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 볼펜으로 꾹 '짭운자로' 맞아요"…비만인 울리는 '비만약값'
국내외 가격 차에 직구 수요 증가…상반기 불법 반입 4000건 넘어
"비만도 질병" 급여화 목소리…정부는 "다양한 의견 보며 검토"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매일 아침 볼펜으로 배를 한 번 찌르고 있어요. 마운자로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거죠.
20대 프리랜서 A 씨는 요즘 아침마다 볼펜 끝으로 배를 콕 찌른다. 실제 주사를 맞는 것은 아니다. 고도비만으로 체중 감량이 절실하지만 한 달 수십만 원에 이르는 비만치료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시작한 일종의 '정신 승리 다이어트'다.
A 씨는 "사실 넉넉하면 마운자로를 맞고 싶다"며 "약값이 부담돼 주사를 맞았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식사량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른바 '짭운자로', '마운자린고비'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마운자로를 맞는 대신 볼펜이나 손가락으로 배를 찌르며 식욕을 참는 방식이다. '웃픈' 유행처럼 소비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비만치료제 접근성 문제와 높은 약값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높은 약값은 해외 직구 수요 증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위고비와 마운자로 등 비만치료제 불법 반입 적발 건수는 4155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적발 건수(1189건)의 3.5배에 달하는 규모다.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국내에 출시된 이후 불법 반입 적발 건수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수입 요건확인 면제 추천서가 없으면 국내 반입이 불가능하다. 통관 과정에서 적발되면 전량 폐기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2024년 10월 관세청에 위고비, 마운자로 등 비만치료제 주사제의 개인 반입을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국내 허가 제품이 있는데도 정품 여부나 유통 경로를 확인할 수 없는 제품이 반입될 경우 건강상 위해가 발생할 수 있어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자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해외 구매를 시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격이다. 특히 비만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환자들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약값을 전액 부담해야 하는 만큼 가격 차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재 국내에서 마운자로는 4주분 기준 2.5mg이 약 29만~39만 원, 5mg은 38만~46만 원 수준에 처방되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마운자로가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인정돼 정부가 약값을 관리하고 있다. 일본 현지 판매가격은 4주분 기준 2.5mg이 1만 2000~2만 엔, 5mg은 1만 9000~3만 5000엔 수준이다. 100엔당 869원을 적용하면 각각 약 10만 4000~17만 4000원, 16만 5000~30만 4000원으로 국내와 비교하면 최대 20만 원 이상 가격 차가 나는 셈이다.
현재 마운자로를 처방받고 있는 한 비만 환자는 "비행깃값을 내고 일본에 가서 사 와도 더 싸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국내에서 구매한 마운자로를 '김치자로', 일본에서 구매한 제품을 '일본자로'라고 부르는 신조어도 생겼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가져올 수만 있다면 일본에서 여러 달 치를 한꺼번에 사 오고 싶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그러나 가격과 별개로 안전성 문제를 강조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안전성과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이 무분별하게 유입될 경우 건강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만 환자들 사이에서는 비만치료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와 마운자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는 모두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약물로, 현재 세마글루타이드 제제인 '오젬픽'은 당뇨병 치료 적응증에만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마운자로 역시 제2형 당뇨병 치료 적응증으로 건강보험 등재 절차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비만 치료 적응증에 대해서는 두 약물 모두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비만 환자들은 매달 수십만 원에 달하는 약값을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비만 치료제의 급여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만이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질환 등 각종 만성질환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히는 만큼 단순 체형 관리가 아닌 질환 치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GLP-1 계열 치료제는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체중 감량 효과뿐 아니라 심혈관질환과 지방간 등 다양한 질환에서 효과가 확인되고 있는 약물"이라며 "비만 역시 치료가 필요한 질환인 만큼 미용 목적이 아닌 의학적치료 목적에 한해서는 급여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비만치료제 급여화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비만치료제 급여 적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고 체중 감량 목적 약제에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 여러 의견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어 "건강보험 재정 상황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희귀난치질환 치료제 등 먼저 검토해야 할 과제들도 있는 만큼 다양한 의견을 보면서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sssunhu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