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 장기화에 흔들린 미국의 힘…"세계질서 지킬 수 있나" 의문 증폭
요격미사일 재고 급감, 유럽·아시아까지 번진 다중 전선 우려
-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이란과의 전쟁이 길어지면서 미국의 핵심 미사일 요격체계 비축량이 급감하자, 미국이 유럽·중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다중 전선에서 동맹을 방어할 물리적 능력이 있는지를 두고 국제사회 전반에서 회의론이 확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한 대외 전략에 더해 군사력의 물리적 한계까지 드러나면서 동맹국들의 안보 불안이 임계점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1일(현지시간) 심층 분석을 통해 미국의 대(對)이란 군사작전이 미국의 정밀 요격 미사일과 장거리 타격 자산을 심각하게 고갈시킨 점을 지적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추산에 따르면 미국은 개전 전 보유했던 패트리엇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미사일 요격탄의 절반을 소진했으며, 토마호크와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JASSM)도 전체의 3분의 1가량 소모했다.
특히 탄도미사일 요격의 핵심인 '패트리엇 PAC-3 MSE'의 재고 부족은 서방 진영 전체의 치명적 약점으로 부상했다.
CSIS는 현재 미군에 남은 패트리엇 요격탄이 800여 발 수준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방산기업 록히드마틴의 지난해 PAC-3 생산량이 620발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소모 속도를 감당하기 역부족이다. 미 국방부가 생산량을 수배로 늘리는 대규모 증산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 설비 확충과 양산까지는 수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러한 전력 공백은 전 세계 전선으로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미국은 중동 전력 보강을 위해 대만에 대한 140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일시 동결했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배치됐던 사드·패트리엇 포대와 유일한 정규 항공모함까지 중동으로 차출했다.
이에 더해 한미연합훈련 축소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를 향한 유화적 발언이 겹치며 동아시아 억지력 약화 우려를 낳았다.
유럽의 위기감도 고조됐다. 러시아는 제재 속에서도 월 100발 이상의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양산하며 전시 생산체제를 갖췄다.
탄도미사일 1발을 요격하는 데 통상 2~3발의 요격탄이 필요한 비대칭 구조 속에서, 서방의 미사일 지원 축소로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이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독일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요국 내부에서는 미국의 핵우산과 방위 공약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마저 표출되는 실정이라고 WSJ는 전했다.
미국 외교협회(CFR) 또한 최근 보고서에서 "무기고 고갈로 인해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을 억제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며 즉각적인 전시 생산체제 전환을 촉구했다.
다만 백악관과 미 국방부는 "미군은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충분한 탄약과 비축량을 유지하고 있다"며 무기 부족설을 공식 부인했다.
호주 로위연구소 등 일각에서도 미국의 잠재력과 기술·경제적 회복 탄력성을 감안할 때 적성국들이 섣부른 오판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억지력의 핵심이 '상대의 인식'에 달려 있다고 경고한다.
평시 체제에 머물러 있는 서방의 산업 기반 한계가 노출된 이상, 러시아·중국·이란·북한 등 적성국들이 전시 생산 체제로 미사일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미국의 방위 역량에 대한 신뢰 저하는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최대 군사력과 기술력, 금융력, 동맹망을 가진 국가다. 하지만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능력은 단순한 군사력 규모가 아니라 필요한 시점에 무기를 공급하고, 동맹국이 미국의 지원을 확신하도록 만드는 데 달려 있다고 WSJ는 짚었다.
이란전이 남긴 가장 큰 경고는 미국의 힘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여러 전선에서 오래 유지할 산업 기반과 전략적 우선순위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허드슨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자 올해 초까지 우크라이나와 중동 관련 국무부 고위직을 지낸 루도빅 후드는 WSJ 인터뷰에서 "이번 경종은 필수적이었다. 서방 강대국들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잘못된 안도감에 빠지기 쉬웠다"며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은 불쾌한 일이지만, 미래에 훨씬 더 전략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용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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