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외교안보전략, 이란戰 '자책골'에 와르르…中·러 견제도 흔들

중동 전력 집중하며 인도태평양·서반구·우크라전 모두 '뒷전'
중동평화 구상도 흔들…빈약한 美우선주의에 '베트남 패전 악몽' 거론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내각회의 참석 도중 위쪽을 응시하고 있다. 2026.3.26 ⓒ 로이터=뉴스1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이란 전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외교안보 전략 전반을 무너뜨리는 '자책골'로 번지고 있다. 목적을 잃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중동 정세를 들쑤신 것은 물론 미국의 중국·러시아 견제 구상마저 흔들리는 모습이다.

서반구·인도태평양·우크라, 모두 중동 뒷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이란 전쟁에 관한 대국민 연설에서 "앞으로 2~3주 동안 맹렬한 타격을 가해 그들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는 초강경 발언으로 미군 철수 구상이나 종전 협상 진전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대 이란 '장대한 분노' 작전으로 시작된 전쟁은 5주째에 접어들었다. 미군은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병력을 중동에 배치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현재 군사작전에 투입 가능한 미 해군 함정의 41%가 중동에 전개돼 있다고 분석했다. 4만여명의 기존 중동 배치 병력에 더해 해병대·공수부대 등 지상군 7000명을 투입한 데 이어 1만명 추가 파병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새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명시한 우선순위도 뒤집혔다. 모든 시선이 중동으로 쏠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지목한 미국의 서반구 패권 회복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작년 10월 30일(현지시간) 미중정상회담을 위해 부산 김해국제공항 인근 김해 공군기지에 도착해 악수하고 있다. ⓒ AFP=뉴스1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은 한국에 있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일부를 포함해 인도·태평양 및 다른 지역의 방공 미사일을 중동으로 차출했다. 역내 미국의 대중 군사 봉쇄선인 '제1열도선'에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겠다던 기조는 퇴색했다.

3월 말 예정됐던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은 미중 무역 전쟁의 향방을 가를 중대 이벤트였지만 이란 전쟁으로 연기됐다. 이란이 중동의 석유 수송 관문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중국 위안화와 코인으로 통행료를 받겠다고 나서면서 중국이 역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도 커졌다.

우크라이나 종전도 다시 멀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종전을 미국의 '핵심 이익'으로 규정하고, 조기 종전으로 러시아와의 정치경제 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미국·우크라이나·러시아의 추가적인 3자 협상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폐쇄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에 대응해 러시아산 원유 제재를 일시 완화했다. 러시아가 이를 통해 전쟁 비용을 충당하면 종전을 합의할 동기도 줄어든다.

원칙 없는 美 우선주의…'베트남 패전' 재현되나

이란에 집중할수록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 전략은 오히려 어그러지는 모습이다. 걸프국에 대한 이란의 무차별 보복으로 미국 주도의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국들의 관계 정상화) 확대는 요원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에너지 생산 증가와 역내 긴장 완화를 강조하며 "미국이 중동에 집중해 온 역사적 이유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제 중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성패를 가를 최대 변수가 됐다.

왼쪽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자료사진) 2025.8.23 ⓒ AFP=뉴스1

트럼프가 주장하는 미국 우선주의의 민낯도 드러났다. 레버카 리스너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국익 극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유연한 현실주의' 전략은 결국 아무 원칙이 없는 '사후 합리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 않고 '비개입주의'를 선호한다더니 이란 작전에서 노골적으로 이란 정권 붕괴를 천명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란 전쟁을 놓고 '전략적 퇴보', '전략적 어리석음'이라는 비아냥이 이어지고 있다.

로버트 페이프 시카고대 교수 등은 이란 전쟁이 사실상 미국의 패전으로 평가받는 '베트남 전쟁'(1960~1975년)의 악몽을 재현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가 낭비한 정치적 자산을 놓고 후임들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z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