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자유와 경쟁 관계 아냐"…쿠팡 새벽배송 논란에 '건강권' 논의 본격화
"밤일, 피곤한 게 아니라 병든다"…고정야간근무자 심혈관 사망률 2배
"소비자 편의보다 생명 우선"…새벽배송, 정책 중심은 의료로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쿠팡의 새벽배송 서비스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계는 이 문제를 정치적·경제적 시각이 아닌 '건강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야간노동이 수면 리듬과 생체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회복 없는 노동 구조는 단순한 피로 축적이 아닌 생리학적 질환 유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6일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야간노동은 인간의 생체리듬에 구조적으로 부합하지 않으며, 반복될 경우 수면장애와 심혈관질환, 대사질환, 우울증 등의 위험을 높인다"며 "이 문제는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검증된 건강 유해 요인으로, 반드시 의학적 기준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2년 야간노동을 ‘Group 2A, 인간에게 발암 가능성이 있는 요인’으로 분류했다. 특히 10년 이상 고정 야간근무를 지속한 여성 노동자는 유방암 위험이 40~56%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한국 제조업·운수업 종사자 대상 연구에서도 고정 야간근무자의 심혈관 사망률이 주간 근무자의 약 2배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됐다.
야간노동은 교감신경계를 지속 항진시키고, 자율신경계 회복을 방해한다. 수면 시간이 4시간 이하로 유지되는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되면 생체 리듬이 붕괴하고, 코르티솔 분비 증가·염증 반응 항진·면역력 저하가 동반된다. 이에 따라 고혈압, 복부비만, 공복혈당 상승, 고지혈증 등 대사 이상 징후가 나타나며, 장기적으로는 심근경색, 뇌졸중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 교수는 "야간노동은 단순히 밤에 일하는 문제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시간 자체를 빼앗는 방식"이라며 "회복 없는 긴장 상태가 반복되면 자율신경계 조절력이 고정되며, 수면·식사·운동의 리듬이 함께 붕괴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같은 변화는 젊은 층에서도 피로감·불면·복부 팽만 등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40세 이상에서는 급성 심장질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새벽배송은 노동자의 자율적 선택"이라는 주장을 펴지만,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은 실질적으로는 구조적 고용 조건이나 생계 압박으로 인해 '선택권'이 제약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생리학적 위험은 선택 여부와 무관하게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즉 야간노동이 반복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문진영 한양대학교 교육협력 명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야간노동은 생체리듬을 무너뜨리고, 질병 발생의 인과 관계가 명확한 유해 인자"라며 "이제는 이 문제를 산업정책이나 노동정책이 아닌, 건강정책과 공중보건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주 55시간 이상 장시간 근로 시 뇌졸중 위험이 35%, 허혈성 심장질환 위험이 17%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또 국제 학술지에 따르면 교대근무자가 야간노동 후 자율신경 회복에 실패할 경우 심박수 변동성이 고정되고, 이 상태가 반복되면 돌연사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보고돼 있다.
의료계는 이에 따라 '회복 가능성'을 기준으로 노동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교대근무자를 대상으로 자율신경계 검사, 수면 일지, 스트레스 평가 등을 시행하는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며, 향후 건강 모니터링 체계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의학적, 과학적 근거는 고용의 자유나 소비자의 편익과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다"며 "이제는 정책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과학적·의학적 기준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우리나라 또한 야간노동 정책 역시 이 기준 위에서 재구성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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