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태울 거야" 또 목숨 잃은 간호사…'태움'이 계속되는 이유

특수한 조직문화에 인력난 겹쳐 악습 반복…미국의 2~3배 환자 맡아
정부도 재발방지 대책 착수…현장선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촉구

지난 2022년 경기도의 한 대학교 나이팅게일 선서식에서 간호대학 학생들이 촛불의식을 하고 있다. ⓒ 뉴스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죽을 때까지 태울 거야.

경기 광주의 한 병원에서 근무했던 강수빈 간호사가 선배 간호사들의 지속적인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강 씨는 생전 병원 측에 피해를 여러 차례 호소했지만, 실질적인 분리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일부를 인정했음에도 병원은 가해자로 지목된 간호사에게 훈계 처분만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이번 사건이 처음은 아니라는 반응이 나온다. 2018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으로 '태움'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뒤에도 비슷한 사건은 반복됐다. 현장에서는 폭언과 인격모독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지만, 태움을 개인의 일탈이 아닌 조직문화와 근무환경이 맞물린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반 회사와 다른 문화…'태움'으로 변질된 '도제식 교육'

현장 간호사들은 간호 업무는 일반 직장과는 다른 특수한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일반 사무직은 실수를 바로잡으면 되지만 간호사는 작은 실수 하나도 환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어 선배가 후배의 업무를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현장에서 직접 가르치는 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 씨는 "일반 행정직은 보고서에 오타가 나면 다시 고치면 되지만 간호사는 작은 실수 하나가 환자 생명과 연결된다"며 "인계를 받을 때도 수액이나 약물 하나까지 다시 확인하고, 다음 근무자도 또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를 살리기 위해 꼼꼼하게 확인하고 가르치는 문화 자체는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그 과정이 폭언이나 인격적인 모독으로 이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간호사 출신인 박민숙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은 태움의 배경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온 도제식 교육 문화를 꼽았다.

박 부위원장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업무 특성상 선배가 후배를 엄격하게 가르치는 도제식 교육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며 "'될 때까지 가르친다'는 방식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것이 잘못된 방식으로 굳어지면서 태움이라는 악습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도 30년 전 신규 간호사 때 선배들에게 '머리는 왜 달고 다니냐'는 말을 들으며 배웠다"며 "그런 문화를 중간에서 끊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선배가 당한 방식이 후배에게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그런 방식이 당연한 교육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며 "간호 업무를 제대로 가르치면서도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21년 공공운소노조 의료연대본부 소속 김혜정 간호사가 네온사인이 빛나는 종로 유흥가에 새해 소원을 들고 선 모습. ⓒ 뉴스1 신웅수 기자
인력난이 태움 키웠다…"해법은 '환자당 간호사 수' 법제화"

다만 현장에서는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태움을 근절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해지려면 충분한 간호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 부위원장은 "선배 간호사는 담당 환자를 보면서 신규 간호사 교육까지 함께 맡는다"며 "환자를 돌보는 업무와 교육을 동시에 해야 하니 노동 강도는 두세 배로 커지고 결국 모두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 씨도 "업무가 조금만 여유로워도 후배를 차분하게 가르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환자 수가 많고 업무가 몰리다 보니 현장에서는 모두가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병원의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해외 주요국보다 훨씬 많다. 박 부위원장에 따르면 미국은 일반병동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5~6명, 중환자실은 1~2명을 담당하지만, 국내 상급종합병원은 교대근무 기준 12~15명, 일반 종합병원은 20명 이상, 일부 중소병원은 40명 안팎까지 맡는 경우도 있다.

박 부위원장은 "2018년 태움 논란 이후 정부가 교육전담간호사 제도를 도입했지만 병원별 인원은 5~15명 수준에 불과하다"며 "간호사가 700~800명이고 신규 간호사도 매년 300~400명씩 들어오는데 이 정도 인력으로는 제대로 된 교육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번 사건 이후 태움 방지 대책을 다시 점검하고 직장 내 괴롭힘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간호인력지원센터를 통한 심리상담과 노무·법률 자문, 교육전담간호사 배치, 3개월 이상 신규 간호사 교육기간 확보, 간호인력 배치 확대와 다양한 근무 형태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같은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교육전담간호사 제도는 이미 운영되고 있지만 현장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고 근본적으로는 적정 간호인력 확보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대한간호협회도 이번 사건 이후 환자당 간호사 배치기준 법제화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협회는 적정 인력 배치가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며 간호법 개정을 통해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마련하고 간호인력지원센터 기능 강화와 교육전담간호사 제도 확대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정부와 국회를 향해 간·정 협의체를 조속히 구성해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간협 관계자는 "이번 사건 역시 만성적인 간호사 부족에서 비롯된 직장 내 괴롭힘"이라며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적정 인력 배치가 이뤄져야 교육전담간호사 제도도 제대로 운영될 수 있고 교육받는 간호사와 가르치는 간호사 모두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며 "결국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 태움을 끊는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