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가 40대처럼 치료?…고령 암환자 맞춤 가이드라인 만들 것"
[인터뷰] 이건국 국립암센터 연구소장 "한국형 암치료 표준 정립"
'5년간 3800억' 중장기 계획…지역의료 표준화·AI 데이터 구축도
- 천선휴 기자, 구교운 기자
(고양=뉴스1) 천선휴 구교운 기자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암 치료는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임상 현장에는 해결되지 않은 '빈틈'이 존재합니다. 바로 환자의 '나이'입니다. 이제는 암에 걸린 사람이 여든인지 마흔인지에 따라 치료의 문법을 완전히 다시 써야 할 때입니다.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이 가속화하면서 암 치료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존처럼 연령을 크게 구분하지 않은 채 적용해 온 획일적 치료 기준으로는 고령 환자의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건국 국립암센터 연구소장은 27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발표한 '2026-2030 암 연구 중장기 계획'을 설명하며 "국립암센터는 연령별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암 치료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내내 이 소장이 가장 강조한 키워드는 '연령 특이적 암 관리'다. 소아 환자를 단순히 '작은 어른'으로 보지 않는 것처럼 고령 환자 역시 '나이가 많은 성인'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대사 구조, 면역 반응, 장기 기능 등 전반적인 생리 상태가 완전히 다르다. 특히 고혈압, 당뇨, 심혈관 질환 등 만성질환을 동시에 가진 경우가 많아 치료 과정에서 변수도 많아진다"며 "40대에게 적합한 강력한 항암 치료를 80대에게 적용하면 암세포를 잡기 전에 환자의 기력이 다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다.
이 소장은 현재 사용되는 암 치료 기준 상당수가 해외 연구 결과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소장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암 치료 가이드라인은 주로 미국이나 유럽의 대규모 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국내 의료진들은 체격, 질병 양상, 치료 반응이 다른 국내 환자에게 이 임상 데이터들을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 특히 고령 환자의 경우 그 차이는 더 크게 나타난다.
이 소장은 "서구 데이터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치료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일부 환자는 견디질 못해 의료진이 경험적으로 용량을 조절해 왔다"며 "국립암센터는 앞으로 5년간 한국 고령 환자들의 신체적 특성과 약물 대사 능력을 정밀하게 분석한 '연령별 적정 치료 표준'을 정립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지방 환자들이 단 몇 분의 진료를 위해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상경하는 '수도권 쏠림' 현상에 대해서도 이 소장은 냉철한 진단을 내놨다.
제도로 환자의 이동을 강제로 막기보단 거주지 인근에서도 똑같은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논리다.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한국형 임상시험 협의체인 KCON(케이콘)이다.
이 소장은 "일본의 JCOG(일본 임상 종양 연구 그룹) 사례처럼 국립암센터와 전국의 지역 암센터가 유기적으로 임상시험 단계부터 최신 치료 프로토콜까지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느 병원에 가도 내가 받는 치료가 국립암센터의 최신 가이드라인과 동일하다는 확신이 생겨야 지역 의료가 살아난다"며 "KCON은 지역 의료진의 연구 역량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환자들에게는 '우리 동네 병원도 서울의 큰 병원과 똑같은 매뉴얼로 진료한다'는 안심을 주는 실질적인 장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의료계의 화두인 AI와 빅데이터에 대한 전략도 내놨다. 바로 '정제된 데이터(AI 레디 데이터)' 구축이다. 단순한 진료 기록의 나열을 넘어 영상 정보, 유전체 분석(NGS), 병리 이미지 등이 하나로 정밀하게 꿰어진 양질의 데이터를 AI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정비해 신약 개발과 정밀 의료에 활용하겠다는 게 국립암센터의 구상이다.
이 소장은 "AI를 활용하면 환자별 특성에 맞는 치료 전략을 보다 정밀하게 도출할 수 있다"며 "연령, 질환 상태, 치료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맞춤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데이터 활용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소장은 "'개인정보 보호'라는 가치와 '환자의 생존권' 사이에서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연구소 운영의 내실을 위해 실험실 안의 기초 연구와 환자 곁의 임상 연구가 따로 놀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국립암센터가 다양한 의견을 모아 체계화하고 이를 연구와 정책으로 연결하는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며 "현장 의사가 느끼는 답답함을 기초 연구자가 풀어주고, 그 연구 성과가 다시 환자의 약과 치료법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도 연구소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이 소장은 5년간 약 380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는 이번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의 지속적인 지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전국의 암 연구자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깔아주는 '허브'가 되고 싶다"며 "암에 걸렸을 때 국민들이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지 않도록 국립암센터가 가장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답을 내놓는 곳으로 남겠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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