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붕년 교수 "코로나가 뒤흔든 아이들 세계…'폰 꺼라'로 해결 안돼"[인터뷰]
24시간 관계 압박에 쉼터 사라져…'사회적 뇌' 발달이 갈등 해결의 열쇠
섣부른 조언보다 감정 수용이 먼저…부모는 자녀의 '안전한 어른' 돼야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스마트폰을 끄라고요? 안 보게 되냐는 겁니다. 요즘 아이들은 24시간 내내 온라인 세상에 묶여 있어요. 집 안 침대 위에서조차 관계의 압박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하는 겁니다."
30년간 수많은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본 김붕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의 진단은 단호했다. 최근 학부모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문가 중 한 명인 그는 요즘 청소년들이 마주한 위기 앞에서는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오며 또래 관계의 통로가 차단되었던 2년의 세월이, 아이들을 온라인 세상으로 완전히 쏠리게 했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는 친구 관계가 아무리 힘들어도 가정이란 '셸터(보호 공간)'에 들어오면 단절과 휴식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그런 탈출구가 없다. 24시간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으면서 불안과 집착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코로나 이후 청소년 우울·불안과 자살·자해 증가 배경에는 온라인 중심 환경 변화와 SNS 영향도 작용했다고 봤다.
문제는 아이들의 이런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는 부모는 드물다는 점이다. 대다수는 자녀가 겪는 따돌림과 소외 문제를 그저 자극적인 디지털 환경이나 아이의 유약한 성격 탓으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최근 출간한 신간 '아이의 친구 관계'를 통해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전두엽 중심의 '사회적 뇌' 발달 과정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감정에 동화되는 '정서적 공감력'과 상대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력'의 조화가 위기 속에서 아이를 지킬 진짜 사회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겪는 관계 갈등의 본질은 무엇이며 부모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김 교수의 명쾌한 처방을 들어봤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코로나19 시기를 지나온 아이들, 어떤 것이 달라졌나.
▶영유아기 아이들의 경우 또래를 만날 기회나 놀이 프로그램이 줄게 되면서 발달상의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 시기 아이들은 회복 탄력성이 매우 뛰어나다. 일상 회복 후 지난 2년 동안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채워준 덕분에 정상화됐다. 계속 문제가 됐으면 불안 장애가 폭증하거나 아이들이 사회성이 떨어지는 공격성 문제가 폭증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언어 인지 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그것도 다행히 추적관찰을 해보니 적절한 보충이 이루어진 아이들은 상당 부분 회복됐다.
문제는 청소년들이다. 청소년기는 관심과 관계의 중심이 가족에서 또래로 이동하는 결정적인 시기인데, 코로나로 인해 그 통로가 2년 동안 완전히 막혀버렸다. 결국 이 관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아이들이 온라인 세상으로 확 쏠리게 되면서 문제가 커졌다는 것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겪는 사회적 스트레스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휴식 공간'이 사라졌다는 점에 있다. 과거에는 친구 관계가 아무리 힘들어도 가정이란 셸터에 들어오면 사회적 피로부터 단절되어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특히 청소년기는 집단 내 서열이나 위계에 대한 민감성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다. 내가 그룹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으며 얼마나 인정받는지에 극도로 예민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24시간 내내 스마트폰에 붙들려 불안과 집착을 키워가게 된다.
-부모들은 보통 "스마트폰을 꺼라, 보지 마라"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안 보게 되냐는 거다. 불안 민감도가 올라가 있으면 더 확인하게 되고 거기서 해결하려다 더 부정적인 피드백을 만나 집착의 강도가 더 올라간다. 청소년기 자녀를 돌볼 때는 부모라는 지위가 작동하는 게 아니다. 이때부터는 한 명의 경험이 많은 성인이자, 가장 이 아이를 사랑하는 성인의 관점에서 소통해야 한다. 그래야 부모 관계가 아이에게 고통 속에서 조금 벗어나게 해주는 새로운 셸터가 될 수 있다. "엄마, 아빠가 살다 보니 관계는 유리와 같이 깨지기 쉬운 거더라. 너무 집착하면 안 된다. 앞으로 기회는 많다. 네가 좋아하는 운동, 그림, 음악 열심히 하자." 이런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조언은 부모님이 아니면 줄 수 없다.
-신간에 이런 해법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책에선 친구와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전두엽 중심의 '사회적 뇌' 발달 과정에서 찾는다.
▶친구 관계라고 하지만 시작은 애착 관계 형성에서부터 시작된다. 대인관계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초기 모델)은 부모 자녀 관계이기 때문에 첫 3년(0~36개월)의 중요성이 강조가 안 될 수 없다. 물론 기질적 특성도 중요하지만 부모 자녀 관계 애착 형성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얼마나 안정이 돼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다음은 만 3세부터 만 6세까지의 욕구 조절, 충동 조절 같은 자기조절 능력의 발달이다. 이 안에서 또래와의 놀이 발달이 활발해지면서 자기 욕심만 채우는 게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고 자기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두 번째 핵심 과제가 된다.
세 번째는 만 6세부터 전두엽 기능 발달과 맞물리는 공감의 발달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의 감정을 정확히 읽는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의 발달이 핵심이다. 정서적 공감은 약한 사람을 보면 돕고 싶어 하는 자연스러운 마음이지만, 생각을 통해 타인의 입장을 맥락과 과정으로 이해하는 게 인지적 공감이다. 인지적 공감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시작돼 수많은 책과 예술 작품, 미디어를 경험하고 깊은 친구 관계를 맺는 청소년기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로 가능해진다. 인지적 공감은 전체 인구의 3분의 2 밖에 갖고 있지 않다.
-친구 관계나 온라인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청소년 자녀에게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입해야 하나.
▶섣부른 인지적 공감이나 잘잘못을 따지는 코멘트는 아이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거부감이 생기게 한다. 철저히 감정을 수용하는 게 개입 원칙의 1번이다.
1단계는 감정의 컨테이너(수용자)가 되는 것이다. 아이가 카톡방에서 겪은 일을 털어놓을 때 잘잘못 가리고 판단하려 하지 말고 "얼마나 힘들었니", "억울했겠구나"라며 감정을 먼저 받아주는 것이다. 입이 간질간질해도 참아내야 한다.
2단계는 감정과 행동을 구분하는 것이다. 감정이 수용되면 아이가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해진다. 이때 "네가 화가 난 건 너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때리거나 하는 행동은 잘한 걸까?" 하고 행동의 구분을 넌지시 알려주면 된다.
이 대화가 가능해지려면 가장 중요한 요건이 부모의 감정 조절이다. 애한테 얘기하라고 해놓고 부모가 먼저 화를 내면 부모에 대한 신뢰감도 줄고 소통의 두려움이 생긴다. 욱해서 더 이상 대화가 어려울 땐 그냥 거기서 멈추고 시간을 갖는 게 낫다.
-현재 우리 교육과 사회 환경에서 아이들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보완해야 할 대책은 무엇인가.
▶이제는 위기 학생 몇 명 치료하는 수준을 넘어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 전체가 움직이는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지금 가장 부족한 '정서 기반 사회성'을 길러줘야 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핵심 능력이 포함된다.
첫째는 감정 인식 능력이다. 아이들이 수치심, 배제감, 외로움 등 자기를 괴롭히는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언어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안 되면 공격성이나 자해, SNS 과몰입으로 터지기 쉽다. 둘째는 관계 스트레스 조절 능력이다. 갈등 후 회복하는 법, 집단 동조 압력 견디기, 건강한 관계 거리 조절 같은 실전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마지막은 도움 요청 능력이다. 민폐가 되거나 입시에 불이익이 올까 봐 고통을 숨기는 아이들에게 '참는 법'이 아니라 '힘들다고 말하며 안전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가장 강력한 보호요인은 내가 무너져도 이야기할 수 있는 한 명 이상의 '안전한 어른(Safe adult)의 존재'다. 부모님이 그 역할을 해준다면 웬만한 전문가 만나는 것보다 낫고 새로운 돌파구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공부하는 건 좋지만 '아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전문가는 엄마, 아빠다'라는 마음은 절대로 잃지 마라.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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