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 위대해졌다"…체념의 시대에 쿨한 반항 '문화적 상징' 지위

팝스타나 배우, 인플루언서 흡연 사진 늘어…'사교성 흡연'도 등장
트럼프 2기의 허무감도 작용…판매량은 줄지만 존재감은 상승

담배 ⓒ AFP=뉴스1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최근 몇 년 사이 담배가 다시 유행하며 문화 무대에 등장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4일(현지시간) 보고했다.

팝스타 두아 리파와 배우 그레이시 에이브럼스나 복고풍 분위기를 좋아하는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이 무심하게 담배를 손에 쥔 멋진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아졌고, 한때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었던 흡연이 ‘쿨한 반항’의 상징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이런 문화적 부활에는 팬데믹 이후의 허무와 트럼프 시대의 냉소가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뉴스레터 작가 델리아 카이는 2023년 가을 첫 흡연 경험을 “불행히도 완벽했다”고 회상했다. 팬데믹을 지나며 죽음을 가까이 느낀 뒤인 당시 그는 친구와 야외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친구가 담배를 권했다. 카이는 담배를 피우는 그 순간 "아 이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이유를 알겠다"고 느꼈다. 그녀는 이후 친목을 즐기는 자리에서 ‘사회적 흡연’을 즐기게 되었고, 주변에서도 예상치 못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전자담배가 ‘현대적이지만 못생기고 촌스러운’ 이미지로 자리 잡았지만, 담배는 아날로그적이고 고전적인 매력을 다시 뽐내고 있다. 한 코미디언은 “아이폰 대신 LP로 음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담배는 구시대의 악습이지만 동시에 향수와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로 소비된다.

이러한 흐름은 오바마 시절의 ‘웰니스(웰빙) 열풍’과 대비된다. 당시 사람들은 건강과 지구를 지키려는 낙관주의에 몰입했다. 하지만 기후 위기 뉴스레터 운영자 에밀리 앳킨은 "지금 우리는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트럼프 2기 시대에 살고 있다. 마치 '그냥 담배나 주세요. 어차피 세상은 나아지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담배를 피우는 심리를 설명했다.

담배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솔직함에 있다고도 했다. 스포츠 도박, AI 챗봇, 소셜미디어 같은 현대적 악습은 중독성과 파괴성을 숨기며 ‘재미’와 ‘혁신’을 내세운다. 한 사용자는 반면 담배는 “우린 나쁘다”라고 말한다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하게 매력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개인들의 인식에는 오랫동안 대형 담배 회사들이 만들어놓은 담배 이미지가 깔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담배 광고의 영향을 연구하는 그룹을 설립한 외과의사인 로버트 K. 잭클러는 "지난 100년간 이루어진 모든 천재적인 마케팅 덕분에 흡연이 연애 성공과 사회적 인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며 "그리고 흡연은 당신을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배우 루이 주르당이 할리우드에서 담배를 든 채 포즈를 취한, 날짜가 명시되지 않은 자료 사진. ⓒ AFP=뉴스1

WP는 실제로 사회적 흡연자들이 담배업계의 현재 공식 입장을 그대로 따라서 한다면서 그 예로 흡연자들 사이에서 “담배는 자연적이다” “다른 대안보다 순수하다” “유행을 타지 않는다” 같은 문구가 무심코 반복된다고 했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 시절 흡연 규제 기관이 폐지되고 멘솔 담배 금지 계획이 철회된 것도 이런 흐름을 강화했고 일부 인플루언서와 터커 칼슨 등의 유명인들은 니코틴을 ‘몸에 좋은 자연적 물질’이라 포장하며 확산시키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이런 담배의 이미지 개선에도 실제 판매량은 줄고 있다고 전했다. 즉 흡연 자체보다 흡연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클러는 “연예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흡연이 더 많다. 그게 마치 모두가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담배는 실제보다 더 큰 문화적 존재감을 갖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담배를 다시 찾는 이유는 역설적이다. 미세플라스틱, 전자기기 방사선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는 시대에, 담배는 오히려 ‘알려진 악’으로서 위안을 준다. 카이는 “담배는 연구가 충분히 되어 있어 놀라움이나 모호함이 없다.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안다”고 말했다.

담배는 건강을 해치지만 동시에 ‘밖에 나가서 쉬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사회적 행위를 가능하게 한다. 카이는 “손에 담배를 들고 서 있는 게, 휴대전화를 들고 무표정하게 있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했다. 흡연은 여전히 치명적이지만, 그 치명성이 오히려 오늘날의 불안한 세대에게 매혹으로 다가온다는 설명이다.

물론 그 대가도 분명하다. 앳킨은 “순간적으로는 너무나 기분이 좋지만, 숙취를 훨씬 더 악화시키고, 입안에 역겨운 맛을 남긴다. 다음 날 아침엔 반드시 후회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흡연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경험으로 이 후회 역시 흡연 문화의 일부가 됐다고 WP는 밝혔다.

ky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