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깊은 곳 숨은 조종사 '부신'…다학제·숙련도, 치료성패 가른다[K-메디컬리포트]

부신 질환, 진단·치료 까다로워…'부신정맥채혈'은 성공률 40~95%로 편차 커
강북삼성병원, 부신다학제팀 운영…숙련된 의료진, 정확한 진단·치료 전략 수립

윤지섭 강북삼성병원 외과 교수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병원 제공)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신장(콩팥) 위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로 자리한 '부신'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선 장기다. 크기는 작지만 혈압과 신진대사, 면역,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각종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기관으로,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문제는 부신에 생긴 종양이나 기능 이상이 비교적 흔한 고혈압이나 비만, 당뇨병 증상과 비슷하게 나타나면서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는 기능성 부신종양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이고 장기 손상을 초래할 수 있지만 원인을 찾지 못한 채 혈압약만 복용하거나 체중 관리에만 매달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윤지섭 강북삼성병원 외과 교수는 "호르몬 이상으로 발생하는 기능성 부신종양은 조기에 진단해 치료하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질환도 많기 때문에 의심 증상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살이 찌고 혈압이 오른다?…원인은 부신일 수도

부신종양은 크게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는 '기능성 종양'과 호르몬 분비가 없는 '비기능성 종양'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기능성 종양은 분비하는 호르몬의 종류에 따라 증상이 달라진다.

대표적인 질환인 쿠싱증후군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되는 질환이다. 얼굴이 달덩이처럼 둥글어지고 팔다리는 가늘어지는 반면 복부 비만이 심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목 뒤에 지방이 축적되거나 배에 넓고 짙은 보라색 튼살이 생기고 쉽게 멍이 들거나 여성에게는 얼굴 털이 늘어나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단순 비만이나 노화에 따른 변화로 여겨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윤 교수는 "식이조절과 운동을 병행해도 체중이 계속 증가하고 특징적인 외형 변화가 함께 나타난다면 쿠싱증후군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혈압 조절 호르몬인 알도스테론이 과다 분비되는 일차성 알도스테론증 역시 대표적인 기능성 부신질환이다. 알도스테론은 체내 나트륨과 수분을 유지하고 칼륨을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이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면 혈압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동시에 혈중 칼륨 농도가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여러 종류의 혈압약을 복용해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거나 갑자기 고혈압이 발생한 경우, 또는 고혈압과 저칼륨혈증이 함께 나타난다면 단순한 본태성 고혈압이 아니라 부신질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 다른 기능성 종양인 갈색세포종은 카테콜아민을 과도하게 분비하면서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고 혈압이 급격히 상승하는 증상을 반복적으로 일으킨다. 두통과 심한 발한, 두근거림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 대표적이며 심한 경우 부정맥이나 심혈관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윤 교수는 "잘 조절되던 혈압이 특별한 이유 없이 다시 높아지거나 표준적인 약물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부신질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반복적인 두통과 발한, 심한 두근거림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양쪽 모두 종양'이어도 수술은 한쪽만…치료 방향 바꾸는 부신정맥채혈

부신질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종양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종양이 실제로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는지, 또 양쪽 부신 가운데 어느 쪽에서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지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같은 부신종양이라도 호르몬을 분비하지 않는 비기능성 종양이라면 정기적인 추적관찰만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반면 기능성 종양으로 확인되면 크기와 관계없이 적극적인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영상검사만으로는 부족하고 호르몬 검사와 함께 정밀한 기능 평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특히 일차성 알도스테론증처럼 양쪽 부신에 모두 결절이 보이는 환자에서는 CT만으로는 어느 쪽 종양이 원인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이때 시행하는 검사가 '부신정맥채혈'(Adrenal Venous Sampling·AVS)이다. 양쪽 부신에서 직접 혈액을 채취해 호르몬 농도를 비교하는 검사로, 호르몬이 어느 부신에서 과다 분비되는지를 확인하는 사실상 가장 정확한 검사로 꼽힌다.

윤 교수는 "기능성 부신종양은 호르몬 분비 여부와 분비 위치가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부신정맥채혈은 양쪽 부신의 호르몬 분비를 직접 비교하기 때문에 수술 여부와 절제 범위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사 자체는 결코 쉽지 않다. 부신정맥은 혈관 직경이 매우 가늘고 해부학적 구조도 복잡해 시술 난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국내 환자는 혈관이 상대적으로 작은 경우가 많아 숙련된 영상의학과 의료진의 경험이 검사 성공률을 좌우한다.

윤 교수는 "기관마다 부신정맥채혈 성공률이 40%에서 95%까지 차이를 보일 정도로 의료진 숙련도가 매우 중요하다"며 "한쪽이라도 정확하게 채혈하지 못하면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고 재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어 초기부터 경험이 많은 기관에서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검사 단계에서부터 여러 진료과가 함께 치료 방향을 논의하는 다학제 접근이 환자 예후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치료 까다로운 부신질환…경험 많은 의료진·다학제 협진이 치료 성패 좌우

부신질환 치료는 정확한 진단만큼이나 수술 경험과 다학제 협진이 중요하다. 부신은 몸속 깊은 곳에 위치해 간과 췌장, 비장, 신장, 하대정맥 등 주요 장기와 큰 혈관에 둘러싸여 있어 수술 난도가 높은 장기로 꼽힌다.

특히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는 갈색세포종은 수술 중 종양을 자극하는 순간 카테콜아민이 대량 분비되면서 혈압이 급격히 상승하거나 부정맥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종양을 제거한 직후에는 혈압이 급격히 떨어질 수도 있어 마취통증의학과를 포함한 의료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윤 교수는 "숙련된 술자는 부신 주변 혈관을 안전하게 박리하고 부신정맥을 적절한 시점에 처리해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예상하지 못한 응급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경험이 많을수록 보다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부신질환 치료에서 외과뿐 아니라 내분비내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이 함께 진단과 치료 계획을 논의하는 다학제 진료가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강북삼성병원은 외과와 내분비내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등으로 구성된 부신다학제팀을 운영하며 검사 결과를 함께 검토하고 진단부터 수술 여부, 치료 전략까지 공동으로 결정하고 있다. 부신정맥채혈이 필요한 환자는 영상의학과와 긴밀히 협력해 검사 결과를 해석하고, 기능성 종양으로 확인되면 수술과 이후 추적관리까지 연속적으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윤 교수는 "부신질환은 흔하지 않지만 진단이 늦어질수록 고혈압과 심혈관질환 등 다양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이나 반복적인 저칼륨혈증, 특징적인 외형 변화, 반복되는 두통과 발한 등이 있다면 단순한 체질 문제로 넘기지 말고 전문 진료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