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출근 줄고 복귀 빨라진다"…논문들이 입증한 상병수당 효과[김규빈의 저널톡]

국제학계 "소득보장 넘어 회복 지원"
"비용보다 편익 커…감염병 억제·정신건강 개선·복귀 촉진"

김규빈의 저널톡 로고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상병수당 제도가 없다. 아파도 출근해야 하는 '프리젠티즘(presenteeism·아파도 출근하는 현상)’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사회적 문제로 드러났지만, 제도화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국제 연구들은 상병수당이 단순한 소득보장을 넘어 감염병 억제, 정신건강 보호, 노동시장 복귀 촉진 등 다층적 효과를 갖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18일 코넬대 연구진이 지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 50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수집된 인플루엔자 감시 자료 390만 건을 분석한 결과, 유급 병가 제도를 시행한 주는 그렇지 않은 주보다 인플루엔자 유사질환 발생률이 평균 11%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운영하는 약 2000개 외래 진료소 환자 통계를 활용했다. 연구진은 아파도 출근하는 노동자가 줄면서 초기 전파 고리가 차단됐다고 설명하고 상병수당이 소득 보장을 넘어 감염병 억제 효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2023년 미국 국민건강인터뷰조사(NHIS)를 활용한 연구는 유급 병가가 근로자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연구진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근로자 9800여 명을 분석해 유급 병가 보장 여부와 정신건강 지표를 비교했다.

그 결과 유급 병가를 가진 집단은 우울감을 보고할 확률이 48% 낮았고, 불안을 호소할 가능성은 27% 낮았다. 우울감과 불안을 동시에 겪는 경우도 51% 적었다. 연구진은 유급 병가가 단순한 소득 보장을 넘어 정신적 부담을 줄이고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Pollack 연구팀은 상병수당이 의료 이용과 노동 복귀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했다. 연구는 주 단위 정책 시행 전후의 변화를 3년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평일 외래 진료 이용률은 1.4%포인트(12%) 늘었고, 재활 서비스 이용률은 1.7%포인트(15%) 증가했다. 연구진은 상병수당이 단순히 휴식 시간을 보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치료와 재활을 연계함으로써 노동시장 복귀를 앞당긴다고 설명했다.

노르웨이 연구는 상병수당과 재활 프로그램의 비용 효과성을 검토했다. 근골격계·정신질환 환자 166명을 대상으로 외래(O-ACT)와 입원(I-MORE) 재활을 비교하고 25년간 효과를 모형으로 추정했다.

분석 결과 입원 재활은 의료비가 환자당 1만 5000달러 더 들었지만, 평균 0.04 QALY(삶의 질 보정 수명)를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생산성 손실까지 고려하면 총비용은 14만 달러 이상 줄었고, 0.042 QALY가 더 확보됐다. 연구진은 입원 재활이 외래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전략이며, 생산성까지 포함해 평가해야 상병수당의 가치를 온전히 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스웨덴 연구는 1차 의료기관에서 시행된 복귀 조정 프로그램의 효과를 추적했다. 연구진은 병가자 1만 3019명을 대상으로 복귀 지원 여부에 따른 병가 기간 차이를 분석했다. 복귀 조정을 받은 집단은 평균 병가 일수가 71.3일로, 지원을 받지 않은 집단(76.1일)보다 약 5일 짧았다. 연구진은 병가 일수를 평균 2일만 줄여도 비용 효과가 있다는 기존 연구를 근거로 들며, 복귀 조정이 정책적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아파도 출근 문제와 관련된 효과도 확인됐다. 미국 연구팀은 유급 병가 의무화 지역과 비의무화 지역을 비교한 결과 병가 커버리지는 66%에서 79%로 13%포인트 확대됐고, 아파도 출근은 18% 줄었다. 연구진은 단기 결근은 소폭 늘었지만, 장기 결근은 오히려 줄어 고용주의 부담을 경감시켰다고 설명했다.

재정 문제는 제도 도입 논의에서 가장 큰 쟁점이다. 그러나 유럽 보건경제 연구는 상병수당 운영 비용보다 감염병 억제, 노동 복귀, 생산성 유지로 얻는 편익이 더 크다고 제시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효과가 더욱 뚜렷했다. 제도를 운영한 국가는 사회적 비용과 노동력 손실이 줄었고, 평상시에도 생산성 보호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한 1·2단계 시범사업 결과, 참여군의 중위 급여일수는 31.0일로 대조군(17.0일)보다 두 배 가까이 길었다. 하지골절 31.0일, 상지골절 33.5일, 척추골절 34.5일, 암 30.0일 등 주요 질환에서 모두 유의한 연장이 확인됐다. 소득 수준이나 사업장 규모와 무관하게 효과가 유지된 것도 특징이다.

상병수당 제도는 업무와 무관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근로자에게 치료 기간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장치다. 단순한 소득보장에 머무르지 않고 치료 이후 회복과 노동시장 복귀까지 아우르는 구조를 지향하며, 산재보험·실업급여·장애연금 등 기존 제도로 포괄되지 않는 공백을 메우는 사회 안전망 성격을 갖고 있다. 복지부는 제도가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 근로자의 회복과 복귀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