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버려지던 '뱃살'의 환골탈태,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폐지방 재활용 시대 열렸지만…원료 독점·환자 권리 공백 우려
산업 육성과 윤리적 안전장치, 시행령에 함께 담겨야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산 니콜라스 데 로스 가사스에서 한 비만 남성이 건강 개선을 위해 축구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매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소각되던 '지방흡입 폐지방'이 마침내 합법적인 바이오 원료로 대접받게 됐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은 그동안 의료폐기물로 분류돼 버려지던 인체유래 지방을 재생의료, 화장품 등의 신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버려지던 뱃살'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바이오 업계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게 됐다는 기대감이 크다. 실제로 국내 첨단재생의료와 바이오소재 산업에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그러나 장밋빛 청사진에 섣불리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너무나 큰 맹점이 있다. 이번 법 개정이 자칫 특정 대형 의료기관의 배만 불리는 '특혜의 판'이 되거나 정작 원료를 제공한 국민의 권리는 철저히 소외되는 기형적 구조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짚어볼 부분은 원료 공급 구조다. 인체 유래 지방은 공장에서 찍어낼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오직 사람의 몸을 통해서만 조달이 가능하다. 상당한 수술 건수와 보관·관리 체계를 갖춘 대형 지방흡입 전문병원이 시장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크다. 이미 업계에서는 지방 유래 바이오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어둔 거대 의료기관이 시장을 선점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물론 규모 있는 의료기관이 시장을 선도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다만 원료 공급이 일부 기관에 과도하게 집중되거나 특정 기업과의 독점적 공급 구조가 형성된다면 자금력과 인프라가 부족한 중소 의료기관과 신생 바이오 벤처기업들은 출발선에 서보지도 못한 채 고사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 육성'이라는 법 개정의 취지가 무색하게 대형 병원의 '지방 권력화'라는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는 의미다.

더 중요한 문제는 '환자의 권리'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지방이 누군가의 화장품이 되고 치료제가 되어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창출할 때 정작 원료를 제공한 환자는 철저한 '원료 제공자'로 남는다.

현재 국회에는 환자 동의 없는 잔여검체(치료·진단 후 남은 조직·세포·혈액 등) 활용을 막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지방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내가 돈을 내고 수술을 받아 나온 부산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기업의 이윤 추구 도구로 쓰인다면 이를 납득할 국민은 얼마나 될까.

이제 공은 하위 법령을 설계할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넘어갔다. 앞으로의 1년이 관건이다. 정부는 재활용 대상 의료기관의 범위와 원료 관리 기준, 환자 동의 절차와 추적관리 방안까지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특정 업체에 특혜가 돌아가지 않도록 공정한 공급 체계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산업 활성화와 윤리적 안전장치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갖춰야 할 두 축이다.

'버려지던 폐지방'이 미래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자원이 되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출발점은 산업 육성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여야 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산업 육성 정책이라도 '공정'과 '윤리'라는 기초 공사가 부실하면 모래성에 불과하다. 버려지던 폐지방이 미래 바이오산업의 자원이 되는 길목에서, 국민의 신체 유래물이 특정 거대 병원의 '황금 양식장'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정부의 엄격한 '원칙과 기준'이 시행령 제정 과정에 고스란히 담기기를 기대한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