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길바닥에 나뒹군 프로포폴 약병…식약처, 의료용 마약류와 전면전

[병원 문을 넘은 마약]① 반복되는 프로포폴 오남용·불법 유출
징벌적 과징금·명단공표 추진…AI 기반 365일 상시 감시체계 구축

편집자주 ...마약은 병원 문 앞에서 끝나지 않는다. 반포대교 추락사고와 동물병원 유출 사건은 치료의 공간이어야 할 병의원이 어떻게 프로포폴의 온상으로 돌변할 수 있는지 묵직한 경고음을 울렸다. 이에 정부는 처방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오남용 의심 기관을 상시 추적하는 하반기 고강도 대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6월 26일, 세계 마약퇴치의 날을 맞아 뉴스1은 일상 속 의료용 마약의 그늘을 걷어낼 전방위적 대응 로드맵을 집중 조명한다.

29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열린 수면마취제 불법 반출 간호사 및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허위보고 의사 적발 브리핑에서 불법 반출한 수면 마취제를 공개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4.29 ⓒ 뉴스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지난 14일 밤, 서울 서초구 신논현역 8번 출구 앞 도로변. 30대 여성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곁에 떨어진 쇼핑백에서는 전신마취제 '프로포폴' 약병과 주사기가 쏟아져 나왔다.

신고자가 경찰에 전한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여성이 길바닥에서 비틀거리며 주사기에 있는 하얀 액체를 꺼내 자꾸 (몸에) 꽂으려 했다는 것이다.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도 직접 주사를 투약하려 했다는 목격담도 잇따랐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여성의 정체는 인근 피부과 직원으로 확인됐다. 엄격히 통제되어야 할 의료용 마약류가 병원 문을 넘어 강남 한복판 길바닥에 그대로 노출된 순간이었다.

의료용 마약류 유출과 그로 인한 비극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월에는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빼돌린 40대 간호조무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2월에는 간호조무사가 무단 반출한 프로포폴을 투약한 운전자가 포르쉐 차량을 몰고 반포대교 아래로 추락하는 대형 사고를 냈다.

실제 정부의 단속 실적도 이러한 심각성을 뒷받침한다. 19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프로포폴 등 오남용이 의심되는 의료기관 57개소를 집중 점검한 결과, 23건을 수사 의뢰하고 20건에 대해 행정처분을 요청했다. 마취제와 식욕억제제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점검 대상 307곳 중 75곳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적발된 행태는 은밀하고 대담했다. 한 의원은 환자에게 체중이나 투여 시간 등 아무런 근거도 없이 1년간 13회에 걸쳐 프로포폴을 반복 처방했다. 또 다른 강남의 피부과 의사는 별다른 시술 근거 없이 단 10개월 동안 한 환자에게 프로포폴 2000ml를 10회에 걸쳐 무차별 투약하기도 했다. 이 환자는 해당 의원을 포함해 무려 18개 병원을 돌며 '의료 쇼핑'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치과 시술 대신 영양수액에 미다졸람과 프로포폴을 섞어 투약해 준 치과의사도 적발됐다.

지난 2월 25일 오후 8시 44분쯤 반포대교에서 주행하던 포르쉐 차량이 강변북로를 주행 중이던 벤츠 차량 위로 떨어진 뒤 잠수교까지 추락해 운전자를 포함한 2명이 다치고 차량 4대가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사고를 낸 포르쉐 차량에서 프로포폴 주사제와 진정마취용 약물, 일회용 주사기 등을 발견하고 운전자인 30대 여성 A 씨를 이날 자정 40분쯤 긴급체포했다. (용산소방서 제공)2026.2.26 ⓒ 뉴스1
'징벌적 과징금·명단 공표'…하얀 가운 뒤의 불법 거래 끊는다

이처럼 '하얀 가운' 뒤에서 일어나는 오남용과 불법 유출의 고리를 단호히 끊어내기 위해 지난 18일 식약처는 '2026년 하반기 마약류 안전관리 추진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단순한 사후 적발을 넘어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묻고 상시 감시망을 촘촘히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가장 강력한 카드는 '징벌적 과징금제도'의 도입이다. 식약처는 치료 목적 외에 고의로 투약하거나 마약류를 외부로 무단 유출하는 등 중대한 위반 행위를 저지른 의료기관에 대해 기존 업무정지 처분 외에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불법 행위로 얻은 경제적 이익을 웃도는 수준의 과징금을 물려 범죄 유인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식약처는 연내 국회 통과와 시행을 목표로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대한 위반 행위를 저지른 마약류 취급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명단 공표 제도'도 도입된다. 도난·유출 등 종업원 관리가 미흡한 의료기관에 대한 처분도 강화된다. 종업원 지도·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경우 업무정지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려 책임을 강화할 방침이다.

수사 역량을 높이기 위한 장치도 마련된다. 현재 최대 3억 원인 신고보상금은 범죄 발각 이전 신고자뿐 아니라 범인 검거에 필요한 중요 단서를 제공하거나 수사에 협조한 사람까지 지급 대상이 확대된다.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 도입에 맞춘 세부 절차도 마련된다.

분석 기간 '3주에서 3일'로…365일 멈추지 않는 AI 감시망

정부 대책의 또 다른 핵심 축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촘촘한 감시망 구축이다. 식약처는 연내 마약류 오남용 통합감시시스템(K-NASS) 구축을 완료할 예정이다. K-NASS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에 축적된 10억 건 규모의 처방·유통 데이터를 분석해 마약류 오남용과 불법 사용·유통을 사전에 탐지하는 시스템이다.

그동안은 분석 요원이 직접 데이터를 선별·분석해야 해 감시 대상을 선정하는 데만 2~3주가 소요됐다. 하지만 K-NASS가 도입되면 AI가 마약류 전 성분을 동시에 분석해 단 3일 만에 이상 징후를 포착할 수 있게 된다. 분석 빈도 역시 연간 여러 차례 모니터링에서 벗어나 365일 실시간 연속 모니터링 체계로 전환된다.

현장 기동대 역할을 할 전담 조직도 뜬다. 식약처는 지방자치단체 마약류감시원, 특별사법경찰, 중앙조사단 등 약 50명 규모로 구성된 '의료용 마약류 특별감시단'을 다음 달 1일 공식 출범시킨다. 이들은 프로포폴을 비롯해 페티딘, 케타민 등 수면마취제를 중심으로 집중 점검을 실시하고 불법 행위 적발 시 즉시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환자들의 '의료쇼핑'을 원천 봉쇄하는 빗장도 더 단단해진다. 의사가 약을 처방하기 전 환자의 과거 마약류 투약 이력을 확인해야 하는 대상에 졸피뎀과 프로포폴이 연내 차례로 포함된다. 오는 12월부터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와 연계해 처방 당일의 투약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년 하반기 마약류 안전관리 추진 계획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6.18 ⓒ 뉴스1 김성진 기자
"치료와 사회 재활까지"…구멍 없는 안전망 만든다

정부는 칼날 같은 단속과 병행해 이미 중독의 늪에 빠진 이들을 위한 예방 및 재활 인프라 확충에도 나선다. 단순 강의식 교육에서 벗어나 청소년과 청년층의 눈높이에 맞춘 뮤지컬, 미술 활동 등 체험·참여형 예방 프로그램을 확대한다. 대학생 마약 예방활동단도 지난해 20개에서 올해 40개로 늘린다.

치료를 마친 중독자가 다시 범죄에 손을 대지 않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 재활도 강화된다. 중독 수준 평가를 기반으로 맞춤형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법무보호복지공단 등 관계기관과 연계해 직업 재활과 취업 지원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하반기부터는 '사법-치료-재활 연계 참여조건부 기소유예' 대상에 선도조건부 기소유예자까지 포함해 재범 방지와 사회 복귀 지원 체계를 넓힌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하반기 마약류 안전관리 계획은 불법행위의 실효적 제어를 위한 제도 개선, 치밀한 집중 단속과 더불어 맞춤형 예방 및 재활 확대까지 이어지는 정교하고 촘촘한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국민이 마약류 오남용의 위험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일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