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이란을 못 꺾고, 이란은 美를 못 몰아낸다[최종일의 월드 뷰]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지난 2월 28일 대(對)이란 군사작전 '에픽 퓨리'(Epic Fury) 진행 점검 상황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택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 트럼프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이 모여 있다.(백악관 엑스 계정, 재판매 및 DB금지) ⓒ 뉴스1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지난 2월 28일 대(對)이란 군사작전 '에픽 퓨리'(Epic Fury) 진행 점검 상황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택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 트럼프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이 모여 있다.(백악관 엑스 계정, 재판매 및 DB금지) ⓒ 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다시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미군이 이란의 레이더와 미사일 시설 등 해협 통제와 관련된 핵심 자산을 타격하면, 이란은 이에 맞서 걸프 지역 내 미군 기지를 공격하는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충돌의 불씨는 지난달 체결된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MOU)의 모호한 문구였다. MOU 제5항은 상업용 선박의 안전한 통항을 위해 이란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둘러싼 양측의 해석은 정반대다.

이란은 이를 자국이 호르무즈 해협 관리 권한을 인정받은 것으로 받아들여, 자국 지정 항로만 이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걸프 국가들은 이란에 안전한 통항을 보장할 책임만 있을 뿐, 해협 운영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갈등의 범위는 호르무즈 해협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란 원유 수출 제재 완화, 동결 자산 해제 문제, 레바논 내 헤즈볼라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현재 미·이란 대치의 중심에는 단연 호르무즈 해협이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충돌이 단순히 MOU 문구를 둘러싼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이면에는 호르무즈를 둘러싼 양측의 근본적인 전략 경쟁과 오랜 기간 쌓여온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이 오만 해역을 활용한 대체 항로를 구축해 장기적으로 자국의 호르무즈 영향력을 약화하려 한다고 의심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인 오만이 이란과 협력해 공동 관리 시스템을 논의하려 하자, 폭격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위협한 바 있다.

특히 최근 오만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남·북 항로 분리 관리안'을 두고, 이란은 미국이 우회 전략을 제도화해 자국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뱃길이 아니다. 이란은 이번 전쟁을 거치면서, 세계 에너지 공급망과 직결된 이 해협을 실제 통제함으로써 전 세계를 인질로 잡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를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이란은 해협에서 영향력을 잃는 순간 대외 협상력이 크게 약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란은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이 자국 관리 체계와 조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움직임에 군사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무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값싼 드론과 휴대용 미사일만으로도 상선을 위협할 수 있는 환경에서, 미국이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모든 선박의 안전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이 이란 전역의 핵심 인프라를 공격하며 채찍을 높이 들면, 이란 역시 걸프 지역 석유 기반시설을 겨냥한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송유관과 에너지 시설, 나아가 담수화시설 같은 민간 인프라까지 칠 수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을 통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어지럽히면 홍해 바닷길도 위험해진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쓰레기", "제정신이 아닌 집단"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을 감안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보다 강력한 군사 옵션을 검토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란을 완전히 굴복시킬 현실적인 선택지로는 대규모 지상군 투입이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 정치권과 여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위험한 선택이다. 특히 중간선거를 불과 4개월 앞둔 상황에서 장기전은 백악관에도 치명적인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결국, 미국은 이란을 응징할 수 있지만 굴복시킬 수 없고, 이란은 호르무즈를 위협할 수 있지만 미국을 중동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 없다. 이것이 현재 양측이 마주한 냉혹한 현실이다.

그래서 앞으로 수일 또는 수주 동안 양측은 전면전을 피하면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협상 환경을 만들기 위해 '조절된 긴장 고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미국의 최근 공격이 이란을 압박해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다. 지금의 어둠은 파국의 시작이 아니라, 새로운 협상의 문을 열기 위한 마지막 진통일지도 모른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