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생존율, 미국도 제쳤다…세계가 인정한 '췌장암 어벤저스' [K-메디컬리포트]

25명 의료진 뭉친 다학제 진료…난치암의 세계 기준 새로 써
이광혁 삼성서울병원 췌장담도암센터장 "조기진단 혁신 기대"

이광혁 삼성서울병원 췌장담도암센터장. (삼성서울병원 제공)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국내 주요 암종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암은 단연 췌장암이다. 5년 상대 생존율은 고작 16.5%로, 10명 중 8명 이상은 5년을 버티지 못한다는 뜻이다. 특별한 초기 증상이 없어 발견했을 때는 이미 손을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암의 진행 속도가 빠른 데다 치료 내성까지 잘 생긴다. 환자에게는 청천벽력과 같고 의료진에게도 매 순간 거대한 벽을 마주하는 듯한 절망감을 안기는 질환이다.

그러나 이 참담한 수치와 절망적인 선고 앞에서도 침착하게 승률을 끌어올리며 '기적'을 데이터로 증명해 내는 이들이 있다. 소화기내과, 간담췌외과, 혈액종양내과 등 각 분야의 베테랑 의료진 25명이 똘똘 뭉친 삼성서울병원 췌장담도암센터다. 이들은 췌장암 5년 상대 생존율 23.5%라는 경이로운 성적표를 쥐고 난공불락의 암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이는 난치암 치료의 세계적 기준이라는 미국 평균(13.3%)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이자 '통제 불가능한 암은 없다'는 이들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다.

세계 의료계가 주목하는 국내 췌장암 치료와 연구의 최전선, 그 중심에서 25명의 '췌장암 어벤져스'를 이끄는 이광혁 센터장(소화기내과 교수)을 만나 췌장암 치료의 현주소와 현대 의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향후 과제를 들었다. 다음은 이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췌장암 진단이 특히 어렵다고 들었다.

▶췌장암은 조기 발견이 가장 어려운 암 가운데 하나다. 췌장과 담도는 해부학적으로 복부 깊숙한 곳에 위치해 일반적인 복부 초음파만으로는 확인이 쉽지 않아 CT나 MRI 같은 정밀 영상 검사가 필요하다. 위암이나 대장암처럼 내시경 검사를 통해 증상이 없을 때 조기에 발견하고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암과도 다르다. 특별한 초기 증상이 거의 없고 암의 진행 속도도 매우 빠르다. 이 때문에 매년 건강검진을 빠짐없이 받아도 발견 시점에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에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혈액 검사만으로 췌장암을 진단하고 재발까지 추적할 수 있는 액체생검 등 첨단 기술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진료 현장에서 '이 증상이 있으면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보는 경고 신호가 있나.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운 황달이 생겼다면 반드시 CT나 MRI 같은 영상 검사를 받아야 한다. 복통이나 체중 감소가 지속되는 경우도 췌장암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런 증상이 나타난 뒤 발견되는 췌장암은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

특히 당뇨병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55세 이후 갑자기 당뇨가 생겼거나, 잘 조절되던 당뇨가 특별한 이유 없이 악화되고 체중까지 감소한다면 췌장 검사를 고려해야 한다. 당뇨는 췌장암의 위험요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췌장암이 당뇨를 유발하기도 한다. 장기간 흡연자나 만성췌장염 환자,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건강검진에서 췌장 낭종이 발견됐는데 크기가 커지거나 내부 결절이 생기는 경우 추가 검사를 권한다.

-최근 젊은 층 암 발생 증가가 여러 암종에서 관찰되고 있다. 췌장암도 연령대별 발생 양상에 변화가 있다고 보시나.

▶췌장암은 주로 60~70대에서 발생하는 암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환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비만 증가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실제로 국내 췌장암 발생자는 2006년 3800명에서 2021년 9780명으로 15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전체 암 발생 순위도 10위권 밖에서 8위까지 올라왔다.

-췌장암 환자들의 생존 기간이 실제로 과거보다 얼마나 늘어났다고 평가하나.

▶분명히 개선되고 있다. 오랫동안 5%대에 머물던 국내 췌장암 5년 상대 생존율은 현재 16.5%까지 올라왔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다학제 진료와 고정밀 양성자치료 등을 결합해 23.5%의 5년 상대 생존율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평균인 13.3%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임상 현장에서도 변화가 체감된다. 과거에는 4기 환자의 생존 기간을 6개월 이내로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항암치료 발전으로 1년에서 1년 반 이상 생존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종양 크기를 줄여 수술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췌장담도암센터 의료진이 췌장암 환자 치료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모습. 이 센터장은 "월 1회 센터의 모든 의료진이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삼성서울병원의 췌장암 5년 상대 생존율, 놀라운 성적인 것 같다. 비결이 있다면.

▶췌장암은 환자 예후를 낙관하기 어려운 질환인 만큼 진단과 수술, 항암, 관리 등 여러 분야가 복합적으로 잘 작동할 때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어 다학제가 필수인 분야다. 우리 다학제팀은 소화기내과를 비롯해 간담췌외과, 혈액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과, 영상의학과 등이 참여해 진단에서 치료까지 환자 중심의 진료체계를 구축했다.

또 누적 췌장절제술 7000례, 췌장암 수술 5000례, 연간 200례 이상의 수술이라는 압도적인 임상 경험이 있다. 전용 로봇 수술방을 갖추고 로봇 수술도 활발히 시행하고 있다. 2009년부터 구축을 시작해 2015년 출범한 췌담도계질환 코호트는 액체생검, AI 재발 예측, PULSAR 방사선 연구의 토대가 되고 있다. 소화기내과, 간담췌외과, 혈액종양내과 등 25명의 전문 의료진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다학제 시스템 역시 센터만의 경쟁력이다.

수술적 절제가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전신항암화학요법 시행 후 다학제 진료를 바탕으로 맞춤형 방사선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주변 위장관 손상 위험이 적은 환자에서는 암세포를 정밀하게 공격하면서 정상 조직 손상은 최소화하는 고정밀 양성자치료를 시행해 우수한 치료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역량이 결집한 결과라고 본다. 담낭·담도암의 5년 상대 생존율 역시 39.5%로 미국 평균 21.2%보다 높은 수준이다.

-과거에는 치료가 어렵다고 여겨졌던 환자군 중 최근 치료 기술 발전으로 수술이나 장기 생존이 가능해진 사례가 있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수술 대상 환자군의 확장이다. 과거에는 절제 가능 췌장암이 전체의 20% 안팎이었다면 현재는 경계성 절제 가능 환자와 일부 국소 진행성 환자까지 포함해 25~30% 수준으로 늘었다. 특히 혈관에 붙어 있거나 부분적으로 침범한 경계성 췌장암은 과거에는 수술이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현재는 선행 항암치료를 통해 종양을 줄인 뒤 수술하는 방식으로 치료 성적을 높이고 있다. 일부 3~4기 환자에서도 항암치료 후 수술 기회를 얻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췌장암 연구 수준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다고 평가하나.

▶국내 췌장암 연구 역량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삼성서울병원 췌장담도암센터는 임상 경험뿐 아니라 기초·중개연구와 인공지능(AI) 기반 정밀의료 분야에서도 해외 유수 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발표한 AI 기반 공간적 종양 침윤성 림프구(TIL) 밀도 분석 연구다. 박주경 소화기내과 교수, 한인웅 간담췌외과 교수, 장기택 병리과 교수 연구팀은 해당 연구를 세계적 권위의 국제학술지 ‘JAMA Surgery’에 게재했다. 연구는 같은 췌장암 환자라도 치료 반응과 예후가 왜 다른지를 종양 미세환경 관점에서 설명한 것으로 학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JAMA Surgery’는 이 연구에 대해 '암 치료의 미래가 지금(The Future of Oncology is Now)'이라는 제목의 특별 논평을 게재하기도 했다.

-향후 10년 안에 췌장암 진단·치료 분야에서 가장 기대하는 변화는 무엇인가.

▶가장 기대되는 변화는 조기진단의 혁신이다. 현재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액체생검 오믹스와 영상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는 멀티모달 AI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혈액 검사와 AI를 결합해 췌장암 고위험군을 선별하고 조기 진단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다.

치료 분야에서는 종양 변화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방사선량을 조정하는 차세대 적응형 방사선치료 기술 'PULSAR'와 AI 기반 로봇 수술 발전이 기대된다. 최근에는 췌장암의 대표적 유전자 변이인 KRAS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도 의미 있는 결과를 보인다.

앞으로 액체생검과 AI, 면역·표적치료제, 개인 맞춤 치료가 발전하면서 환자 개개인에게 더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