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만이 답인 줄 알았어요"…'1308'이 바꾼 청소년 산모의 선택

위기임신보호출산제 시행 2년…심층상담 726명 중 409명 원가정 양육
상담부터 의료·복지 연계까지…경제적 지원 확대·사각지대 해소 과제

서울의 한 영아일시보호소에서 한 직원이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부모님께 임신 사실을 말씀드리면 저와 인연을 끊으실 것 같았어요.

청소년이던 A 씨는 임신 사실을 확인한 뒤 가장 먼저 부모를 떠올렸다. 겨우 다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한 부모가 자신을 외면할까 두려웠다.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아이를 직접 키우기보다 입양을 보내는 것이 자신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믿었다.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던 A 씨가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한 곳은 위기 임신부 상담 전화 '1308'이었다. 위기임신보호출산제에 따라 운영되는 상담망이다. 상담사는 먼저 괴로워하던 A 씨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너만의 잘못은 아니야."

그 말은 입양을 결심했던 청소년의 마음을 조금씩 바꿨다. 출산 뒤 숙려기간 동안 아이를 직접 돌본 A 씨는 결국 원가정 양육을 선택했다. A 씨는 "상담이 없었다면 아이를 데려올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위기임신보호출산제가 시행된 지 2년. 제도는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출산과 양육을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 임신부가 상담을 통해 출산과 양육, 입양 등 다양한 선택지를 충분히 검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됐다. 상담을 통해서도 직접 양육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의료기관에서 가명으로 산전 진료와 출산을 하고 국가가 아동 보호 절차를 연계하는 '보호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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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부터 의료·복지 연계까지…위기 임신부 돕는 '1308'

위기임신보호출산제는 위기 임신부가 혼자 출산을 결정하거나 감당하지 않도록 상담부터 의료, 복지까지 공적 지원체계를 연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전국 17개 위기 임신부 지역상담기관과 상담 전화 '1308'을 운영하며 임신부터 출산, 양육까지 전 과정을 함께한다.

상담 기관은 위기 임신부에게 출산과 양육, 입양 등 가능한 선택지를 안내하고 개인별 상황에 맞춰 의료비 지원과 한부모가족복지시설 입소, 생계·주거 지원, 심리·법률 상담 등을 연계한다. 상황에 따라 의료비와 숙려 기간의 양육비를 지원하고 민간 자원과 연계한 생계비와 주거비, 양육 물품 지원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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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시행 이후 상담은 위기 임신부들의 선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제도가 시행된 2024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위기 임신부 4251명이 총 1만 8088건의 상담을 받았고 심층 상담을 받은 726명 가운데 409명은 원가정 양육을 선택했다. 보호 출산 신청은 253건이 접수됐고, 상담을 통해 47건이 철회되면서 최종 보호 출산은 206건으로 집계됐다.

입양을 생각했던 A 씨 역시 상담을 통해 다른 선택지를 알게 됐다. 그는 "그때는 누군가 내 결정을 지지해 주고 임신 기간을 잘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른이 가장 필요했던 것 같다"며 "아이를 보면서 '무조건 다시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계획 없이 아이를 데려오는 것은 아이에게도 무책임하다고 생각해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든 뒤 다시 데려왔다"고 했다. A 씨는 현재 한부모가족복지시설에서 아이를 키우며 아이 돌봄과 생활 지원, 주거 지원, 직업훈련 등을 받고 있다.

"보호 출산이 목적 아니다"…상담이 바꾼 선택

위기임신보호출산제 시행 이후 현장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으로 꼽히는 것은 위기 임신부들이 '혼자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상담을 통해 출산과 양육, 입양 등 가능한 선택지를 충분히 안내받고 필요한 의료·복지 지원을 연계 받으면서 원가정 양육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늘고 있다.

김은지 1308 위기 임신부 강원지역상담기관 팀장은 "예전에는 베이비박스로 보내졌을 아이들이 이제는 의료기관에서 보호 출산을 통해 안전하게 태어날 수 있게 됐다"며 "갑작스럽게 출산이 임박한 위기임신부들도 1308을 통해 병원과 연결되면서 산모와 아이 모두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상담을 통해 보호 출산을 선택한 뒤 다시 원가정 양육으로 마음을 바꾸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청소년 위기 임신부들은 처음에는 부모의 반대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임신중절이나 보호 출산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지만 출산 이후 아이를 직접 돌보고 상담을 이어가면서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는 설명이다.

김 팀장은 "청소년들은 아이를 키우고 싶어도 부모의 반대로 임신중절이나 보호 출산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기를 출산한 뒤 직접 양육해 보면 아이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애착이 생기고 양육 중인 다른 엄마들을 보며 '나도 키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 보호 출산을 철회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상담 현장에서는 보호 출산을 신청했다가 원가정 양육으로 돌아선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김 팀장은 지난 1월 출산을 앞두고 보호 출산을 신청했던 한 위기 임신부의 사례를 소개했다. 당시 내담자는 채무가 많아 출산 직후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며 보호 출산을 결심한 상태였다. 하지만 상담 기관은 산후조리원 비용을 지원하고 숙려기간 동안 충분히 고민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친모와도 다시 상의해 볼 것을 권유하며 지속해서 상담을 이어갔다.

결국 내담자는 가족과 충분히 상의한 끝에 원가정 양육을 선택했다. 현재도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후회는 없다"는 뜻을 전했다고 김 팀장은 소개했다.

이기일 전 보건복지부 1차관과 신영숙 전 여성가족부 차관이 위기임신 보호출산제 시행 첫 날인 지난 2024년 7월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약국에서 위기임신부 통합 상담전화(1308) 관련 홍보물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 이승배 기자
출산 이후가 더 중요…"양육 이어갈 지원 필요"

제도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출산 이후까지 이어지는 지원체계를 더욱 촘촘히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팀장은 위기 임신부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어려움으로 경제적 부담을 꼽았다. 임신 중에는 입덧과 신체 변화,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겪고 출산 후에는 양육과 주거, 생계 부담이 한꺼번에 몰리는 만큼 의료비 지원을 넘어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족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위기 임신부를 위한 보완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가족의 지지가 없는 한부모 가운데는 수급 대상도, 법적으로 한부모 지원 대상도 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다"며 "출산 지원시설이나 양육지원시설에 입소하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산모와 아이는 여전히 위험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 교육을 통해 미숙한 부모로 인한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조부모 양육이나 다양한 양육 지원제도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알릴 필요가 있다"며 "아직도 국민행복카드를 발급받지 않거나 산전 진료를 받지 않은 채 출산을 위해 병원을 찾는 산모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