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못 막고 강대국은 유엔 밖으로…유엔총회가 드러낸 '다자주의 위기'
트럼프, 대이란 초강경 경고…네타냐후 연설 땐 대표단 빈 자리
젤렌스키 "에너지 휴전" 제안했지만 러시아는 "입장 변화 없다"
- 장용석 기자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미국 뉴욕에 모인 제81차 유엔총회 고위급 주간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이번 총회에선 확산하는 전쟁과 미국·중국 간 경쟁,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안보 위협 앞에서 다자주의 체제가 직면한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유엔이 여전히 적대국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대화 채널을 만드는 거의 유일한 세계적 외교무대임을 이번 총회가 보여주는 동시에, 전쟁을 끝내거나 강대국의 행동을 통제할 실질적인 힘은 부족하다는 현실도 함께 드러냈다는 것이다.
27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번 총회를 계기로 약 130명의 각국 정상급 지도자가 뉴욕에 모였지만 이란 전쟁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돌파구는 제시되지 못했다. 또 세계 최대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은 유엔이 아닌 워싱턴에서 열렸다. 반면 AI는 처음으로 전통적인 전쟁·핵무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 안보 의제로 부상했다.
이번 총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중동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총회 연설에서 이란과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면 이란을 "신속하게 궤멸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며 다른 국가도 이란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미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면서도 외교를 통한 해결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총회 기간 미·이란 양측은 직접 협상 대신 중재국을 통한 간접 접촉을 이어갔고, 이란은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고 봉쇄를 끝낼 경우 7일 뒤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는 방안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공개적으로 거절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과 관련해서도 제한적인 협상안만 제시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총회 연설에서 겨울철 에너지 시설 공격을 중단하는 휴전과 흑해 해상 휴전을 제안했다.
뉴욕에선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간 회담도 열렸다. 그러나 러시아는 기존 전쟁 목표를 재확인하며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미국은 이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미·러·우크라이나 3자 실무회담을 여는 방안을 제안했다.
가자지구 전쟁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분열도 그대로 드러났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4일 총회 연설을 위해 연단에 오르자 수십명의 각국 대표가 그에 대한 항의 표시로 회의장을 떠났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적극 방어하며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집단학살 주장을 부인했지만, 각국 대표단의 집단 퇴장은 이스라엘이 직면한 외교적 압박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게 외신들의 평가다.
미중 관계는 유엔 밖에서 움직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 유엔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24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했다. 세계 양대 강국의 정상회담이 각국 지도자들이 모인 유엔을 비껴가면서 국제 현안 해결 과정에서 유엔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신 한정 중국 국가부주석은 26일 총회 연설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승인을 우회하는 "일방적 군사행동"에 반대한다며 미국의 대이란 정책을 우회 비판했다. 그는 중동 국가들의 주권과 안보를 존중하고 가자지구 문제도 '두 국가 해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가 각각 국가를 이루며 공존하도록 한다는 국제사회의 대표적 중동 평화 구상이다.
이번 총회에서 새롭게 존재감을 키운 의제는 AI였다. 안보리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 AI 분야 석학 요슈아 벤지오 등이 직접 출석해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위험과 국제적 관리 필요성에 대해 경고했다.
특히 아모데이는 AI를 잘못 관리할 경우 "인류 전체에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총회 연설에서 AI를 통제하기 위한 국제적 규제 체제를 만들려는 시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올해 말 퇴임하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에 '마지막' 유엔총회 연설을 했다. 그는 전쟁 종식과 기후변화 대응, AI 국제 규제와 함께 유엔 체제 자체의 개혁을 촉구했다. 그는 현재 국제기구들이 "대체로 지나간 시대의 권력 현실과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며 집단행동 체제가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81차 유엔총회 일반토의는 28일 폐막한다.
ys417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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