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이슬라마바드 노딜'…타협 대신 '레드라인'만 확인했다
양측 평행선…"이란의 최대치, 美의 최소 요구에도 못 미쳐"
4월 22일 '2주 휴전 종료' 임박…중동 정세는 다시 폭풍전야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미국과 이란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21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아무런 합의 없이 결렬됐다. 이번 협상은 양측이 서로 수용 불가능한 '마지노선'을 재확인하는 과정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으며, 이에 따라 중동 정세는 다시 군사적 긴장과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2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이 제시한 '레드라인'이 △핵 프로그램의 완전 중단 및 고농축 우라늄(HEU) 인도 △주요 핵 시설의 영구적 해체 △역내 광범위한 긴장 완화 체계 수용 △하마스·헤즈볼라·후티 등 대리 세력 지원 중단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 재개방 및 통행료 폐지라고 보도했다.
회담 결렬 직후 이란 외교부는 미국의 요구를 "과도한 야심"과 "비현실적 탐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다만 일부 사안에서는 의견 접근이 있었으나, 2~3개의 핵심 쟁점에서 끝내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고 밝혔다.
WP에 따르면 이란은 협상 막판까지 세 가지 분야에서 양보를 거부하거나 역공세를 펼쳤다. 우선, 이란은 핵 관련 미국의 요구를 주권 침해로 규정하며 거부했다. 이란은 이를 자국의 정당한 권리이자 최소한의 방어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미국 내에 묶여 있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산에 대해 즉각 해제를 요구했다. 이 자금을 폭격으로 입은 시설 파괴 등에 대한 전쟁 배상금 명목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란은 아울러 해협 통행료 징수가 불법적 "갈취"라는 미국의 주장에 맞서, 이를 전쟁 피해 복구를 위한 정당한 수익원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해협 운영권이 자국의 지정학적 권한임을 강조하며 조건 없는 완전 재개방에도 난색을 보였다.
미국 대표단을 이끈 JD 밴스 부통령은 이슬라마바드를 떠나며 이란에 강력한 경고를 남겼다. 그는 "우리의 한계선을 명확히 전달했으나 그들이 거부했다"며 "합의 결렬은 미국보다 이란에 훨씬 더 나쁜 소식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특히 이란의 '핵 야욕'을 최대 걸림돌로 지목하며 장기적인 비핵화 의지가 확인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양측의 요구 사항에 대해 이스라엘 싱크탱크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대니 시트리노비치 선임연구원은 SNS를 통해 "이란이 제시할 수 있는 최대치가 미국의 최소 요구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양측 모두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는 한 합의보다는 충돌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분석했다.
협상 결렬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외교적으로 어려운 선택지 앞에 서게 됐다고 AFP통신은 전망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까지 꺼냈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의 브라이언 카툴리스 연구원은 "군사 중심적 접근일 뿐 전략이 없는 대응"이라고 비판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시간을 벌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시블리 텔하미 메릴랜드대 교수 역시 이를 "자기파괴적 조치"이자 미국의 국제 신뢰를 훼손하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군사적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국내 여론 악화도 큰 부담이다. 시트리노비치 연구원은 해상 봉쇄가 미군을 이란 혁명수비대의 보복 공격에 노출시키고 막대한 자원만 소모할 것이라 우려했다.
미국 내 여론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CBS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 이상이 해협 재개방을 통한 유가 안정과 이란 국민 자유 보장을 지지했지만, 전쟁 목표 달성에 동의한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가 상승과 장기 군사 개입은 트럼프 행정부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민주당의 팀 케인 상원의원은 "미국이 과거 핵 합의(JCPOA)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던 전력 때문에 이란과의 신뢰 구축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외교적 해법이 실종된 자리에 다시 '이스라엘의 암살 명단'이 거론될 만큼 살벌한 대결 국면이 도래하면서, 오는 22일 휴전 종료 이후의 중동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AFP는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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