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의사과학자가 대한민국 미래"…간질환 정복 나선 '슈퍼맨 3인방'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성필수·한지원 교수, 탁권용 강사
KAIST 박사 선후배 뭉쳐…"개인 헌신 넘어 지속가능 시스템 마련해야"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한국에선 이제 의사과학자가 미래입니다. 사회 부가가치 창출 1등 공신이 될 겁니다.
성필수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의사과학자의 역할을 묻자 주저 없이 이렇게 말했다.
의학 기술의 발전과 과학 혁신이 만나는 최전선에 있는 '의사과학자(MD-PhD)'는 의사이면서 연구자다.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사에 그치지 않고 진료 현장에서 얻은 질문을 연구실로 가져가 새로운 치료법과 진단 기술을 개발하는 역할을 맡는다. 미국과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은 바이오산업 경쟁력의 핵심 인력으로 의사과학자 육성에 힘을 쏟고 있지만 국내선 아직 낯선 개념에 가깝다.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에는 이 특별한 커리어를 공유하는 3인의 연구자가 모여 하나의 분과 안에서 활약하고 있다. 성필수 교수, 한지원 교수, 탁권용 임상강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KAIST에서 전일제 박사 과정을 거쳐 병원으로 돌아온 선후배 사이다. 세 사람이 수주한 국책과제 총액만 해도 약 74억 원에 달한다.
이들은 지방간과 간암, 간섬유화, 인공지능(AI) 등 각기 다른 분야를 연구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진료실에서 출발한 질문을 연구로 연결하며 병원 기반 정밀의학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의사과학자의 진짜 역할은 무엇일까. 또 국내 의사과학자 양성 시스템에는 어떤 과제가 남아 있을까. 세 명의 의사과학자가 걸어온 길과 그들의 연구, 그리고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 봤다.
임상 현장의 의사들이 환자 한 명 한 명을 치료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진료 자체'에 집중한다면 의사과학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존 치료법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돌파구 개발로 시선을 확장한다.
한 교수는 "일반 임상 교수가 진료실에서 '어떤 환자의 예후가 나쁜가'라는 의문을 가지는 데서 그친다면 의사과학자는 기초연구나 공학 등 여러 융합연구를 통합적으로 직접 수행해 실제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는 해법을 찾아낸다"고 설명했다.
성 교수는 환자를 직접 보는 경험이 연구에 영향을 미치고 그 연구 결과가 다시 환자 진료에 영향을 미치며 돌고 도는 '순환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반 과학자들의 연구는 실제 환자 진료에 이용할 수 없어 괴리가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의사과학자의 연구는 환자에게 직접 도움이 되고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탁 임상강사 역시 의사과학자의 최대 강점으로 '뚜렷한 방향성'을 꼽았다. 그는 원론에만 갇힌 실험실과 당면한 질환의 해결에 집중하는 진료실 사이에서 느낀 답답함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탁 강사는 "'간 섬유화 치료제 개발'을 제안했을 때 기초 과학 학계에서는 '간세포의 재생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며 "반면 임상 현장에서는 당장 암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거나 '간 이식'처럼 확립된 최종 치료법에 우선순위를 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이오 의학 분야에서 진짜 부가가치를 내려면 이 두 영역의 간극을 메우고 양쪽을 모두 이해하는 인재를 무조건 키워내야 한다"고 단언했다.
현재 이들의 연구는 소화기내과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성 교수는 보건복지부 의사과학자 리더 연구사업에 선정돼 5년간 22억 원의 개인 국책과제를 수행하며 대상이상 지방간질환 및 알코올성 간 질환의 면역 손상 기전을 규명하고 있다. 성 교수가 특히 주목한 것은 '인간 공생 미생물 유래 세포밖소포체(Extracellular Vegicles)'를 활용한 치료제 개발이다. 성 교수는 "지방간에서 장 투과성이 증가해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생긴 환자들의 염증을 줄여주는 약은 아직 없다"며 "임상적 니즈에 기반한 색다른 방식의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임상 의사결정과 인공지능(AI)을 연결하는 연구로 누적 총 16억 원 규모의 국책과제를 이끌고 있다. 한 교수의 연구가 가진 독창성은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의사가 아이디어를 낸 뒤 알고리즘까지 스스로 직접 개발한다는 점에 있다. 성 교수는 "의사가 바쁜 진료 중에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놓친 판독지 한 줄을 AI가 걸러내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달라진다"며 한 교수의 연구가 가진 실질적 파급력을 높이 평가했다.
탁 임상강사는 단일세포 및 공간전사체 분석을 통해 간 내 미세환경을 세포 수준에서 해독하며 연구 성과를 'Nature Aging' 등 세계적인 저널에 제1저자로 게재해 주목받았다. 탁 강사의 평생 숙제는 '간 섬유화(간경화)'와 '암'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탁 강사는 "간은 재생 능력이 뛰어난 장기다. 세포 노화를 차단하고 섬유화라는 캡슐에서 간을 해방해 주면 정상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이론을 넘어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과제"라며 "다만 실질적으로 상용 가능한 신약 개발까지 가는 데에는 내 평생이 걸릴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이들의 화려한 연구 성과 뒤에는 연구와 진료를 모두 완벽히 소화해 내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숨어 있다. 세 사람 모두 여느 임상의와 다름없는 막중한 진료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성 교수는 "오늘 오전에도 60여 명의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20여 명의 입원 환자를 돌보고 왔다"며 "국내 의료 시스템 안에서는 의사과학자라는 이유로 진료 부담을 덜어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털어놨다. 아직 병원과 대학 시스템 내에서 의사과학자의 연구 활동이 온전한 본업이라기보다 일종의 '플러스알파'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성 교수는 "시간을 쪼개 연구비를 수주하고 성과를 내면서도 진료와 시술까지 완벽히 해내는 '슈퍼맨' 같은 모습을 당분간은 우리가 직접 증명해 보일 수밖에 없다"며 "다행히 같은 뜻을 품은 3명이 한 분과에 모여 아이디어와 연구 인프라를 공유하며 내는 독보적인 시너지가 이 여정을 지탱하는 든든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슈퍼맨'의 삶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의사과학자 육성이 국가적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지만 현장에서는 "개인의 열정만으로 버티기엔 한계가 왔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탁 강사는 "미국 등 해외 주요 기관의 경우 연구 수주 규모에 맞춰 임상 진료 비중을 획기적으로 조정해 주는 유연한 정책이 정착돼 있다"며 "정부의 정책적 기조도 중요하지만 병원 경영진과 현장 책임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기존의 진료 중심 사고방식을 혁신하고 배려해야 후배 의사과학자들이 비전을 갖고 이 길에 진입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 역시 의사과학자 개념의 명확한 정립과 신분 보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의사과학자가 무엇이냐에 대한 정의 자체도 명확하지 않다"며 "임상과 연구를 안정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정식 트랙이나 임용 요건 등 제도적 기반도 아직 미비하다"고 꼬집었다.
국내 의사과학자의 선두 주자인 성 교수의 진단은 더욱 무겁다. 성 교수는 "신분 보장이 안 되다 보니 선배 중에서도 대학에 정착하지 못하고 개업을 선택한 의사과학자가 많다"며 "이는 국가적으로 너무나 심각한 손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의사과학자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한 과에 최소한 한 명 이상은 이학 박사 학위를 가진 의사과학자' 같은 구체적인 신분 보장 기준이 제도화돼야 한다"며 "10년 후의 대한민국 바이오·의학 경쟁력은 바로 지금 어떤 시스템을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시스템이 가로막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이들이 진료실과 실험실을 동시에 지키는 이유는 명확하다. 임상과 기초과학, 두 영역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는 의사과학자만이 의료 패러다임을 바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 교수는 의사과학자들이 만들어낼 파괴력을 확신하며 인터뷰를 끝맺었다.
"의사과학자가 앞으로 우리 사회의 부가가치 창출에 확실한 1등 공신이 될 겁니다. 결국 의사과학자가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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