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트럼프 국정연설에 눈물이 났다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4일 국정연설을 지켜보다 눈물이 터져버렸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탈출한 20대 여성이 지난해 8월 열차에서 일면식도 없던 범인에게 칼부림을 당해 사망했는데 그녀의 엄마가 트럼프의 초청으로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딸을 둔 같은 엄마 입장에서 미국의 국가 지도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엄마가 받았을 위로가, 화면을 넘어 전해져 왔다.
25일 CNN이 여론조사업체 SSRS에 의뢰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시청자의 64%가 국정연설을 긍정 평가했다는데, 트럼프의 낮은 지지율과 비교하면 아마도 이런 극적인 연출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의도된 연출은 눈물을 넘어 공포를 향했다. 불법 이민자의 칼에 찔린 소녀의 피해 장면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묘사했고, 우크라이나 난민 소녀의 죽음도 자극적으로 표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작전 중 총탄에 맞은 헬기 조종사를 언급할 때도 처참한 부상 상태를 눈 앞에서 그릴 수밖에 없도록 설명했다.
장장 107분의 역대 최장 국정연설이 끝나고 나니 피비린내와 선혈이 기억의 대부분을 잡아먹었다.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폭력이 묘사된 적이 있었나 싶다. 피해자들의 공포에 질린 표정이 지워지지 않아,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욕지기가 들었을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강경한 이민 정책과 대외 군사 개입 등 트럼프표 정책의 정당성을 부각하기 위한 연출들이었다. 관세 정책이 사법부 제동으로 일격을 맞고 지표와 달리 시민들의 살림살이가 악화한 난국에서 '공포와 눈물'을 무기로 택한 것 같다.
MSNBC의 헤이즈 브라운 칼럼니스트 지적처럼 대중의 공포는 독재자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브라운 칼럼니스트는 국정연설 직후 "대통령은 이민자들을 폭력적으로, 민주당원들을 공범으로 묘사하기 위해 비극적인 죽음과 살인 사건들을 부각시키는 쪽을 택했다"고 평가했다.
설명과 설계 대신 감정이 전면에 서는 순간, 정치는 토론이 아니라 반응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반응이 표로 이어질 때 공포와 눈물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장치가 된다. 내세울 만한 정책이 사라진 자리를 감정으로 채우려 한 이번 국정연설은 성공했을까.
CNN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청자의 45%는 경제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고 평가했고, "생활비를 더 저렴하게 만들 것"이라는 신뢰는 31%에 그쳤다. 절반 가까이가 경제 문제를 외면했다고 느꼈다면, 공포와 신파로 끌어낸 표심이 11월 중간선거까지 온전히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더 중요한 질문은 '공포가 민주주의의 언어를 대체하기 시작할 때, 그 사회가 어디로 가느냐'일지도 모른다. 이 생각에 이르니, 처음 흘렸던 눈물과는 또 다른 이유로 슬퍼진다. 이래저래 슬픈 연설이었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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