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감염병 탐정 '역학조사관'…"에어컨 공기 분석해 확산 막았죠"

역학조사관 제도 25년…질병청 질병관리역량개발담당관 인터뷰
확진자 이동경로 추적 외에도 유행 예측 및 감염병 정책 수립 지원

(서울=뉴스1) 조유리 기자 = ·

지난 2020년 8월 20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로 현지 역학조사를 위해 들어가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단순 비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염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CCTV 분석과 함께 에어컨 가동상태, 실내 공기 흐름의 방향과 속도 등을 공학적으로 재구성해 장거리 전파의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습니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2020년 코로나19까지. 2000년 이후 신종감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바쁘게 뛰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질병 탐정', '바이러스 탐정'이라고도 불리는 역학조사관(EIO·epidemiological investigation officer)이다.

2000년, 공보의 20명으로 시작한 '역학조사관'…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과학적 운영

16일 뉴스1은 역학조사관 제도 25주년을 맞아 권윤형 질병관리청 역량개발담당관(과장)을 인터뷰하며 감염병 유행마다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역학조사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역학조사관은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발생 원인과 전파 경로 등을 밝혀내고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수행하는 전문가다. 쉽게 말해 환자와 접촉자를 조사해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감염됐는지 파악하고 전파 경로를 분석해 격리와 예방접종 등의 방역 조치를 시행하는 일을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국가에서 역학조사관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감염병 유행 및 대응체계의 발전과 함께 역학조사관 제도를 정비해 왔다.

국내 역학조사관 제도는 2000년에 본격 도입됐다. 1990년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감염병 대응 요구가 늘어나며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에서는 1999년 시범사업을 거쳐 2000년 전염병예방법(현 감염병예방법)을 개정해 역학조사와 역학조사관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후 해당 법에 근거해 역학조사 및 역학조사관 양성 등 지속해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공중보건의사 20명으로 시작한 국내 역학조사관은 현재 282명이며, 교육훈련을 이수하고 있는 수습 역학조사관은 256명에 달한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중앙(질병관리청)은 100명 이상, 시도 2명 이상, 인구 10만 명 이상 시군구는 1명 이상 소속 공무원으로 두도록 정하고 있다.

이들은 직무훈련과 교육 등 최대 2년의 교육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질병청 질병관리역량개발담당관에서는 역학조사관을 포함해 감염병 대응 인력의(지자체 감염병 업무 담당 실무자 및 관리자 등) 양성과 교육훈련 등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역학조사관을 포함한 중앙 및 지자체 역학조사반을 대상으로 실제상황 기반 모의훈련을 정례화하는 등 다양한 훈련을 통해 상시 감염병 및 팬데믹을 대비한 현장 대응력을 향상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지난 4일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2025 역학조사관 학술대회'(질병청 제공) 2025.11.14/뉴스1
전문 과정만 2년…이동 경로 추적만? 감염병 정책 수립도 지원

평시의 이러한 교육과 훈련은 감염병 위기 때 빛을 발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전 세계가 한국의 방역을 조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역학조사관은 단순히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일 외에도 현장 대응 역량과 전문성에 기반해 감염병 유행을 예측하고, 역학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감염병 정책 수립을 지원한다.

권 과장은 "감염원을 신속하게 밝혀내 골든타임 안에 감염병의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감염병 위기 시 확진자 진술뿐 아니라 신용카드 기록, GPS 기록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잠재적인 감염원을 추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코로나 팬데믹 당시, 비말 전파로 설명이 되지 않는 감염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에어컨의 가동상태와 실내 공기 흐름의 방향 및 속도를 공학적으로 재구성해 장거리 전파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질병청은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환기 지침을 마련했고, 국가 방역 정책 수립을 위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었다.

신종감염병 위협 커진 현재, 중앙-지자체 대응 역량 키워야

신종 감염병의 출현 주기가 짧아지고, 변이 바이러스 위협이 증가하는 현재, 보건당국은 새로운 감염병이 언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진단한다. 감염병의 1차 대응 역량이 더욱 중요해지는 셈이다. 이 첫 대응은 각 지자체에서 한다.

권 과장은 "감염병이 지역사회를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자체에서 신속하게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적절한 방역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지자체에서 충분한 감염병 대응 인력과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현실적인 이유로 감염병 대응 업무와 역학조사관 임명을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 교육 기간이 길고, 수료 요건을 충족하는 데 부담이 가기 때문이다. 감염병 대응 역량을 유지·강화하기 위해서는 기관장의 관심과 조직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중앙과 지자체의 소통 강화와 함께, 지자체의 자발적인 교육 참여가 필요하다.

안보와도 맞닿아 있는 감염병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질병청은 단기적으로 수습 역학조사관이 모두 교육훈련 과정을 수료하고 정식 역학조사관으로 임명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인구 10만 명 미만의 시군구에도 점차 역학조사관이 배치돼 지역 내 공중보건 업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지원을 지속할 계획이다.

권 과장은 "감염병의 중심인 역학조사관 활동 영역을 향후 만성질환, 재난 등 다양한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점차 확장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난 4일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2025 역학조사관 학술대회'(질병청 제공) 2025.11.14/뉴스1

ur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