건강에서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2년 발표한 '국제 구강건강 현황 보고서'(Global Oral Health Status Report)에서 전 세계 인구 중 약 35억 명, 즉 전체 인구의 45% 이상이 구강질환을 겪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공중 보건 문제임을 강조했다.

유럽연합 interRAI 국제 구강건강 평가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고령자의 구강 돌봄이 실패하는 원인을, 구강 기능 저하가 제대로 관찰되지 못하거나 돌봄 종사자의 인식 부족 때문이라고 보고했다. 이러한 국제적 경고와 근거는 구강건강이 고령자의 삶을 지탱하는 핵심 기반이며 구강 돌봄이 단순한 교육을 넘어 제도와 시스템 차원에서 접근돼야 함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위기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바로 요양보호사와 작업치료사, 치위생사 같이 현장에 있는 돌봄 종사자들이다. 어르신의 몸과 마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이들의 손에 의해 일상의 구강건강 관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재 대부분의 요양보호사 교육과정에서는 구강 관리 관련 교육 콘텐츠는 양적이나 질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구강 관리, 단순히 칫솔질 도와주는 게 아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구강 관리는 단순히 칫솔질을 도와주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입안이 건조하지 않은지, 치아의 플라크나 혀에 설태가 두껍게 끼어 있지는 않는지, 치아 손상이 있는지, 구강점막에 궤양은 없는지, 틀니는 잘 맞는지, 구취가 심해지진 않았는지, 입속에 통증은 없는지, 식사와 영양상태는 유지되고 있는지 등을 세심하게 살피는 일이 모두 구강 돌봄의 일부다. 이러한 기본적인 관찰과 기초적인 대응 능력만 갖춰도 많은 구강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다.

의학에서 '큐어'(cure)는 질병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기능을 회복시키는 치료 행위를 의미하는 반면 '케어'(care)는 질병 자체보다는 환자의 삶의 질, 일상 기능, 정서적 안녕을 유지하고 지지하는 데 초점을 둔다. 특히 고령자나 호스피스 환자처럼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 케어는 단순한 보조가 아니라 건강 관리의 중심 전략이 된다.

구강건강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충치를 치료하고 잇몸 속 플라크를 제거하는 큐어 중심의 접근에서 벗어나 매일 입 안을 살피고 침 분비를 유지하며, 식사와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케어 중심의 접근이 고령자의 존엄과 생존을 지키는 핵심이 된다.

정부는 장기요양보험의 질을 높이고 고령자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구강 관리와 관련된 정책은 그동안 매우 미흡했다. 다행히 올해부터 요양원 돌봄 종사자를 대상으로 연 2회 구강 관리 교육을 실시하도록 요양기관 평가 기준에 반영한 것은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이는 시작일 뿐이다. 구강 관리 표준 교육과정의 체계적인 마련, 구강 관리에 대한 인센티브 신설, 구강 관리 관련 복지 용구 항목의 확대, 현장 중심의 실습 교육과 구강 상태 평가 체계의 구축은 반드시 추진해야 할 다음 단계의 정책 과제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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