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렌토서티브·AI미래수석·돌봄의 미래…주목할만한 6월의 '3대 혁신'

이승규 K-헬스미래추진단 프로젝트 매니저

이승규 K-헬스미래추진단 프로젝트 매니저 = 새 정부가 출범한 2025년 6월, 불과 일주일 사이에 세 개의 이벤트가 연달아 발생했다. 6월 3일, 세계적인 의학 학술지 Nature Medicine은 AI가 설계한 폐섬유화증 치료제 ‘렌토서티브'(Rentosertib)가 임상 2a 시험에서 유의미한 치료 효과를 보였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6월 6일, 새 정부는 대통령실 조직 개편을 통해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 신설을 공식화했다.

국가AI정책은 물론 과학기술연구와 바이오, 인구정책과 저출생대응, 기후환경에너지 등 국가적 도전 과제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다. 그리고 6월 9일, 한국형 ARPA-H의 신규 프로젝트가 발표되었는데, 극초고령사회에 대비해 뇌인지기능 저하와 노쇠를 예방하기 위한 2개의 연구개발 과제가 포함되었다. 얼핏 보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세 개의 이벤트는 AI, 바이오 기술, 초고령사회라는 키워드를 연결고리 삼아 미래 복지국가의 방향을 새롭게 설계하려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이오 파운데이션 모델'(Foundation Model, FM)이라는 새로운 AI 기술 패러다임이 있다.

AI, 바이오 기술, 초고령사회라는 키워드는 복지국가 설계 밑그림

2025년 현재,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2050년이 되면 75세 이상 후기 고령층 비중이 24.5%에 도달한다. 전체 인구의 4명 중 1명이 75세 이상이 되는 극초고령사회(Hyper-Aged Society)로 접어든다. 고령 인구 자체가 ‘더 고령화’된다는 뜻으로, 일반적인 노화 문제에서 벗어나 복합적인 건강 문제와 돌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

문제는 노화, 그리고 노쇠의 발생이 단일한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치매와 같은 뇌인지기능 저하, 낙상‧근감소증‧다중이환‧극심한 허약 등으로 설명되는 노쇠(Frailty), 우울과 고립, 다약제 복용, 만성질환 등이 얽힌 건강 문제는 그 원인도, 양상도, 표현형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단일 질환 중심의 진단·치료 접근으로는 이러한 복잡성을 해결할 수 없다. 복잡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도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유전체, 단백질체, 뇌영상, 생체신호, 병원기록, 환경요인, 행동 데이터 등 멀티모달 데이터를 통합 학습해 다양한 분석과 예측 결과를 제시하는 바이오 파운데이션 모델이다.

6월 3일 발표된 렌토서티브 사례는 그런 변화의 신호탄이다. 이 치료제는 질병표적 발굴, 약물 설계, 작용기전 분석, 임상 시뮬레이션까지 전 과정을 AI가 주도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다. 다양한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학습한 AI가 인간 생리의 복잡한 패턴을 이해하고, 실제 신약을 설계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렌토서티브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Insilico Medicine은 멀티모달 AI 플랫폼 PandaOmics, Chemistry42 등을 기반으로 간섬유화증 치료제를 발굴해 미국과 중국에서 임상 2상에 착수했고, 최근에는 노화를 표적으로 삼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AI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질병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치료 전략을 설계하는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하면서 노화라는 복잡한 영역에도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술이 신약 설계를 넘어 ‘돌봄’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적용될 수 있을까? 6월 9일, 한국형 ARPA-H 프로젝트는 복잡한 고령화 문제를 다룬 두 개의 연구팀 모집 공고문을 발표했다. 첫 번째 과제는 뇌영상, 유전체, 행동정보, 생체신호, 환경정보 등 다양한 멀티모달 데이터를 통합하여 뇌인지예비력을 추정하고, 개인의 인지기능 저하 위험을 예측하는 뇌인지예비력 멀티모달 파운데이션 모델(BCR-MFM)을 개발하는 것이다. 진단 중심의 접근을 넘어, 사전에 위험을 예측하고 개입할 수 있는 예방 중심의 AI 돌봄 생태계를 설계하는 시도다.

두 번째 과제는 신체활동, 위험 요인, 사회적 연결망, 감정 상태 등 다양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노쇠 발생 위험도를 예측하고 예방 방법을 제시하는 노쇠 파운데이션 모델 (F-MFM)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 두 모델은 기술 개발을 넘어서 예측, 예방 개입으로 이어지는 의료-돌봄 연계 구조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AI 의료기술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다.

AI로 돌봄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혁신 주목해야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치매, 노쇠와 같은 복잡한 현상에 특화된 멀티모달 파운데이션 모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약 개발을 위한 단백질 구조 예측, 유전체 기반 질환 예측 등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뇌인지기능 저하 또는 노쇠와 같이 명확한 경계가 없고, 표현형이 불분명하며, 질병보다는 ‘상태 변화’에 가까운 복합 현상을 다루는 파운데이션 모델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이를 지역사회 기반의 예방적 서비스와 연계하여 실질적인 돌봄 체계를 설계하려는 시도는 한국형 ARPA-H의 두 과제가 사실상 유일하다. 이 점에서 한국은 AI 기반 복지국가의 방향을 가장 먼저 기술적으로, 정책적으로 실험하는 나라가 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6월 6일 발표된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 신설과 맞물려 국가적 전략으로 이어진다. 하위의 비서관 조직 구성에서 AI를 단순히 산업 기술이나 생산성 향상 도구로 보는 관점을 넘어서, 인구구조 변화와 복지 문제 해결의 핵심 요소로 삼겠다는 국가 전략의 변화 의도를 볼 수 있다. AI를 질병 진단이나 의료보조 기술에서, 돌봄이라는 복잡한 사회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사회적 혁신의 수단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인 동시에 가장 복잡한 문제를 가장 먼저 만나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위기는 가장 선도적인 기술 실험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바이오 파운데이션 모델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초고령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사회적 언어’이다. 그리고 그 언어를 바탕으로, 돌봄과 자기관리, 기술과 제도가 만나는 새로운 사회구조를 설계하는 실험이 지금 한국에서 막 시작되고 있다.

h991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