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아들을 잃은 오월어머니도 시민단체에 막힌 민주의 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3일 낮 12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민주의 문 앞에는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5·18민주묘지에 참배하기 위해 온 대한민국 특전사 동지회의 방문을 시민단체가 저지하면서다.
18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이날 오전부터 기자회견을 열고 대규모 참배 저지를 예고했었다. 회원 수백명이 민주의 문 앞에 섰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력도 대거 배치됐다.
대책위는 "지난 2월19일 두 공법단체(부상자회·공로자회)와 특전사동지회는 '용서와 화해를 위한 대국민공동선언'이란 정치쇼를 펼치며 민주묘지를 짓밟았다"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오월정신을 훼손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과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책위가 이날 특전사회의 참배를 막기 위해 동행한 오월어머니 중 한 분인 임금단 어머니까지 같이 막아서면서 흥분한 5·18 회원과 대책위 간 몸싸움까지 발생했다.
임근단 여사는 80년 5·18 최초 사망자인 김경철씨의 어머니다. 김씨는 사망 당시 28세로, 청각장애인 제화공이었다. 5월18일 오후 4시쯤 제7공수여단에게 붙잡혀 무차별 폭행 당한 뒤 '살려 달라'는 말조차 해보지 못한 채 사망했다.
임근단 여사는 "정말로 우리 광주 시민에 대해서 부끄럽다. 광주시민은 참 용감하고 씩씩한 시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먼 데서 오는 우리 특전사들이 이 자리를 넘어서 우리 새끼들 앞에서 용서를 빌고 참배를 하겠다는데 이것을 막고 못 들어가게 해서 한심스럽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지난 세월 그 누구도 우리 앞에서 용서를 빈 사람이 한 번도 없고, 우리 눈에 있던 눈물을 닦아준 사람도 없었다"며 "그런데 이제 이분들이(특전사가) 그 먼 데서 와서 자식같이 생각하겠다고 하는데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는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고 텔레비전에 이런 모습이 나올 것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외쳤다.
그는 "어디서 오는 분들이, 어떤 단체가 우리를 막는가 나는 모른다. 대체 민주묘지 주인이 누구냐"며 "시민단체에서 전화를 해서 이런 수작을 꾸몄는지 정말 부끄럽다. 한 마음 한 뜻에서 서로 용서하고 서로 마음을 받아주는 것을 나는 죽기 전에 보고싶을 뿐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식같이 인정하고 이룰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결국 특전사동지회는 민주의 문 앞에서 묵념을 올리는 것으로 참배를 대신하고 발길을 돌렸다.
황일봉 5·18부상자회장은 "참배를 막는 단체는 정치단체이지 시민단체가 아니다. 5·18의 역사도 모른다"며 "오월단체 피해자들은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 사이 진압군으로 왔던 3공수, 7공수, 11공수 등의 사단을 차례로 방문하며 사죄를 받았다. 대책위가 특전사 사죄의 진정성을 이야기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냐. 진정한 사죄의 조건이 무엇인지 거꾸로 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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