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發 연료 쇼크에 세계 곳곳 시위 '들불'…농민·서민 생계 위협
NYT "아시아·개도국 상당수,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할 여력 없어"
"유가발 인플레 통제 못하는 정부에 불만…유권자들 우파로 이동"
- 김경민 기자
(서울=뉴스1) 김경민 기자 =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시위가 이어지는 등 분노가 확산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남술라웨시주 마카사르는 이번 주 취사용 가스 부족과 순환 정전을 겪었다. 휘발유 배급제도 갑작스럽게 시행됐다.
마카사르 곳곳엔 연료가 떨어진 오토바이를 운전자들이 직접 밀고 가거나, 기름이 떨어진 주유소 주변에 길게 늘어선 오토바이가 포착됐다.
택시 기사는 전날(14일) 차량 번호판 끝자리의 홀짝 여부에 따라 연료를 배급하는 새로운 제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자바섬의 족자카르타에선 전날 학생들이 연료 가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가 친정부 성향 단체에 의해 해산당했다.
인도네시아에선 부유층·중산층 가구에 대한 연료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만 일대에선 디젤이나 휘발유를 연료로 하는 어선 상당수가 항구에 발이 묶여 있다. 어민 단체는 "수주간 이어진 몬순성 폭우 이후 이번 주 다시 조업에 나서길 고대했지만 연료를 살 돈이 없다"며 "잇따른 가격 인상이 어부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고 말했다.
버스·차량 호출 서비스 운전자들 또한 케손시티에서 행진을 벌이거나 운행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조용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7만 명 규모의 필리핀 버스 운전자·차주 단체를 이끄는 모데스토 플로란다는 하루 15~18시간을 일해도 고작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정도의 수입밖에 얻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플로란다는 정부가 대중교통 운전자들에게 약 80달러(약 11만 원) 일회성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한 데 대해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선을 그었다.
베트남에선 지난 주말 차량 호출 앱 '그랩' 운전자들이 연료비 상승으로 인한 낮은 수입에 항의하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과테말라 과테말라시티에선 운수 노동자와 원주민 활동가가 거리에서 가격 상한제나 보조금 지급과 같은 임시방편을 넘어선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트랙터 가동을 위해 디젤 연료에 크게 의존하는 농민들이나 트럭 운전자 등 서민들도 생계 유지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포르투갈에선 지난주 운전자들이 차량 경적을 울리며 서행하는 방식의 시위를 개최했다. 시위로 인해 리스본의 '4월 25일 다리'를 포함한 간선 도로 곳곳에선 교통 체증이 발생했다.
석유 사용량의 90% 이상을 수입하는 방글라데시는 액화천연가스(LNG) 부족으로 전력 공급 제한제를 시행하고 방글라데시 경제의 핵심인 의류 공장이 일시 가동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스리랑카 정부는 매달 연료 가격을 결정한다. 가격 급등이 예상되자 주유소에 연료를 공급하는 유통업체들은 공급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쿠마라 라자팍샤 주유소사업자협회장은 기자들에게 "업체들이 손해를 보면서 영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에선 정부가 석유제품 가격을 한시적으로 최대 40% 인상한다고 발표하자 불과 몇 시간 만에 가격 인상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온라인에 확산한 영상에선 한 남성이 휘발유로 추정되는 액체를 자신의 머리에 붓고 분신 시도를 위협했다가 제지당했다.
각국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연료 가격 상승분을 국민에게 전가해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할 위험을 감수할지, 아니면 보조금과 지원을 확대해 공공 부채를 늘리고 자국 통화 가치를 위협할 위험을 감수할지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충격의 영향을 연구하고 있는 나오미 호세인 런던대학교 정치사회학자는 "통제되지 않는 인플레이션이 유권자들을 우파 쪽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중도 성향의 정부들은 충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고, 대부분 지역에선 현실적인 좌파 대안도 없다. 그 결과 포퓰리즘이 힘을 얻고 있다"고 평했다.
아시아 지역의 분쟁과 국가 건설을 연구하는 사나 자프리 호주국립대학교 강사는 "아시아나 개발도상국 전반에 지정학적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이 얼마나 남아 있겠느냐"며 "어느 시점에는 이것이 모두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km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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