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빌 게이츠 구상에 SK 팔걷어"…美와이오밍서 핀 '미래 원전'

테라파워, 액체나트륨 냉각 기반 첫 SMR '케머러 1호기' 착공…2031년 상업운전 목표
SK·KHNP 재무적 투자, HD현대·두산 공급망 참여…"韓기업 없인 성공 어렵다"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시의 테라파워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현장.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원전 테스트 시설이다.(테라파워 사진제공,재판매 및 DB금지) ⓒ 뉴스1 류정민 특파원

(와이오밍 케머러=뉴스1) 류정민 특파원 = 지난달 28일 찾은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Kemmerer)시(市).

미 서부 거점인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2시간가량 차로 이동해 닿은 케머러시의 광활한 대지 위에 펼쳐진 공사 현장에서는 여러 대의 굴착기와 불도저 등 중장비가 부지런히 오가며 터파기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곳은 미국 첨단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테라파워(TerraPower)가 지난 3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허가를 받아 착수한 소듐냉각고속로(SFR) 건설 현장이다.

테라파워는 빌 게이츠가 2008년 설립한 첨단 SMR 선두 기업으로, SK는 2022년 2억 5000만 달러(약 3800억 원)의 지분 투자를 통해 2대 주주에 올라섰다.

테라파워는 이곳에 SFR에 기반한 첫 SMR인 '케머러 1호기'를 2031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다는 목표로 건설 중이다. 케머러 1호기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10년의 심사를 거쳐 승인한 신규 상업용 원전이다.

미국 내에서도 처음 건설되는 SMR이라는 점에서 에너지는 물론 이와 맞물린 인공지능(AI) 등 관련 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다.

"차세대 원자력 에너지 탄생지, 대미투자사업 포함 환영"

이날 현장에서 취재진을 맞이한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이곳을 에너지의 미래를 건설하는 곳이라고 말한다"면서 "이곳은 차세대 원자력 에너지의 탄생지"라고 소개했다.

특히 르베크 CEO는 투자와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을 소개하며 지난해 11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합의로 발표한 한미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 상 대미투자사업에 SMR이 포함될 가능성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SK는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다음인 두 번째로 큰 투자자이며 한국수력원자력(KHNP)도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면서 "아울러 HD현대는 투자자이자 제조사, 두산에너빌리티는 주요 제조사로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우리는 양국 정부가 SMR을 대미투자사업에 포함할 경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르베크 CEO와의 미팅 후 현장에서 마주한 곳은 액체 나트륨(소듐·Sodium) 테스트 시설이었다.

이번 테라파워의 SFR 기반 SMR은 계획보다 9개월 빠르게 건설 허가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국방 및 AI 분야를 위한 원자로 승인 절차 신속화 △향후 25년 내 원전 발전 용량 4배 확대를 목표로 하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개편 △2026년 7월 4일까지 실험용 소형 원자로 3기 가동을 목표로 규제 완화 △관련 기술 및 산업기반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4건의 행정명령에서 서명하는 등 차세대 원전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SFR은 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기존 경수로형 원전과 달리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SFR에 적용되는 액체 나트륨은 섭씨 880도의 고온에서도 끓지 않아 대기압에 가까운 환경에서 운전이 가능하다. 기존 경수로형 원전은 섭씨 약 300도가 넘는 운영환경에서 물이 끓지 않도록 높은 압력을 유지해야 해 고압 운영으로 인한 위험성이 있다.

특히 SFR 기반 SMR은 전원이 차단돼도 자연 냉각이 가능해 비상 상황 시 안정성을 확보하고, 기존 원전에서는 불가능한 출력 조정도 용이해 전력수요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유연성도 갖추고 있다.

공사 현장에선 모듈형 설비들이 조립되는 시설과 원자로와 발전기가 위치할 장소, 핵연료 보관을 위한 장소 등 원자력 발전을 위한 기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르베크 CEO는 "이 모든 과정은 한국에서 시작된다"면서 "현재 필요한 수백만 달러 규모의 부품을 HD현대와 두산에 주문해 두었고, 올해부터 제작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품 제작에는 평균적으로 3년의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2029년 초에 와이오밍 현장에서 조립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최태원 SK 회장과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이 2025년 8월 21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과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이 만찬 회동을 갖고 소형모듈원전(SMR)과 백신 등 에너지 및 바이오 사업 분야에서 사업협력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8.22 ⓒ 뉴스1
2035년까지 SMR 12기 완공 목표…"최태원 SK회장, 4년전 투자 결정 높이 평가"

테라파워는 이곳을 기점으로 삼아 2035년까지 총 12기의 SMR을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르베크는 "수주 활동도 매우 활발해 메타(Meta)는 최대 8기의 원자로를 신청했고, 현재 부지 선정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테라파워의 SMR은 실제 원자로가 가동되는 '원자력 아일랜드'와 원자로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저장하고 출력을 높이는 '에너지 아일랜드' 등 크게 2개 시설로 구성된다.

패트릭 영 테라파워 원자로 프로젝트 총괄 수석 부사장은 "현재 건설 중인 원자로는 345메가와트급 출력의 소듐 냉각 고속로"라면서 "이 원자로는 열에너지 저장 시스템과 결합해 최대 500메가와트까지 약 5시간 반 동안 출력을 높일 수 있는 '부하 추종'(load following) 기능이 있다"고 설명했다.

르베크 CEO는 "예를 들어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 하나만 해도 나트륨 원자로 1기에 해당하는 전력이 필요하다"면서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도 지난해 테라파워에 투자했는데, SK의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글로벌 인공지능(AI) 확산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의 핵심 기반인 첨단반도체 생산과 반도체에 기반한 데이터센터 운영에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필수라는 취지의 설명이다.

르베크는 "우리는 4년 전에 테라파워에 투자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비전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면서 "당시 SK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가 아니라 SK 자체 사업의 탈탄소화를 원한다고 밝혔는데, SK가 매우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테라파워에 투자한 것은 매우 선견지명이 있는 결정이었다"라고 말했다.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시에 위치한 테라파워의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현장.(테라파워 사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뉴스1 류정민 특파원
SK이노, 테라파워 협업 기반 국내 첫 SMR 건설 추진…2035년 상업화 목표

SK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에 그치지 않고 테라파워의 SFR 실증 경험과 첨단 기술을 국내 첫 4세대 SMR 건설에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SK그룹 내 대표 에너지 기업인 SK이노베이션(096770)은 자체 보유한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소재 및 에너지 분야의 기술 경쟁력, 세계 최고 수준의 테라파워 SMR을 결합, 차세대 에너지 시장의 선두 주자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특히 AI 데이터센터, 배터리, 반도체 등 SK그룹의 핵심 산업과 연계한 에너지 설루션 전반에 걸친 생태계 구축에도 나선다는 계획으로, 2035년 상업화를 목표로 국내 최초 4세대 원전인 SMR 건설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SK이노베이션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한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에 포함된 사전검토제를 활용해 SMR 건설 기간 및 상용화를 상당 부분 단축할 계획이다. 사전검토제는 개발자가 건설 허가 등 인허가를 신청하기에 앞서 규제기관으로부터 사전 검토를 받을 수 있는 제도로, 올해 11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의 2대 주주로서 SFR 기반 SMR 기술의 아시아 시장 독점 권리도 확보했다. 시장조사업체 아이디테크엑스(IDTechEx)는 글로벌 SMR 시장이 2033년 724억 달러(약 11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테라파워의 첨단 원전 기술과 건설 경험을 한국의 1호 SMR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적극 활용하겠다"면서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미래 산업의 전력난 해소는 물론, 한국이 글로벌 첨단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르베크 테라파워 CEO는 "우리는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과 소듐 고속로 기술 분야에서 협력해 왔고, 한국에는 훌륭한 투자자들도 있다"면서 "미국은 오랫동안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듐 원자로 기술이 미국에서 시작되더라도 한국 파트너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5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의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현장에서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6.02. ⓒ 뉴스1 류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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