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사들 "운전금지 약물 지정 우려…치료중단이 더 위험"

"약물운전 예방 취지는 공감하나…단순 공포조성은 안 돼"
"신경정신의학회와 정신과 약물 복용 운전 전문가 가이드라인 마련"

관악경찰서 교통안전계 경찰이 지난 3일 밤 서울 관악구의 한 도로에서 연말연시 음주·약물운전 특별단속을 하고 있다. 2024.12.4 ⓒ 뉴스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조유리 기자 =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약물운전 예방에 공감하지만 그 방식이 '약을 먹으면 위험하다'는 식의 단순한 공포 조성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며 정신과 약물에 대한 보다 정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30일 입장문을 내고 다음 달부터 시행하는 약물운전 관련 도로교통법 개정 및 처벌 강화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충분한 의학적 검토 없이 시행될 경우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정당한 치료권이 위축되고 오히려 더 큰 안전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최근 약사회가 배포한 이른바 '운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 또는 '운전 금지 약물류'의 안내에 대해 "문제의식 자체는 이해하나 표현과 전달 방식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회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사용하는 약물은 동일한 성분이라 하더라도 환자의 연령·체질·복용 기간·용량·병용 약물·증상 안정 여부·복용 단계에 따라 실제 운전 능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일률적인 '금지 약물 목록'을 제시할 경우 환자와 일반 국민에게는 '정신과 약을 먹으면 운전하면 안 된다'는 식의 과도하고 왜곡된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사회는 약물 복용 사실만으로 운전 부적합 상태를 단정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지나치게 단순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환자가 잠재적 위험군처럼 인식될 수 있다고 짚었다. 또 생업상 운전이 필요한 환자들이 단속이나 사회적 낙인을 우려해 자의적으로 약물치료를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의사회는 처벌 강화와 과도한 공포 조성이 결합할 경우, 환자들이 임의로 약물 복용을 중단하는 비순응(non-compliance)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사회는 "불안장애·우울장애·불면·ADHD·조현병·양극성장애 등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은 적절히 치료될 때 오히려 인지기능·충동조절·주의집중·수면 상태가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며 "반대로 필요한 치료를 중단하면 불안정한 정신상태·수면 부족·충동성 증가·집중력 저하 등으로 인해 실제 운전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약물 복용 자체보다 치료 중단으로 인한 질환 악화로 인해 도로 위의 위험이 더 커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회는 약물운전 문제를 단순히 법률적 규제나 행정적 단속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경찰청은 약물운전 관련 홍보와 단속 기준을 확대하기에 앞서 정신건강의학과·신경과·내과·약리학 등 관련 전문가 단체들과 충분한 사전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혼란을 줄이고 환자의 치료권과 공공안전을 함께 지키기 위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함께 정신과적 약물의 약물운전에 대한 새로운 전문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사회는 "환자에게는 보다 정확한 안내를 제공하고, 의료진에게는 과도한 방어적 진료 부담을 줄이며 정부와 수사기관에는 보다 정교한 제도 설계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끝으로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함께 환자 건강권과 도로 안전을 함께 지킬 수 있는 새로운 기준 마련에 책임 있게 나서겠다"고 밝혔다.

ur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