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건강] 누웠는데 천장이 핑핑…하루 넘는 어지럼증 '전정신경염' 의심해야
갑작스러운 회전성 어지럼·구토·균형장애 대표 증상
뇌졸중과 감별 중요…"계속 누워 있으면 회복 늦어져"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누웠는데 천장이 핑핑 돌았어요. '뇌가 잘못된 건가' 싶고 무섭더라니까요.
최근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던 40대 직장인 K씨는 퇴근 후 갑자기 세상이 빙빙 도는 듯한 어지럼을 느꼈다.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싶어 침대에 몸을 뉘었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도 어지럼은 그대로였다. 결국 병원을 찾은 K씨가 받은 진단은 '전정신경염'. 의사는 "귀에 감기가 온 것과 비슷하다"며 증상을 완화하는 약을 처방했지만 이젠 업무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지는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K씨는 결국 약을 중단했고, 한동안 심한 어지럼을 견뎌야 했다.
K씨처럼 갑작스럽게 시작된 심한 어지럼이 하루 이상 이어진다면 '전정신경염' 가능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전정신경염은 이석증, 메니에르병과 함께 대표적인 말초성 어지럼 질환으로 꼽히지만 초기에는 뇌졸중과 증상이 비슷해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다.
이선욱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전정신경염은 평형기능을 담당하는 내이와 전정신경에 모종의 원인으로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질환"이라며 "세상이 빙빙 도는 회전성 어지럼이 하루 이상 지속되고 메스꺼움과 구토, 균형장애가 함께 나타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전정신경염은 흔히 '귀에 감기가 들었다'고 표현된다. 그러나 실제 원인은 생각보다 복합적이다. 과거에는 헤르페스 바이러스 재활성화에 따른 염증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내이 혈류 장애나 자가면역 반응 등 다양한 기전이 제시되고 있다.
이 교수는 "최근에는 전정신경염의 원인이 단순한 감염이나 염증만은 아니라는 연구가 이어지면서 학술적 진단명도 '급성 한쪽 전정병증'(Acute Unilateral Vestibulopathy)으로 바뀌고 있다"며 "원인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기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환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교수 연구팀은 일부 환자에서 신경세포막의 강글리오사이드를 표적으로 하는 자가면역 항체가 전정신경 손상과 관련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외부 병원체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항체가 오히려 전정신경을 공격해 어지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표 증상은 갑자기 시작되는 회전성 어지럼이다. 환자들은 "세상이 빙빙 돈다", "몸이 한쪽으로 쏠린다", "가만히 있어도 중심을 잡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심한 메스꺼움과 구토가 동반되고 걸을 때 몸이 한쪽으로 기울거나 안구가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안진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교수는 "이석증은 고개를 돌리거나 누웠다 일어나는 등 특정 자세에서 1분 미만의 짧은 어지럼이 반복되는 질환이라면 전정신경염은 체위와 상관없이 하루 이상 지속되는 심한 어지럼이 나타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메니에르병과도 다르다. 메니에르병은 어지럼과 함께 귀가 먹먹하거나 이명, 청력 저하가 반복되지만 전정신경염은 청각 증상이 대부분 단발성으로 발생해 수일에 걸쳐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전정신경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뇌졸중과 감별하는 일이다. 이 교수는 "급성 어지럼 환자의 약 10%는 소뇌나 뇌간 뇌졸중이 원인"이라며 "고령이거나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이 있거나 복시, 발음 이상, 한쪽 팔다리 마비 같은 증상이 동반되면 즉시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단은 병력 청취와 신경학적 진찰을 시작으로 안구 움직임과 전정 기능을 평가하는 두부충동검사, 온도안진검사, 회전의자검사, 전정유발근전위검사 등을 시행한다. 필요하면 뇌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졸중 여부도 확인한다.
이 교수는 "어지럽다는 증상 하나만으로 질환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전정 기능과 뇌신경 기능을 함께 평가해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치료는 급성기와 회복기로 나뉜다. 급성기에는 항어지럼제와 항구토제, 수액 치료 등을 시행한다. 일부 환자에게서는 스테로이드 치료를 고려할 수 있지만 효과에 대한 의학적 근거는 아직 충분히 확립되지 않았다.
다만 약을 오래 먹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 교수는 "항어지럼제를 장기간 사용하면 뇌가 균형을 다시 맞추는 '전정 보상' 과정이 늦어질 수 있다"며 "증상이 조금 가라앉으면 가능한 한 빨리 움직이고 전정 재활을 시작하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심한 어지럼은 대부분 3~5일 안에 완전 또는 부분 호전되지만 몸이 흔들리는 느낌이나 불안정감은 수주에서 2~3개월 이어질 수 있다.
이 교수는 "증상이 조금 가라앉으면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가급적 이른 시기부터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며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한 채 고개를 좌우로 돌리거나, 앉았다 일어나기, 벽이나 보호자를 잡고 걷기 같은 전정재활 운동을 단계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식사, 과로와 음주를 피하는 생활도 회복에 도움이 된다"며 "어지럼 때문에 불안이 커질수록 증상을 더 심하게 느낄 수 있는 만큼 회복 과정을 이해하고 꾸준히 재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sssunhu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