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환자 위험합니다" AI가 알린다…'스마트병원' 진화하는 서울아산병원 [K-메디컬리포트]
수술 후 사망 가능성 예측부터 태아 심장 기형 발견까지
로봇 시술·대동맥 분석 고도화…미래형 의료체계 구축 속도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인공지능(AI)이 수술대 위에 오르기 전 환자의 미래를 시뮬레이션하고 사망 위험까지 예측하는 시대가 왔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긴박한 응급 상황이나 생사를 가르는 고난도 수술을 앞두고, AI가 환자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앞날을 내다보며 의료진의 든든한 '지능형 헬퍼'로 등판한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빅데이터연구센터와 김성훈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선보인 디지털의료기기 'PreOPRisk'(프리오피리스크)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AI 모델은 환자의 나이와 성별 같은 기본 프로필은 물론 수술 전 검사로 얻은 복잡한 혈액 데이터와 바이털 사인(활력징후) 등 병원에 축적된 방대한 전자의무기록(EMR)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낸다. 그리고 환자마다 각기 다른 수술 후 중증 이벤트 발생 위험도를 구체적인 수치로 짚어낸다.
김성훈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그동안 의료진의 경험이나 몇 가지 제한된 지표에 의존해야 했던 위험도 평가가 데이터 기반의 객관적 예측으로 진화한 셈"이라며 "의료진은 수술 전 고위험군 환자를 선제적으로 선별하고 맞춤형 치료 시나리오를 짤 수 있게 됐다. 현재 이 기술은 까다로운 확증임상시험을 모두 마치고 식약처 인허가 단계를 밟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국내 중증 질환 치료를 선도하는 서울아산병원은 '데이터 중심의 정밀 의료'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스마트 병원으로의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AI혁신지원실'을 필두로 최근 3년간 34건의 기술이전과 77건의 특허 출원을 이뤄낸 독보적인 성과가 그 증거다.
과거의 의료 AI가 단순히 엑스레이나 CT 영상을 대신 읽어주며 의사의 눈을 돕는 '보조 시력' 수준에 머물렀다면, 지금 서울아산병원의 AI는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예측 시스템부터 뱃속 태아의 심장을 살피는 영역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다.
원혜성·이미영 산부인과 교수팀이 개발한 '산전초음파 태아 심기능 평가 기술'은 그동안 의사의 숙련도에 의존해 판독이 까다로웠던 태아 심장 진단의 한계를 보완한다. 주먹만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끊임없이, 그리고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태아의 심장은 초음파 판독이 가장 까다로운 고난도 부위로 꼽힌다. 사소한 각도 차이로 병변을 놓치기 쉽고 의사들 사이에서도 진단 편차가 생기기 쉬운 영역이다.
하지만 연구팀이 개발한 시스템은 AI가 태아의 심장 초음파 영상을 스스로 인식하고 분류한 뒤 주요 해부학적 구조를 화면에 실시간으로 표시해 준다. 동시에 43개에 달하는 계측 지표를 알아서 측정한다.
원혜성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이 오랜 시간 쌓아온 대규모 태아 심장 빅데이터를 최신 딥러닝 모델에 학습시켜 10개의 표준 심장 단면을 찾아내는 정확도는 무려 99%에 달하며 자동 측정 성공률도 98%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존에는 의사의 숙련도에 따라 정밀 진단에 긴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실시간 AI 보조를 통해 안전한 분만 환경을 조성하고 출생 직후의 응급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다"며 "나아가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 간의 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산전 진단율을 높여 신생아의 생존율을 개선하는 실질적인 임상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진단 영역에서도 인간의 육안 한계를 뛰어넘는 AI의 활약은 눈부시다. 양동현·구현정 영상의학과 교수, 이준구 융합의학과 교수팀이 만든 '대동맥 정량분석 AI 모델'은 복잡하고 입체적인 흉부 CT 영상을 3차원으로 쪼개 눈으로 파악하기 힘든 미세한 혈류 변화와 병변을 정량적인 데이터로 시각화해 준다.
특히 최신 해부학적 기준을 적용해 대동맥 구간을 세분화하고, 연령과 성별에 따른 정상 참고치를 제공함으로써 환자 맞춤형 비교 분석이 가능하다. 단순히 특정 수치 이상을 비정상으로 간주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지능형 진단이 가능해진 것이다.
2024년 6월 보건복지부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된 이 기술은 대동맥 박리나 대동맥류 같은 초응급 중증 질환의 조기 발견을 도우며 향후 지속적인 추적 관찰 시스템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갈 예정이다.
치료와 수술의 최전선에서도 AI 기술 기반의 국산 로봇이 맹활약 중이다. 최재순 의공학연구소장이 개발한 AI 수술 로봇 '에이비아(AVIAR)'는 미세한 카테터를 머리카락 같은 혈관 내로 삽입해 병변을 치료하는 중재 시술 보조 로봇 시스템이다. 기존의 해외 로봇 시스템들과 달리 시술 중 여러 종류의 와이어와 카테터 등 다양한 시술 도구를 복합적이고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다중 제어 구조'를 세계 최초로 구현해 냈다. 고난도 복잡 병변 시술에도 로봇을 적용할 수 있어 임상 활용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실제 임상 적용 결과 해외 로봇 대비 시술 시간은 46% 이상 짧아졌고, 시술 중 환자와 의료진이 쬐는 방사선 노출량은 22% 이상 줄어들었다. 여기에 실시간 AI 영상 가이드 기능이 더해져 시술 정확도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조영제 사용량까지 크게 줄였다.
지난해 12월 임상사용 승인을 받은 에이비아는 현재 실제 관상동맥중재술 현장에서 의료진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손발이 돼 움직이고 있다.
양동현 서울아산병원 AI혁신지원실장은 이번 디지털 의료 성과들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양 실장은 "서울아산병원의 가장 큰 자산은 중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깊이 있고 방대한 임상 데이터"라며 "이 값진 데이터들이 최첨단 AI 기술과 결합하면서 실제 임상 현장에서 환자의 안전을 지키고 의료의 질을 끌어올리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도 단순히 실험실이나 연구 단계에만 머무는 차가운 기술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진료 현장에 적용돼 환자와 보호자들이 직접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미래 의료 패러다임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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