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지금 상태가 어떠세요?"…AI가 쓰고, 보내고, 연결했다

복지부, 뇌졸중 의심 환자 가정해 AI 의뢰·회송 체계 시연
지역·필수·공공의료 AX 시동…"인프라 확충·제도 개선 병행돼야"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으로 의료진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뉴스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환자분, 지금 상태가 어떠세요?"

29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AI 기반 환자 의뢰·회송 체계' 시연은 한 명의 가상 환자로부터 시작됐다.

주인공은 62세 남성 김성호 씨. 이날 오전 7시20분 기상 후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지만 30분 뒤 아침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오른손에 힘이 빠지고 말이 어눌해졌다. 젓가락질이 어려워졌고 오른쪽 다리를 끄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의사가 김 씨에게 질문을 이어가는 동안 대화 내용은 실시간으로 보라매병원 전자의무기록(EMR)에 기록됐다. "오늘 아침부터 오른손에 힘이 없고 말이 어눌하다"는 환자 진술부터 증상 발생 시점, 보호자 설명까지 AI가 자동으로 정리했다.

처음에는 단순 신경학적 증상으로 입력되던 기록은 정보가 쌓일수록 구체화됐다. AI는 오른손 마비와 언어장애, 보행 이상 등을 종합해 급성 뇌졸중 가능성을 제시했고 곧바로 '급성 뇌졸중 프로토콜 전환'을 권고했다.

이후 상황은 순식간에 전개됐다. 의료진이 상급종합병원 전원을 결정하자 AI는 응급환자 진료의뢰서와 임상요약서, 초진기록, 검사 결과, 영상 소견, 뇌졸중 발생 타임라인 등을 자동으로 정리했다. 전원 사유와 경위, 동반 문서 목록까지 한 번에 담긴 자료는 서울대병원으로 전송됐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전달된 정보를 확인한 뒤 전원 요청을 수락했다. 기존에는 의무기록과 검사 결과, 영상 자료를 각각 정리해 보내야 했지만 이날 시연에서는 모든 정보가 하나의 패키지 형태로 묶여 전달됐다. 보라매병원 화면에는 곧바로 '전원 수락 완료' 메시지가 떴다.

시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 씨가 초응급 뇌졸중 환자로 최종 판단돼 즉시 수술이 필요하다는 상황이 되자 AI는 수술실 운영 현황을 분석해 가장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수술실을 추천했다. 예정된 수술 시간이 지연될 경우에는 다른 수술실로 자동 재배정하는 기능도 선보였다. 마취 전 상태평가서 작성부터 퇴원기록지와 회송 소견서 생성까지 AI가 지원하는 모습도 공개됐다.

김태훈 인프메딕스 CTO가 29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진료정보연계를 위한 AX 기술 시연회'에서 시연을 하고 있다. 천선휴 기자
의뢰서부터 영상자료까지 한 번에…의료기관 잇는 'AI 의뢰·회송 체계'

이날 시연은 단순히 진료기록을 자동 작성하는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복지부가 추진 중인 '지역·필수·공공의료 AI 대전환(AX)' 정책의 방향성을 현장에서 구현한 사례에 가까웠다.

복지부는 다음 달부터 '보건의료 전주기 AX 스프린트 사업'에 착수한다. 환자 의뢰·회송 과정에 AI를 적용해 의료기관 간 진료정보 교류를 자동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지역 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을 하나의 진료체계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핵심은 개별 병원의 EMR과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에 AI를 직접 연동하는 것이다.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이동할 때마다 의사가 의뢰서를 작성하고 의무기록을 정리해야 했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진료기록과 검사 결과, 영상 자료, 치료 경과 등을 AI가 자동으로 요약·정리해 전달하는 구조다.

사업은 서울·경기, 강원, 전남 등 3개 권역에서 우선 실증된다. 서울대병원과 서울의료원, 성남시의료원, 강원대병원과 영월의료원·강릉의료원·평창보건의료원, 전남대병원과 광주기독병원 등이 참여한다.

복지부는 하반기 추진 예정인 '공공의료 AI 고속도로 사업'과 연계해 국가 GPU와 공공 AX 전용망도 지원할 계획이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환자가 지역에서 진료를 받고 필요할 때 상급병원으로 연계됐다가 다시 지역사회로 돌아오는 과정이 하나의 루프로 작동해야 한다"며 "환자를 중심으로 효과적인 진료와 지속 가능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 AX 정책의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신의 한수' 될 수도"…지역의료 살릴 AI에 현장 기대감

현장에서는 AI가 지역·필수·공공의료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조승연 영월의료원 외과 과장은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AI를 통해 해결해 보려는 노력은 결국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방향"이라며 "부족한 인력과 시스템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면 지방의료원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의료기관 간 정보 교류 활성화에 주목했다.

조 과장은 "항암치료 환자들이 대형병원 인근에 머물며 치료를 받는 것도 결국 정보 교류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지역 병원과 상급병원이 제대로 연결된다면 환자 편의성과 의료비 절감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응급환자 전원과 진료정보 교류가 원활해진다면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를 위한 '신의 한수'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형철 서울대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장은 "실제 사용해 본 의료진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다"며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예전에는 AI 없이 어떻게 일했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AI도 결국 기반이 있어야"…열악한 공공병원 인프라가 최대 과제

다만 참석자들은 기술 도입만으로는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공공병원 인프라 확충과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먼저 거론된 것은 지방 공공병원의 열악한 디지털 환경이다.

조 과장은 "상급병원과 지방의료원의 EMR 시스템은 사실상 완전히 다르고 전산 인프라 수준도 매우 낮다"며 "EMR 입력에 많은 시간을 쓰다 보니 의료진이 환자를 보기보다 컴퓨터와 씨름하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라고 말했다.

또 "지방의료원들은 새로운 전산 시스템에 투자할 여력도 부족하다"며 "지역 공공병원의 안정적 운영과 정보시스템 표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사업이 지속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기혁 이지케어텍 사업총괄은 "AI 이전에 정보화 시스템 자체를 AI를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며 "현재 추진 중인 공공병원 클라우드 사업만으로는 지방의료원 전체 확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진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은 AI 전환이 성공하려면 기술뿐 아니라 데이터와 인프라,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는 서울대병원 환자 데이터조차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한다"며 "공공의료 네트워크 안에서 의료정보를 공유·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체계와 컴퓨팅 인프라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의료와 요양, 돌봄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환자 중심의 연계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오늘 제기된 현장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 효과적인 진료와 지속 가능한 체계를 만들 수 있도록 정책에 반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