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만 3.5년, 일상 무너뜨리는 '희귀질환'…생애 전주기 관리해야"

[희귀질환]③ "약 있는 질환은 5%, 95%는 장기 관리로 생활 유지"
치료 부담에 10명 중 3명은 자산 매각…"의료 넘어 사회적 문제로 접근"

편집자주 ...국내 인구의 약 0.9%를 차지하는 희귀질환자는 '희귀하다'는 이름과 달리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희귀질환은 종류가 다양하지만 각 질환별 환자 수는 매우 적어, 환자와 의료진 모두 진단과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정부는 희귀질환자의 조기 진단과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뉴스1은 질병관리청과 함께 희귀질환자와 그 가족이 처한 현실과 이들을 둘러싼 제도적 노력과 과제를 집중 조명한다.

전종근 부산대 의대 교수가 지난달 27일 열린 '희귀질환 극복의 날 10주년' 행사에서 국내 희귀질환 진단 과정의 문제점을 발표하고 있다. 2026.2.27/뉴스1 조유리 기자

(서울=뉴스1) 조유리 기자

"희귀질환은 의료적 문제를 넘어 가구 경제의 붕괴와 가족 돌봄의 한계를 초래하는 사회적 문제입니다."

지난달 27일 세계 희귀질환 극복의 날을 맞아 질병관리청 주관으로 '희귀질환 극복의 날 10주년' 포럼이 열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정연 연구위원은 희귀질환을 단순한 '희소 질환'이 아닌 '사회적 위험'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희귀질환은 유병 인구 2만 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정확한 유병 규모를 알 수 없는 질환을 의미한다. 80% 이상이 유전적·선천성 질환이며, 치료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치명적이거나 장애를 남기는 경우도 많다. 질환의 종류는 1000개가 넘지만, 개별 질환 환자 수는 적다. 전문가도 부족하다.

평균 3.5년 걸리는 진단…10명 중 3명은 자산 매각

문제는 진단부터 시작된다. 정 연구위원이 수행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증상 발현 후 확진까지 평균 3.5년이 걸렸다. 응답자의 13%는 10년 이상 소요됐다고 답했으며, 환자의 16%는 4개 이상의 병원을 전전했다. 질환을 들어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진단받은 경우도 70%에 달했다.

이날 희귀질환 진단을 위한 거주지 완결형 지원체계와 관련해 발표한 전종근 부산대 의대 교수는 "치료제가 있는 희귀질환은 5%에 불과하고, 95%는 결국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게 치료 핵심"이라며 "고도화된 진단을 받기까지 여러 단계의 검사를 거쳐야 해 시간이 지연된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진단 인프라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진단 방랑'이 이뤄지기 쉬운 구조다. 그는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진단 의뢰되는 비율은 90%에 달하지만, 진단 후 다시 지역으로 회송되는 비율은 10% 수준에 그친다고 했다. 응급 상황이나 지속 치료가 필요한 경우 거주지 내 연계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경제적 부담은 더욱 심각하다. 응답자의 57%는 희귀질환 진단 이후 가구 소득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35.8%는 치료비 부담으로 자산을 매각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28%는 월 50만 원 이상을, 13%는 100만 원 이상을 치료비로 지출했다. 비용의 절반 가량은 비급여였다.

돌봄의 부담은 가족에게 넘겨졌다. 돌봄의 89%는 가족이 전담하고 있었고, 주 돌봄자의 하루 평균 돌봄 시간이 12시간 이상인 경우가 40%에 이르렀다. 돌봄은 곧 경력 단절로 이어졌다. 이를 두고 정 연구위원은 "희귀질환은 개인의 건강 문제가 아니라 한 가구의 생계 구조를 흔드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 패널로 참여한 유한욱 분당차병원 교수, 강훈철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교수, 강윤구 원주세브란스 병원 교수, 주은영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본부장,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 김지영 질병청 희귀질환관리장. 2026.2.27/뉴스1 조유리 기자
"암도 아니고 장애도 아닌 존재"…제도 경계에 선 환자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희귀질환자가 "암도 아니고 장애도 아닌 위치"에 있어 의료·복지 제도의 경계에 놓여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암은 산정특례 본인부담률이 5%지만 희귀질환은 10%에다가 비급여가 월등히 많아 부담이 크다"고 했다. 또 "장애는 결과로 판정받지만, 희귀질환은 증상이 '진행형'이기에 장애 판정을 받기 어려워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희귀질환은 완치의 개념이 없어 소아기에서 성인기로 이행하더라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수적"이라며 "그러나 소아 기준에 맞춰 설계된 급여 체계가 성인 단계로 원활히 연계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치료가 중단되거나 본인 부담이 급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또 다른 현실적 문제를 토로했다. 희귀질환은 환자 수는 적지만 진료 시간이 길고 다학제 협진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행 행위별 수가 체계에서는 이러한 특성이 보상되지 않아 병원 입장에서는 구조적으로 '적자 진료'가 되기 쉽다. 이에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진료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17개 기관이 희귀질환 진료의 절반 가까이 담당하고 있다.

세브란스에서 희귀질환 센터를 운영하는 강훈철 교수는 "90% 이상이 민간 의료에서 이뤄지는 한국에서는 치료가 수가에 좌우된다"며 "희귀질환은 지역 필수공공의료(지필공)의 핵심인 만큼 지필공 및 수가와 연계해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 거점 센터를 통해 거주지 중심의 지속 치료·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전 주기적 접근 강화"…전문기관 확대·데이터 통합 추진

정부는 희귀질환 진단부터 치료·관리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 주기적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과 지난 2월 이재명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희귀질환 환자와 그 가족들을 직접 만나 어려움을 들으며 치료와 진단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청은 '희귀·중증난치질환 지원 강화 방안'을 통해 희귀·중증난치질환 환자의 건강보험 본인 부담률을 10%에서 5%로 인하할 방침이다.

김지영 희귀질환관리과장은 "질환 수는 많지만, 전문가와 정보는 부족하고, 평생 관리가 필요하지만 지역 접근성은 낮은 상황"이라며 구조적 한계를 인정하면서, "진단부터 치료, 관리에 이르는 전 주기적 연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질병관리청은 현재 17개 희귀질환 전문기관을 운영 중이며, 올해 2곳을 추가 지정할 계획이다. 진단 지원 사업 확대, 유전 상담 강화, 의료비 지원 사업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 등도 추진한다.

특히 희귀질환 등록 통계사업을 통해 임상·유전자·진료비 정보를 통합하고, 건강보험·장애·복지 데이터와 연계하는 국가 단위 데이터 기반 관리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질환 중심으로 장애, 복지, 진료비 부담 현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겠다는 구상이다.

한편, 이날 발표한 실태조사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약 2개월간 희귀질환자와 그 보호자(1031명)를 대상으로 진단부터 치료, 건강 수준, 직업, 교육, 경제활동, 돌봄 등 삶 전반에 걸친 영역을 파악했다. 현재도 연구가 진행 중으로, 최종 결과는 오는 4월 중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연구는 진단부터 돌봄에 이르기까지 희귀질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과 미충족 수요를 국내 처음으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지난달 27일 '희귀질환 극복의 날 10주년' 기념식에서 임승관 질병청장이 공모전 입상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질병청 제공)

ur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