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필로폰 원료' 약까지?…'문제 약'도 제재 없는 창고형 약국
1740평 규모에 평일에도 북적…'판매 제한' 지침은 유명무실
수면 유도제 등도 제한 없이 팔려…"결국 피해자는 소비자"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슈도에페드린은 코 막힘 완화에 쓰는 약인데 화학 구조를 조금만 바꾸면 필로폰(메스암페타민)이 돼요. 실제로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처럼 슈도에페드린 성분을 추출해 필로폰을 제조한 사례가 있어서 1인 최대 나흘분만 판매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어요. 근데 열흘치를 샀는데 제재가 없네요."
15일 오전 서울 금천구 홈플러스 금천점 3층에 위치한 '창고형 약국' 메가팩토리약국 서울점. 코메키나 1통, 화콜C노즈 2통, 화이투벤노즈 2통 등 슈도에페드린 성분이 함유된 코감기약 세 종류, 약 10일분을 계산대에 올려놓자 약사는 "화이투벤노즈랑 화콜C노즈는 두 알씩 하루에 세 번, 코메키나는 한 알씩 드시면 된다"는 설명을 빠르게 쏟아낸 뒤 "주차등록은 바코드 찍고 나가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약을 건넸다. 계산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날 기자와 함께 이곳을 찾은 약사회 관계자는 "이건 명백한 규정 위반"이라며 "약사회 차원에서 보건복지부에 행정 처분을 의뢰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월 2일 오픈한 메가팩토리약국 서울점은 1740평(전용면적 870평) 규모로 조성된 약국이다. 지난해 6월 10일 국내 최초 창고형 약국인 메가팩토리 성남점에 비해 약 5배 큰 규모다.
의사의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은 물론 건강기능식품, 위생·헬스케어 관련 제품 등이 뒤섞여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약국을 둘러본 약사회 관계자는 "성분마다 두세 개 이상의 제약회사 약을 갖다 놓은 것 같다. 대부분의 성분은 다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날도 이곳을 방문한 손님들 대부분이 마트에서나 사용할 법한 큰 카트를 끌고 약을 쓸어 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평일 오전이었지만 점심시간이 다가올수록 손님은 더 많아졌다. 매장을 돌아다니던 약사가 손님에게 다가가 제품을 추천하기도 했으나 밀려드는 인파를 감당하며 꼼꼼한 복약 지도를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가격도 기존 동네 약국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매장 전면에 배치된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의 가격도 500㎎ 10정 2500원, 30정 7000원으로 시중 약국에 비해 30% 정도 저렴했다.
소비자가 싼값의 상비약을 사러 왔다가 자연스럽게 주변에 진열된 고가의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을 집어 들게 만드는 것이 이들의 판매 전략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약이 '쇼핑의 대상'이 되면서 소비자의 안전은 뒷전이 됐다는 점이다.
탈모증 치료제 코너 앞에서 카트를 끌고 서성이던 70대 여성 A 씨는 "염색약만 사서 가려고 했는데 구경삼아 돌다 보니 이것저것 담게 됐다"고 했다. A 씨의 카트엔 염색약 두 상자와 벌레 물린 데 바른 연고, 소염진통제 등이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 A 씨는 "나이가 드니 정수리에 머리가 많이 빠져 탈모증 치료제를 사려고 한다"며 탈모증 치료제 마이녹실액 5%를 카트에 담았다.
이에 약사회 관계자는 "마이녹실액에 들어 있는 미녹시딜(Minoxidil)은 5%, 3%로 두 가지 있는데 5%는 여성이 바르면 눈썹이 진해지고 수염이 나는 등 부작용이 심해 3%를 써야 하고 남성이 5%를 써야 한다"며 "바르고 나서도 손을 잘 씻어줘야 하고 너무 자주 바르면 부작용이 심해져 정확하게 써야 약효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A 씨는 "처음 듣는 얘기"라며 "5%가 더 효과가 좋을 것 같아서 사려고 했는데 샀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치명적인 의약품도 아무런 제재 없이 판매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코감기, 비염 등에 사용되는 슈도에페드린의 경우 실제로 약에서 성분을 추출해 필로폰을 제조한 사례도 여러 번 있었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인당 최대 나흘분까지만 판매해야 한다는 지침을 만들었지만 창고형 약국에서는 유명무실했다.
메가팩토리약국 서울점에도 감기약 진열대 앞에 '낱알모음포장은 1인에게 최대 나흘분에 해당하는 양만 판매'라는 내용의 안내판이 부착돼 있었지만 약 10일분을 구매하는 동안 어떠한 제재도 가해지지 않았다.
과거 여러 차례 살인 수단으로 쓰여 온 수면유도제 독시라민(Doxylamine succinate)도 마찬가지였다.
독시라민으로 만들어진 수면유도제 아졸정25㎎ 10정 두 통(20일분)을 구매하는 데 약사는 "주무시기 1시간 전에 한 알 드시면 된다"는 설명만 빠르게 한 뒤 결제를 도왔다.
약사회 관계자는 "수면유도제로 유명한 아졸정은 오남용하는 경우가 많아 진열대에 쌓아놓고 판매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며 "두세 알만 먹어도 심하게 졸려 시중 약국에서는 대부분 대량 구매나 반복 구매를 막고 있는데 여기선 두 통을 사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주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처음으로 들어선 창고형 약국은 1년 새 전국에 30곳 이상으로 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이달 서울 동대문구에 들어선 창고형 약국은 무려 1100평 규모에 이른다.
문제는 창고형 약국의 등장이 동네 약국의 존립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일반 약국으로선 대량 매입을 통해 단가를 낮추는 창고형 약국의 가격 경쟁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창고형 약국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B 씨는 "처방전을 들고 오는 손님은 여전하지만 상비약 같은 경우 창고형약국에서 대량으로 구매해 두면 동네약국에서 살 필요가 없는데 여길 오겠느냐"며 "손님들은 우리가 더 이윤을 남긴다고 생각해 결국 신뢰도 잃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약사들은 약국이 처방 조제에만 치우치게 될 경우 경영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고, 운영 시간이 짧아지거나 문을 닫게 되면 결국 피해는 소비자에게로 돌아간다고 입을 모은다.
약사회 관계자는 "동네 약국이 늦게까지 운영하지 않게 되면 결국 멀리 있는 약국까지 찾아가야 해 오히려 의약품 접근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안전하게 다뤄져야 할 의약품이 일반 공산품처럼 소비되기 시작하면, 당장은 편리해 보여도 결국 오남용과 그에 따른 피해가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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