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쥔 의료비 산출구조 20년 만에 공개…공단이 직접 관리한다

통계 검증위원회 신설…한국은행·서울대 등 외부기관 참여
엑셀 한 파일에 묶였던 의료비 산출…자체 시스템 구축 착수

12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2024 국민보건계정 통계품질 향상을 위한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20년간 개인 연구자에게 의존해 온 의료비 산출 구조를 전면 개편한다. 이번 개편은 의료비 통계의 불투명성을 해소하고, 보건의료 통계의 주권을 국가가 직접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공단은 담당자가 바뀌어도 지속 가능한 산출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건의료정책의 근거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3일 건보공단은 전날(12일) 서울 중구 소재 호텔에서 '2024년 국민보건계정 통계품질 향상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공단 측에 따르면 국민보건계정 통계는 특정 민간 연구자의 엑셀 파일을 기반으로 작성돼 왔다. 복지부와 공단조차 그 산출 과정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고, 통계 로직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의료비 총액과 보장률 수치가 어떤 계산 과정을 거쳐 산출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셈이다.

이 구조 때문에 통계의 신뢰성 문제도 꾸준히 제기됐다. 복지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제출용 통계를 해당 연구자에게 의뢰해 받아왔으며, 공단 내부에서도 "의료비 통계의 근본 로직이 특정 개인에게 집중돼 있어, 담당자가 사망하거나 자료를 잃으면 의료비 산출이 중단될 위험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건의료 통계의 핵심인 국민보건계정이 사실상 개인의 사적 자산에 의존해 온 구조는 국제 비교 통계에서도 논란이었다. OECD가 요구하는 표준 항목이 제때 반영되지 않아 일부 연도에는 한국의 의료비 통계가 지연 제출되거나 오류로 반려된 사례도 있었다.

공단은 이번 개편을 통해 의료비 산출 과정을 표준화하고, 데이터와 로직을 모두 공단 내부에 축적해 공개한다. 의료비 산출 근거를 학계와 국제기구가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구축해 '보건의료 통계의 국가주권 회복'을 추진한다.

함명일 순천향대학교 보건행정경영학과 교수는 "국민보건계정은 단순한 재정통계가 아니라 보건의료정책의 기초 인프라"라며 "공단이 산출 로직을 직접 공개하면 통계의 공공성과 투명성이 확보돼 정책의 신뢰도와 예측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단은 의료비 통계에서 반복돼온 보장률 변동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산출 원칙을 새로 정비했다. 지금까지는 자동차보험·산재보험 등 선택보험이 포함되기도 하고 제외되기도 하는 등 기준이 일정하지 않아, 연도별 보장률이 1~2조 원 단위로 출렁였다. 앞으로는 건강보험·의료급여 등 의무가입 보험만 보장률 산정에 포함하는 원칙을 세울 계획이다.

이진용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보건의료 통계의 가장 큰 문제는 산출 기준이 불명확해 연도별 비교가 어렵다는 점"이라며 "의무보험 중심으로 보장률을 재정의하면 보건의료 재정 논의의 객관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단은 새 원칙에 따라 의료비 통계의 기준값을 명확히 설정하고, 선택보험과 비급여 항목을 별도로 구분해 산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과거 통계와는 다른 의료비 추이 그래프가 새로 그려질 전망이다.

공단은 또 통계 산출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통계 검증위원회’를 신설했다. 검증위원회에는 한국은행, 조세재정연구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등 외부 전문기관이 참여해 의료비 산출 과정을 정기적으로 검증한다.

홍석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보건계정은 국가 보건의료정책의 근간이 되는 통계로, 신뢰성과 투명성이 핵심"이라며 "공단이 독자적인 산출 시스템을 갖추면 통계 품질뿐 아니라 정책의 예측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단은 내년 상반기까지 국민보건계정의 세부 산출 로직과 코드 체계를 공개하고, 산출 프로그램을 오픈소스 형태로 제공해 학계와 연구기관이 자유롭게 검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 담당자가 교체돼도 동일한 기준으로 결과를 재현할 수 있는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 의료비 산출의 일관성을 높일 계획이다.

공단은 이번 개편을 통해 국민보건계정의 신뢰성을 높이고, OECD 등 국제기구와의 통계 협력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산출 결과를 학계와 정기적으로 공유하고, 보건의료정책 수립 과정에 통계 검증 절차를 의무화할 방침이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