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크는 주사 아닙니다"…성장호르몬 처방 1600억, 칼 빼든 정부

식약처, 21개 품목 '위해성 관리계획' 적용…오남용 차단
중대 부작용 18배 ↑…"저신장 유발 질환자 위한 치료제"

지난 1일 대구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담임 선생님과 키를 재고 있다. ⓒ 뉴스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성장호르몬 주사는 '키 크는 주사'가 아니다.

자녀의 키 성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성장호르몬제가 '키 크는 주사'로 소비되는 현상이 확산하자 정부가 안전관리 강화에 나섰다.

처방 규모가 급증하고 중대 부작용 보고와 온라인 불법 광고까지 늘어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성장호르몬제가 특정 질환 환아를 위한 치료제인 만큼 단순히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3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식약처는 이달부터 소마트로핀 성분 성장호르몬제 8개 사 21개 품목에 대해 위해성관리계획(RMP)을 적용하는 등 안전관리를 강화한다. 성장호르몬제 사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과 주의 사항을 환자와 의료진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다. 제약사들은 환자용 사용 설명서와 의료전문가용 설명자료를 의료현장에 배포하고 이상 사례 수집·분석 결과를 정기적으로 식약처에 제출하게 된다.

성장호르몬제는 성장호르몬 결핍증, 터너증후군 등에 따른 소아 성장 부전과 특발성 저신장증 환아의 성장장애 치료를 위해 허가된 전문의약품이다.

다만 최근 자녀 성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성장호르몬제가 '키 크는 주사'로 소비되고 오남용 우려가 커지자, 안전관리 강화에 나선 것이다.

처방액 1600억 육박…부작용·불법 광고도 증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성장호르몬 주사 처방 건수는 2020년 89만 5011건에서 2024년 162만 1154건으로 81.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처방액은 596억 8100만 원에서 1592억 5400만 원으로 166.8% 늘며 처음으로 1500억 원을 넘어섰다.

부작용 보고도 증가했다.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성장호르몬 주사제 관련 부작용은 1809건 보고됐으며 이 가운데 중대 부작용은 165건이었다. 중대 부작용은 2020년 9건에서 2024년 165건으로 18배 이상 증가했다. 폐렴, 미코플라스마 폐렴, 충수염, 발열, 상태 악화 등이 보고 사례에 포함됐다.

온라인 불법 유통도 늘고 있다. 성장호르몬 관련 의약품의 온라인 불법판매·알선 광고 적발 건수는 2021년 2건에서 올해 8월 기준 111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 의원은 당시 "성장호르몬 주사는 성장호르몬 분비 장애 및 결핍 환자, 터너증후군 환자에게 처방돼야 함에도 '키 크는 주사'로 불리며 오남용되고 있다"며 "특히 중대 부작용과 온라인 불법판매 광고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복지부와 식약처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제도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약처는 성장호르몬제가 환자나 보호자가 직접 투여하는 자가 주사제라는 점도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 꼽았다. 올바른 투여 방법과 보관 방법, 발생할 수 있는 이상 사례 등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오남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작한 카드뉴스 중 일부. (식약처 제공)
저신장 대부분은 질병 아냐…"성장호르몬은 치료제"

전문가들은 키가 또래보다 작다고 해서 모두 성장호르몬 치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성장호르몬 결핍증이나 터너증후군 등 의학적 적응증이 확인된 환아를 위한 치료인 만큼 단순히 현재 키만 보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안문배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많은 부모가 아이의 키가 작으면 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만 저신장의 흔한 원인은 질병이 아닌 경우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의학적으로 저신장은 같은 연령·성별 집단에서 키가 300분위수 이하인 경우를 말한다. 또래 아이 100명 가운데 키가 작은 순서로 3명 안에 드는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평균 키보다 10㎝ 이상 작을 경우 저신장을 의심한다. 다만 현재 키가 또래보다 조금 작더라도 정상적인 성장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면 최종적으로 정상 성장 범위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부모의 키를 닮은 가족성 저신장이나 성장 시기가 늦은 체질성 성장지연은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안 교수는 "단순히 또래보다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검사나 치료가 개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아이의 성장 패턴을 장기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부모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최종 성인 키 역시 단순히 현재 키만으로 예측할 수 없다. 질병청은 부모의 키를 바탕으로 목표키를 추정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부모의 키는 자녀의 최종 성인 키를 예측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남아는 부모 키 평균에 6.5㎝를 더하고, 여아는 6.5㎝를 뺀 값을 기준으로 삼는다. 다만 실제 최종 성인 키는 영양 상태와 사춘기 시작 시기, 성장 속도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성장 기록과 골 연령 등을 함께 평가해야 보다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안 교수는 성장호르몬 치료가 필요한 대표적인 경우로 성장호르몬 결핍증, 터너증후군, 프래더-윌리증후군, 누난증후군, 만성 신부전, 부당경량아로 출생해 따라잡기 성장이 되지 않은 경우, 특발성 저신장증 등을 꼽았다.

특히 가장 흔한 원인인 성장호르몬 결핍증은 현재 키 백분위수뿐 아니라 성장 속도, 혈액검사, 골 연령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진단한다. 치료 대상 여부 역시 단순히 키만 재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 과정 전반에 대한 평가를 거쳐 판단한다.

안 교수는 "성장호르몬 치료는 단순히 키를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보호자가 자녀에게 주는 선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며 "저신장을 유발하는 특정 질환을 가진 환아들에서 성장호르몬 보충 없이는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한 치료"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장호르몬 치료의 효과는 치료가 필요한 경우 분명한 효과가 보고돼 있지만 질환이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최종 성인 키 성장을 보장하는 치료가 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키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다양한 건강기능식품이나 보조식품도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안 교수는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 건강한 생활 습관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규칙적인 수면과 운동, 균형 잡힌 식사 등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