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트럼프는 '에너지 황제'를 꿈꾼다 [최종일의 월드 뷰]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으로 복귀하고 있다. 2026.03.01 ⓒ 로이터=뉴스1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으로 복귀하고 있다. 2026.03.01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전쟁을 시작한 궁극적 목적을 이해하려면 그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에너지 지배(Energy Dominance)' 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이란 전쟁은 단순히 핵 문제 때문이 아니라, 세계 에너지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트럼프가 이 개념을 처음 꺼내든 것은 2016년 대선 유세였다. 미국은 셰일 혁명으로 석유 생산량이 폭증하던 시기였다. 에너지 독립을 넘어 해외 수출로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았다.

트럼프 2기 집권 동안 이 전략은 더욱 힘을 받았다. 그는 생산 증대와 비용 절감을 위해 국가에너지지배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지난해 3월에는 핵심 광물 생산 확대를 지시하는 행정명령도 내렸다.

미국이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2026년 기준, 미국의 하루 석유 생산량은 약 2400만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1090만 배럴)와 러시아(1050만 배럴)를 합친 것보다 많다. 미국은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이기도 하다.

에너지를 지렛대로 삼는 외교·안보 전략

트럼프는 에너지를 단순한 경제 수단이 아닌 외교·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활용하고 있다. 방식은 단순하다. 화석 연료를 중심으로 미국의 에너지 점유율을 극대화하고, 이를 지렛대로 삼아 국내외의 경쟁자들을 압박하는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정책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지난 1월 초 베네수엘라 공습 및 니콜라스 마두로 체포로 베네수엘라의 석유에 대한 영향력을 높였고, 그린란드의 전략적 핵심 광물에도 강한 관심을 보여왔다. 베네수엘라의 추정 석유 매장량은 3030억 배럴로 세계 1위이며, 그린란드의 일부 희토류는 전 세계 수요의 25%를 충족할 수 있다.

이란 테헤란 샤흐란 연료 저장시설에서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격이 보고된 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6.3.8 ⓒ 로이터=뉴스1

이란 전쟁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란은 추정 석유 매장량이 2080억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2670억 배럴)에 이어 세계 3위다. 트럼프는 이란 공격 전날 연설에서 "미국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 1위의 에너지 초강대국으로 굳히고 있다"고 선언했다.

백악관 인사의 발언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국가에너지지배위원회의 재러드 에이건 집행위원장은 지난 7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 문제 때문에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이란)의 손에서 모든 석유를 빼앗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9일 CBS뉴스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 미국이 "많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현재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음에도 "그곳을 장악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한 것도 그냥 하는 말이 아닐 수 있다.

'스윙 프로듀서'로서의 美…가격과 시장 균형 조정

과거 미국 지도자들은 걸프 지역 분쟁 개입에 신중했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미국 주유소 가격도 올라 국민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판단한다. 미국의 생산력이 많이 늘어나 시장에 여유 공급이 존재하기 때문에, 중동에서 충격이 발생해도 경제적 타격은 과거보다 제한적일 것이라는 계산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해 6월 이란의 핵 시설 타격 전 유가 상승을 우려해 최대한 많은 시추에 나서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참모들은 미국과 우방이 장악한 물량이 워낙 많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위협해도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 안심시켰다. 실제로 당시, 국제 유가 상승은 제한적이었다.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 석유까지 통제하게 되면, 미국은 점점 세계 에너지 시장의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가 된다. 즉 공급을 늘리고 줄이며 가격과 시장 균형을 조정할 수 있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를 지렛대 삼아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대한 막후 통제권을 확보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압박…AI 경쟁까지 고려

'에너지 지배'는 중국 압박에도 직결된다. 중국은 석유 수입의 13.5%를 이란에서, 4%를 베네수엘라에서 조달해 왔다. 두 공급처가 모두 끊기면 중국은 수입량의 약 20%를 잃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부산 김해국제공항 옆 김해공군기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25.10.30 ⓒ 뉴스1 ⓒ 로이터=뉴스1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인공지능(AI) 경쟁에서도 화석 연료가 필요하다고 본다. AI 데이터센터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데, 태양광·풍력은 불안정하며, 오직 화석 연료만이 안정적인 공급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논리다.

향후 에너지를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연방법원 판결 이후 발생한 무역 적자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일반 시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중간선거를 앞두고 마가(MAGA) 지지층에게는 큰 정치적 성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란 석유 언급하지 않는 트럼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이란 군사 개입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에너지와 지정학이 결합된 패권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이번 전쟁이 벌어진 뒤에 트럼프는 석유 관련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애틀랜틱카운슬은 "전쟁 초기 트럼프 행정부는 유가 상승을 예의주시하며 긴장했다"며 "미국과 아랍 국가 관리들은 트럼프에게 공개 발언을 군사 작전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고 보도했다.

한 아랍 고위 관리는 "그도 이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다. 베네수엘라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9일 N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란 석유를 탈취할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물론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해왔다"라고 가능성을 열어 놨다. 트럼프의 신중한 입장에 대해 NBC는 "이란의 석유 일부를 통제하게 되면 미국과 중국 간 관계에 긴장이 생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역사적 전환점' 혹은 '전략적 실패'

하지만 상황이 트럼프의 계산대로 흘러갈지는 미지수이다. 국제 유가는 급등락을 반복하며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미국 내 휘발유 가격도 오름세를 보여왔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석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에너지의 대동맥이다. 미국의 생산량이 아무리 많아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에서 끊긴 하루 1500만~2000만 배럴의 물량을 즉각 대체할 수는 없다. 셰일 오일은 증산 결정에도 시장에 풀리는 데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중동 사태 영향으로 기름값이 2000원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자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 제도를 시행하기로 한 10일 오전 서울 성북구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이 주유를 하고 있다. 30년 만에 도입되는 최고가격제는 휘발유와 석유 제품의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 못하도록 하는 제도로, 정부는 이번 주 중 구체적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2026.3.10 ⓒ 뉴스1 김민지 기자

또 다른 문제는 동맹국들의 압박이다. 미국은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중동 석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 일본, 인도 등은 에너지 비용 폭등이라는 충격을 받고 있다. 고유가는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도 다시 자극하고 있다.

트럼프의 이란 전쟁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경제를 지배해온 중동 중심의 에너지 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거대한 도박이다. 만약 미국이 이란의 석유 통제권까지 손에 넣는다면, 트럼프는 '에너지 황제'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이 도박에는 막대한 판돈이 걸려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호르무즈 봉쇄가 이어진다면 트럼프에게 닥칠 역풍은 거셀 수밖에 없다. '에너지 지배'라는 구상이 역사적 전환점이 될지, 아니면 무모한 과욕이 부른 전략적 실패로 남을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