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울시 前 CIA국장 타계…"북핵 위기 당시 YS와 극비회담"
냉전 종식 후 CIA 수장 재임…北 미사일·테러 경계
- 이정환 기자
(서울=뉴스1) 이정환 기자 = 빌 클린턴 미 행정부 초대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내며 냉전 종식 후 북한의 위험성을 경고한 제임스 울시 전 국장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
월스트리트저널(WSJ),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울시 전 국장의 아내 콘치나 사노프는 직접적 사인이 뇌졸중이라고 밝혔다. 사노프는 울시가 해외 주재 미국 외교관들에게 나타난 원인 불명의 질환 '아바나 증후군' 여파로 지난 몇 년간 건강이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1941년 9월 21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태어난 울시는 1963년 스탠퍼드 대학교, 1968년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했다. 민주당원으로 군사안보 분야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국방 민주당원(Defense Democrat)'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해군 차관보를 지내고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군축 업무를 맡는 등 양당 모두에서 공직을 수행했다. 조지 H.W. 부시 행정부에서는 유럽재래식무기감축협정(CFE) 회담 담당 미국 대표를 지냈다.
냉전이 종결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CIA 국장으로 재임했다. 당시 외교 정책이나 국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이 깊지 않았던 클린턴 대통령이 공화당을 만족시킬 만한 강경파 이력을 가진 인물을 CIA 국장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당시는 냉전 종식으로 소련의 군사 위협이 줄어든 만큼, 안보 예산을 다른 분야로 돌리자는 '평화 배당금' 논의가 대두된 시기였다. 울시는 국장 재임 기간 CIA 예산의 급격한 감축을 막고 조직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1993년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소련의 붕괴를 언급하며 "우리는 거대한 용을 죽였다"면서도 "우리는 이제 경악할 만큼 다양한 독사들로 가득 찬 밀림 속에 살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는 CIA가 이란, 북한 등 적대국뿐만 아니라 테러단체와 무기 확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시의 재임기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하면서 시작된 제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시기였다.
울시는 1994년 1월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해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만나 미국 정부가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같은 해 3월에는 북한의 대포동 탄도미사일 개발 사실을 공개하며 "동북아·동남아·태평양 지역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1994년 CIA 고위 간부인 올드리치 에임스가 러시아에 중요 기밀을 넘긴 혐의로 체포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그는 체포 이후 CIA의 "구조적 실패"를 인정했지만, CIA 내 책임자들에 대한 중징계는 거부해 비판받았다.
울시는 미 의회와의 갈등과 대통령과의 소통 부재로 임기 중 어려움을 겪었고, 1995년 12월 취임 23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공직과 법조계 활동 외에도 네오콘 성향의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등 정책 연구소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2016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선임 고문으로 합류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상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jw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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