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트럼프에서 발견한 주목할 사실들 [최종일의 월드 뷰]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80) 미국 대통령의 1980년대 후반 인터뷰를 들여다보면 지금의 트럼프가 놀라울 만큼 겹쳐 보인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동맹과 안보를 가치나 연대가 아니라 비용과 대가의 문제로 바라보는 세계관은 일관된다.
트럼프가 부동산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68년, 20대 초반이었다.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하며 업계에 발을 들인 그는 1980년대 들어 자신의 이름을 하나의 거대한 브랜드로 만들었고, 타블로이드지의 단골손님이자 대중적 명성을 적극 활용하는 사업가로 변모했다.
동시에 정치·사회 현안에도 목소리를 내면서 정계 진출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7년 9월 뉴욕타임스(NYT) 등에 실은 전면광고다. 미국이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있는 부유한 국가들을 대신 방어하는 데 막대한 돈을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담은 서한이었다.
주된 공격 대상은 동맹국인 일본이었다. 당시 미국이 페르시아만을 지키고 있지만 이 지역의 석유에 크게 의존하는 나라는 일본 등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왜 이들 국가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치르고 있는 인명 피해와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미국에 지불하지 않는가"라고 되물었다.
같은 날 CNN의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해서는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등쳐먹는(ripping off)" 모습을 보는 데 지쳤다고 했고, 일본·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를 "돈을 찍어내는 기계(money machine)"라고 불렀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해서도 미국이 부담하는 비용이 다른 회원국들의 부담과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1989년 들어서는 그의 생각이 구체적인 통상 정책으로 드러났다. 당시 일본은 엔고와 막대한 무역흑자를 바탕으로 축적한 자본으로 미국의 상징적인 자산들을 잇달아 사들이고 있었다. 9월 소니는 할리우드의 상징인 컬럼비아 픽처스를 인수했고, 10월에는 미쓰비시 부동산이 록펠러센터의 지배 지분을 인수했다. 미국에서는 일본이 제조업을 넘어 금융·부동산·문화산업의 상징까지 사들이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트럼프 역시 이를 주시했다. 1989년 11월 ABC 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일본의 미국 자산 매입 자체를 막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이 미국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돈으로 다시 미국의 상징적 자산을 사들이는 상황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해법은 관세였다. 그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을 "착취하는" 국가들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에 15~20%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독과 사우디아라비아, 한국도 거론했다. 미국의 재정적자 역시 같은 방식으로 해석했다. "왜 빚이 생겼습니까? 우리는 일본의 군사 방위를 공짜로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논리는 단순했다. 미국이 안보 비용을 부담하면 상대국은 그 비용을 아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그렇게 부유해진 상대국이 오히려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잠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동맹국에 더 많은 방위비를 부담시키거나 관세를 부과해 그 대가를 받아내야 한다고 봤다.
안보도 거래이고, 동맹도 거래다. 이것이 1980년대 후반 트럼프가 보여준 세계관의 핵심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인식이 당시 미국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된 주장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뉴스가 1989년 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40% 이상은 일본의 경제력이 소련의 군사력보다 미국 안보에 더 큰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응답자의 3분의 2는 일본산 수입품을 제한해야 한다고 답했고, 10명 중 7명 이상은 일본이 자체 방위를 위해 더 많은 군사력을 갖춰야 하더라도 스스로 방위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만 트럼프의 사고가 당시 미국 외교의 주류였던 것은 아니다. 냉전이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소련이라는 명확한 공동의 적이 존재했다.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는 자유진영의 안보를 유지하는 동시에 해외 군사거점과 전략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동맹은 미국에 비용을 요구하는 동시에 미국의 힘을 확대하는 수단이었다.
1980년대 이후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 미국의 가장 위협적인 경제적 경쟁자로 떠올랐던 일본은 이후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을 겪으며 장기 침체에 빠졌다. 소련은 해체됐고, 유럽연합(EU)이 출범했다. 미국의 새로운 전략적·경제적 경쟁자로 중국이 부상했다.
세계의 판도가 이처럼 크게 바뀌었지만 트럼프의 단순한 논리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달라지지 않았다. 공격 대상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미국이 비용을 부담하고 상대국이 그 혜택을 누린다는 인식은 그대로였다. 1980년대 후반의 발언에서 등장했던 거친 표현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반복됐다.
달라진 것은 오히려 미국 사회였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은 세계화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그 혜택이 모든 지역과 계층에 고르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제조업 쇠퇴와 지역경제의 몰락, 중산층의 불안, 금융위기 이후의 불평등이 누적됐다.
그 과정에서 1980년대 후반 한 사업가의 과격한 주장처럼 들렸던 "미국이 왜 남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미국 사회에 점점 깊숙이 파고들었다.
트럼프의 정치적 세계관이 40년 동안 완전히 그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반체제 포퓰리즘과 제도권에 대한 불신이 더해졌다. 워싱턴 정치 엘리트와 주류 언론에 대한 반감, 이민자 유입과 국경 개방에 대한 거부감,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반발 등이 결합하면서 오늘날의 트럼피즘(트럼프주의)이 형성됐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2025년 다시 백악관에 입성한 것은 이 질문이 마침내 미국 정치의 중심에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가 4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그를 받아들일 만큼 변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트럼프라는 개인이 물러난다고 해서 미국 사회에 누적된 '글로벌 리더십의 비용'에 대한 불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동맹국들이 이제 해야 할 일은 미국의 안보 우산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미국이 동맹을 통해 무엇을 얻는지도 보여줘야 한다. 달라진 동맹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각자의 국익을 다시 계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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