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더는 못살겠다"…총기불안·생활비 부담에 유럽 탈출 행렬

美, 작년 대공항 이후 첫 인구 유출 발생…미국인 해외 이주 열풍
WSJ "높은 연봉으로 누릴 높은 삶의 질에 매료…전 계층서 해외행"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30일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2026.1.30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건국 250주년을 맞은 미국이 새로운 인구 흐름의 전환점에 서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에는 대공항 이후 처음으로 인구 유출이 발생했다. 점점 더 많은 미국인이 해외로 이주하면서 '이민자의 나라'로 불려 온 미국은 이제 '이민을 떠나는 나라'가 돼 가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점점 더 많은 미국인이 높은 연봉 덕분에 누릴 수 있는 높은 삶의 질에 매료돼 해외로 이주하고 있다"며 미국인들의 해외 이주 현상을 분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는 유입 인구보다 유출 인구가 더 많은 인구 유출이 발생했다. 미국으로 이주해 온 사람보다 떠난 사람이 더 많았던 마지막 시기는 지난 1935년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인구 유출이 이민자 추방 강화와 신규 비자 발급 제한이라는 공약의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수십만 명의 불법 이민자가 추방되고 "수많은 초고액 자산가 외국인들이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100만 달러짜리 골드 카드를 구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WSJ은 50개국의 거주 허가, 해외 주택 구매, 유학생 등록 등의 지표를 분석해 미국인들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해외로 이주하고 있으며 이같은 흐름은 이미 수년 전부터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해 순유출 인구가 약 15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유입 인구도 지난 2023년 최고치인 600만 명을 기록한 뒤 감소 추세다. 지난해는 이 수치가 약 260만~270만 명으로 떨어졌다.

특히 유럽으로 향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유럽연합의 경우 27개 회원국 거의 모든 국가에서 거주와 취업을 목적으로 이주한 미국인 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포르투갈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거주 미국인 수가 500% 이상 급증했으며 2024년 한 해에만 36% 증가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내 미국인 거주민 수는 지난 10년 동안 거의 두 배로 늘었고, 체코에서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독일과 아일랜드는 지난해 미국으로 이주한 수보다 이주해 온 미국인이 더 많았다. 영국도 지난해 미국인들의 시민권 신청 건수가 2004년 기록 시작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이민 전문 업체들에 따르면 외국 여권을 취득하거나 해외 소득에 대한 세금을 피하기 위해 시민권 포기를 요청하는 미국인들의 문의가 수개월 동안 밀려 있는 상황이다.

또 외국 여권을 취득하거나 해외 소득에 대한 세금을 피하기 위해 시민권을 포기하려는 요청 건수가 지난 2024년 48% 급증했으며 2025년에는 이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거주 미국인들은 WSJ과의 인터뷰에서 경제적 유인, 생활 방식 선호도, 폭력 범죄, 높은 생활비, 불안정한 정치 상황 등 미국 사회 미래에 대한 실망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민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베를린에 거주하며 미국 댈러스에 있는 부동산 투자 회사에 소속된 크리스 포드(41)는 "5살짜리 아이가 유치원에서 총기 난사 대비 훈련을 받는 상황을 상상할 일은 없다"며 "미국의 임금이 더 높지만 유럽의 삶의 질은 더 높다"고 말했다.

이주 계층도 다양해졌다. 이제는 전문직·중년층·연금 수급자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현상이 됐다.

이주전문 회사 엑스패시 설립자 젠 바넷은 "예전에는 미국을 떠나는 사람들은 모험심이 강하고 자격증도 훌륭한 사람들이었지만 이제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 업체가 지난달 주최한 컨퍼런스콜에는 거의 400명의 미국인이 알바니아로 이주하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등록했다.

현재 멕시코 국경 너머에는 요양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곳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돌봄을 받기 위해 미국 노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뉴욕에서 보험 분석가로 일하며 8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지난 2024년 여름 알바니아로 이주한 켈리 맥코이는 무상 의료를 받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알바니아에서는 지금 당장 1000달러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렴한 학비에 해외 유학을 선택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학에 재학 중인 미국인 브로디 월크스는 "미국에서 기업에 다니며 고된 직장 생활을 하거나 LA에서 미친 듯이 비싼 집값에 시달리는 것보다 이런 삶의 방식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리스본으로 이주한 한 주민은 "이렇게 많은 미국인에게 둘러싸일 줄은 몰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보다 깊은 구조적·사회적 전환에 가깝다고 WSJ은 지적한다. 갤럽의 2008년 경기 침체 당시 조사에서 미국을 떠나고 싶다고 답한 미국인은 10명 중 1명이었지만 작년에는 5명 중 1명으로 증가했다.

유럽도 미국인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경제 활력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국가는 디지털노마드 비자 등 체류 규정을 완화하고 외국인 소득에 대해 일정 기간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제도를 손질했다.

템프 대학에서 수년간 이같은 추세를 연구해 온 케이틀린 조이스는 "이는 미국이 세계 최고라는 '미국 예외주의' 믿음이 약해지고 있으며 일부 미국인들은 해외의 복지 중심 사회를 더 선호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yeh2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