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 독립기관 대통령 해임권 확대…연준 해임엔 제동(종합)

규제기관 FTC 위원 해임 승인…트럼프 "역사적 판결" 환영
트럼프의 쿡 연준이사 해임 시도는 막아…"美경제 불안정 위험"

미국 워싱턴DC 소재 연방대법원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이정환 기자 = 미국 연방대법원이 29일(현지시간) 리사 쿡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를 해임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

반면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독립 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해임권은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로이터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연방대법원은 이날 쿡 이사의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연준 이사직 해임을 막은 하급 연방법원의 판결을 중지해 달라는 법무부의 요청을 5대 4 판결로 기각했다.

보수 성향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동료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 대법관이 진보 성향 대법관 3명과 함께 찬성 의견을 냈다. 보수 성향의 대법관 4명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판결문을 작성한 로버츠 대법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쿡에게 법률이 보장한 절차적 보호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그러한 보호 조치가 없었기에 쿡은 대통령이 제기한 혐의에 대해 제대로 반박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캐버노 대법관은 보충 의견에서 "연준의 지위에 대한 일시적인 불확실성조차도 정치적 격변을 촉발할 수 있다"며 "미국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법원은 판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이사를 해임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구성하는 요소가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하지는 않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미국 연방준비법은 연준 이사를 오직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해임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쿡 이사는 지난 2022년 조 바이든 행정부 시기 임명된 최초의 흑인 여성 연준 이사로, 오는 2038년까지 임기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지난해 8월 트럼프 대통령은 주택담보대출 서류에 거주지를 허위 기재했다는 의혹을 이유로 쿡 이사의 해임을 발표했다. 미국 대통령이 연준 이사를 해임하려 시도한 것은 중앙은행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쿡 이사 측은 의혹을 부인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에 충성파를 앉혀 통화정책을 통제하려 한다고 반발해 왔다.

쿡 이사는 이번 판결을 두고 "세대에 걸쳐 건전한 경제 관리의 기반이 된 원칙, 즉 연준이 정치적 개입 없이 오직 증거와 독립적인 판단에 따라 모든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확립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독립 기관인 FTC 위원을 해임할 권한이 있다는 판결을 6대 3으로 내렸다. FTC는 소비자 보호와 반독점법 집행 기능을 수행하는 독립 규제 기관으로, 총 5명의 초당적 위원으로 구성된다.

지난해 3월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레베카 슬로터 FTC 위원의 해임을 발표하며, 슬로터의 위원직 유지가 "행정부의 우선순위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슬로터는 정당한 사유 없는 해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해 하급법원에서 복직 판결을 받아냈으나, 대법원은 FTC가 "의심의 여지 없이" 행정권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대통령의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을 통해 "대통령이 함께 일하고자 하는 이들을 인준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상원의 몫이지만, 의회나 법원 모두 대통령이 함께 일할 수 없는 이들을 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언급했다.

이번 판결은 대통령의 독립 기관 위원 해임을 불법이라고 판결한 1935년 '험프리스 집행인 대 미국' 판례를 90년 만에 깬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1935년 판례를 통해 미 의회가 다수 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기관의 관료를 임의로 해임하는 권한을 대통령이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WSJ는 대법원이 연준에 "정치적 개입으로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을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에게는 다른 독립 규제 기관의 관료들을 해임할 수 있는 광범위한 재량권을 부여했다고 짚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미 연방 기관으로는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 등이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대법원에서 슬로터 사건에 대한 중요한 승리를 거뒀다. 1930년대부터 역대 대통령들이 갈망하던 역사적이고 전례 없는 판결"이라며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쿡 이사의 판결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잘못을 저지른 인물이 미국의 복지에 관한 중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즉각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이라며 후속 대응을 예고했다.

jw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