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지역 필수 공공의료 + AI기본의료에서 R&D의 중요성
이창현 K-헬스미래추진단(한국형 ARPA-H 프로젝트) 필수의료 임무 PM = 2026년 8월 20일부로 국립대병원의 소관 부처가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되었다. 의료계는 이 과정에서 교육과 연구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지역·권역 기반 국립대병원 지원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함께 품고 있다. 의료인력 관련 의정 갈등이 일단락되고 지역 필수의료를 담당하던 많은 전공의가 복귀했지만, 필수의료 현장은 여전히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국립대병원 교수들의 업무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역 대학병원의 역할은 진료, 교육, 연구로 나뉘며,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사 인력 양성과 지역 필수 공공의료를 논의할 때 진료와 의학교육은 많이 강조됐지만, 연구는 상대적으로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분만 취약지". 어느새 우리 사회에 익숙해진 이 단어들은 지역 필수의료의 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의료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인구 감소 지역일수록 응급·외상·심뇌혈관·분만·소아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인프라가 먼저 무너진다. 환자는 골든타임을 놓친 채 먼 도시의 대형병원으로 이송되고, 지역 병원은 인력과 환자를 동시에 잃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동안 정부는 수가 개선, 인력 확충, 공공병원 지원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 왔다. 이러한 노력은 분명 필요하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책과 재정 투입만으로는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냉정한 진단이다. 의료 인력은 하루아침에 늘릴 수 없고, 늘어난 인력이 지역에 정착하도록 만드는 일은 더욱 어렵다. 부족한 자원을 나누는 방식의 접근만으로는, 줄어드는 인구와 늘어나는 고령 환자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부족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넘어, "기술로 의료의 생산성과 접근성 자체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그 답이 바로 지역 필수 공공의료 R&D다.
필수의료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사람과 시간의 부족' 문제다. 그리고 인공지능, 디지털 헬스, 로봇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돌파구를 제공한다.
첫째, 필수의료 R&D는 의료분야 인력의 한계를 보완한다. 한 명의 응급구조대가 같은 정보를 여러 차례 다른 병원들에 일일이 유선으로 연락하였다면 AI의 지원을 받아 동일한 정보를 일괄적으로 수용받을 여력이 있는 기관에 정확하게 분류하여 정보가 교류되고, 원격 협진 기술로 지역 병원 의료진이 상급병원 전문의의 판단을 실시간으로 공유받을 수 있다면, 같은 인력으로도 훨씬 두터운 안전망을 만들 수 있다. 의료진이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기록 업무를 AI가 분담하는 기술 역시 지역 의료기관의 인력난을 완화하는 실질적 해법이 된다.
둘째, 필수의료 R&D는 거리의 장벽을 허문다. 지역 환자가 반드시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이동해야만 받을 수 있었던 진단과 치료를, 기술을 통해 환자가 있는 곳에서 완결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지역완결형 의료'의 핵심이다. 응급환자의 중증도를 현장에서 신속히 판별하고 최적의 병원으로 이송하는 지능형 시스템, 지역 거점병원과 상급병원을 잇는 데이터 기반 진료 연계망은 지리적 격차를 기술로 상쇄하는 대표적 사례다.
셋째, 필수의료 R&D는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의 토대를 만든다. 재정 투입은 멈추는 순간 효과가 사라지지만, 한번 개발되어 현장에 안착한 기술은 계속해서 가치를 만들어낸다. 나아가 지역 의료 현장에서 검증된 혁신 기술은 바이오헬스 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져, 의료와 경제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을 이끌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혁신이 시장의 논리만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 필수의료는 수익성이 낮아 민간의 투자가 유입되기 어렵고, 기존의 성공률 중심 R&D 체계에서는 실패 위험이 큰 도전적 연구가 설 자리가 좁았다. 바로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출범한 것이 한국형 ARPA-H 프로젝트다.
미국 ARPA-H를 모델로 한 이 사업은 2024년부터 2032년까지 총 1조 원이 넘는 규모로, 성공 가능성보다 '성공했을 때의 파급력'을 기준으로 국가 보건의료 난제에 도전하는 임무 중심형 R&D다. 보건안보 확립, 미정복질환 극복, 바이오헬스 초격차 기술 확보, 복지·돌봄 개선과 함께 필수의료 혁신이 5대 임무의 한 축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지역완결형'이라는 방향성을 임무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필수의료 임무에서는 이미 구체적인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AI 기반으로 응급환자를 분류하고 지역 안에서 최적 이송을 완결하는 시스템 개발, 의료진의 감독 아래 진료·행정·연구 업무를 분담하는 헬스케어 에이전틱 AI 플랫폼, 수술 현장의 인력 부족을 보완하는 수술보조 휴머노이드 의료로봇, 전국 어디서나 수도권의 빅5병원들과 동일한 암진료 및 암 생존자의 치료 후 관리를 지역 기반으로 지원하는 AI 연결망 구축 등이 그것이다. 하나하나가 "지역에서도 생명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기술로 답하려는 시도들이다.
물론 R&D가 만능열쇠는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그것을 운용할 사람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장에 뿌리내릴 수 없다. 지역 필수의료의 회복은 인력 정책, 보상체계 개편, 의료전달체계 정비와 R&D가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술 혁신 없이는 이 모든 정책 수단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R&D는 필수의료 정책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위기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핵심 동력'이다.
국립대병원의 교수들이 진료이외에 대학병원의 핵심역할인 교육과 연구라는 업무에 자긍심과 책임감을 함께 가질 수 있도록 소관부처에서 더욱 노력하지 않는다면 지역의 또 다른 의료원들을 양산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국형 ARPA-H필수의료 임무는 지역의 국립대병원의 의료진들이 직접 지역에서 해결해야 할 난제들을 발굴하고 임무형 R&D로서 어떻게 난제들을 풀어야 할지에 대해 PM(Project Manager)과 같이 고민하면서 현장중심의 어려움들을 기술로써 극복하고자 한다.
어디에 살든 골든타임 안에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 지역의 환자가 자신이 사는 곳에서 진단부터 치료, 회복까지 완결할 수 있는 의료체계. 이것은 먼 이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R&D로 만들어가고 있는 가까운 미래다. 도전적인 연구에는 실패의 위험이 따르지만, 도전하지 않았을 때 치러야 할 대가는 국민의 생명이라는 값으로 돌아온다.
지역 필수 공공의료 R&D, AI 기본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지, 그리고 역량 있는 연구자들의 과감한 도전을 기대한다. 한국형 ARPA-H 필수의료 임무는 그 도전의 든든한 플랫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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