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학벌 차별'은 합리적?...차별금지법서 '학력' 빼자는 교육부 논란

학력학벌 차별금지법에 '신중검토'…사실상 반대
대입 '블라인드 평가' 도입한 교육부 정책과 배치

[편집자주]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10만서명 보고 및 입법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교육부가 '차별금지법안'의 차별금지 범위에서 '학력'을 삭제하자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부는 '학력은 합리적 차별 요소'라는 검토의견을 제출했다. 이 법안에서 학력은 '고졸', '대졸' 의미뿐 아니라 '출신 학교'도 포함한다.

'학력·학벌주의 관행 철폐'는 교육분야 국정과제 중 하나다. 대학입시에서 '출신고교의 후광효과'를 차단하겠다며 '블라인드 평가'를 도입한 것이 교육부다. 자신들이 중점 추진하는 국정과제와도 맞지 않는 의견을 제출한 교육부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신중검토'라고 밝혔지만 '학력' 문구 삭제한 수정안 제시

27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교육부는 장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의 검토의견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하며 '금지대상 차별의 범위'에 '학력(學歷)'을 포함한 것에 '신중검토' 입장을 제시했다.



이유은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토의견에서 교육부는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합리적 차별 요소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밝혔다.

또 "학력을 대신해 개인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화된 지표의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력에 의한 차별을 법률로 규제할 경우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표현은 '신중검토'이지만 사실상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중검토' 의견과 함께 교육부는 차별금지법안의 '제3조(금지대상 차별의 범위) 1항'에서 '학력'이라는 문구를 삭제하자는 수정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장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학력(학벌)을 이유로 고용, 재화 및 시설 이용, 교육훈련, 행정 서비스 이용 등에서 차별하면 안 된다'는 취지인데, 반대 의견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교육부가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 대해 국회에 제출한 검토의견의 일부. (장혜영 의원실 제공) © 뉴스1

다른 조항에 대한 교육부 검토의견과도 명확하게 차이가 있다. 교육부는 '금지대상 차별의 범위'(3조)뿐 아니라 '교육기회의 차별금지'(31조) '교육내용의 차별금지'(32조) '학교활동 및 교육서비스의 차별금지'(33조) 등에 대해서도 '신중검토' 의견을 밝혔다. 교육기본법 등에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 이미 있기 때문에 별도 법 제정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제정) 취지에는 공감하나", "취지에 대해서는 이견 없음"과 같은 단서를 달았다. '금지대상 차별의 범위'에 '학력'이 포함된 조항에 대한 검토의견에서만 이런 표현이 없다. 다른 조항에서는 '신중검토'의 사유만 밝혔는데, 유독 이 조항에서는 '학력'을 삭제한 '수정안'까지 제시한 것도 차이가 있다. 

장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서 '학력'의 정의를 보면 '고졸', '대졸'의 의미만이 아니라 '출신 학교(특정 교육기관의 졸업·이수 여부)'를 포함한다. '학력은 합리적 차별 요소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삭제'를 제시한 교육부의 검토의견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을 용인하자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학력·학벌주의 관행 철폐'…文정부 국정과제와도 배치

교육부 검토의견은 문재인정부의 국정 철학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학력·학벌주의 관행 철폐'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문재인정부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입학, 고용, 승진에서의 학력·학벌차별 관행 철폐'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학력과 학벌, 차별없는 공정한 출발선을 만들기 위해 기업의 블라인드 인재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것도 대선 공약에 포함했다.

이는 문재인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교육의 희망사다리 복원'으로 반영됐다. '교육의 희망사다리 복원'의 세부과제 중 하나가 '학력·학벌주의 관행 철폐'이다. '대입에서 출신 고교 블라인드 면접 도입, 공공기관·지방공기업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 및 민간기업 확산 유도'가 그 내용이다.

김부겸 국무총리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대화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대입에서 '출신 고교 블라인드' 정책은 문재인정부 들어 교육부의 일관된 정책이다. 교육부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의 입시특혜 의혹이 확대되자 2019년 11월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출신고교의 후광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블라인드 평가를 면접뿐 아니라 서류심사 등 대입전형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고등학교 학벌에 따른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학력학벌에는 '부모 찬스' 등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기본 입장과도 다르다. 유 부총리는 20대 국회 때인 2019년 5월 김부겸 현 국무총리가 '학력·학벌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학력학벌 차별금지법안)을 대표발의했을 때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때는 유 부총리가 국회의원이면서 부총리로 재직할 때였다.

장 의원은 "학력학벌에 따른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에 교육부가 반대 의견을 냈다"라며 "자신들 국정과제나 정책과 배치되는 입장이다. 무슨 생각인지 묻고 싶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은 학력학벌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데, 교육부는 용인하자고 한다"며 "우리 학생들이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뜻인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기관인지, 교육을 관장하는 중앙부처가 맞는지 궁금하다. 기가 막히다는 말로도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일자 유 부총리는 지난 24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학력을 합리적 차별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는 점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라며 "(교육부가) 그렇게 입장을 낸 것의 실제 취지가 무엇이었는지, 이 법안의 취지를 잘못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부의 입장을 확인하겠다"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력'을 삭제하자는 의견이었으면 검토사유에 '삭제'라고 했을 텐데, 그건 아니고 신중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던 것이다. 학력에 줄을 그은 것을 보고 반대를 하고 있다고 오해를 하는 것 같다"라며 "다시 검토해서 의견을 제출하겠다"라고 해명했다.

jin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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