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터닝포인트] 왕의 귀환이라고? 그렇지는 않다
미국에서 최근 군주제가 언급됨에 따라 불안감이 일고 있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군주제는 단순히 권력 장악과 으리으리한 궁전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1398년,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 2세는 바이에른 공작 알베르트 1세에게 터무니없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20년 넘게 왕좌에 앉아 있었고, 독재 본능을 억제하려는 정치적 압박에 시달려 왔다.
하지만 몇 달간 자유롭게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자, 그의 기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리처드 2세는 자신이 수년 동안 “어떤 역병보다도 파괴적인 음모로 악명이 자자한” 적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제 그는 자신에게 불쾌감을 안겼던 모든 사람을 추방하거나 처형하며 반격을 가했다. 그는 편지에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의해 우리의 응징적 엄격함이 그들의 파멸과 몰락에 내려졌다”고 썼다.
그는 자신의 왕국에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히’ 지속될 평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2세는 원래 과장이 심한 인물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치더라도 ‘영원히’ 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판단이었다.
18개월 후, 그는 왕좌에서 쫓겨났고 결국 살해당했다. 리처드 2세는 영국 역사상 최악의 왕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군주다. 그는 속이 좁고, 과장이 심하며, 편집증적이고, 복수심이 강했다.
과장과 거짓말을 일삼았고, 정치적 규범을 경멸했다. 무능하고, 허영심이 많았으며, 게으르고, 심술궂었다. 그는 자신의 변덕과 최고위직의 의무를 혼동했고, 대부분의 비판을 반역으로 치부했다. 또한,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하는 아첨꾼들로 주변을 채웠고, 그들의 맹목적인 충성심에 아낌없는 보상을 제공했다.
요컨대, 그는 중세 군주제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군주제는 제도, 헌법, 견제와 균형에 의해 제약을 받을 때조차도 여전히 단 한 사람(왕)과 가족, 친구, 추종자 등 그의 측근들에게 막대한 권력을 부여하는 정치 시스템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강력한 정치 이론에 따르면, 절대 권력이 올바른 통치자의 손에 있을 때(예: 에드워드 3세나 헨리 5세), 왕은 국경을 방어하고, 법을 수호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국민과 협의하여 통치하는 유능한 지도자일 수 있었다.
군사적으로 유능하며, 지적이고, 사려 깊고, 카리스마 있으며, 경건하고, 덕망 있고, 운이 좋은 왕은 절대적인(대개 세습적인) 권리를 가진 거의 신적인 존재로서, 국민이 애국심과 복종심을 느낄 수 있는 국가의 신화적 옹호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왕관이라는 유전학의 복권 당첨이 잘못된 머리에 떨어졌을 때,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 나쁜 왕은 정치적 규범을 무시하고, 권력을 남용하며, 도둑질을 일삼고,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폭정의 요소였다. 폭군은 왕권을 타락시켜 국가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제거하는 것 역시 정치 시스템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군주제는 오늘날 우리에게 국가를 운영하는 이상하고 구식인 방식, 즉 중세에 남겨두는 것이 가장 좋은 유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 그것은 기본 통치 방식이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의) 아테네 민주주의와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의) 로마 공화국의 고귀한 실험을 제외하고 말이다.
왕정 반대 운동은 프랑스와 미국 혁명과 함께 약 2세기 전에야 본격화됐다. 20세기 초까지도 전 세계에는 약 160개의 군주제 국가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43개국은 여전히 왕이나 여왕을 국가원수로 두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군주제 국가가 44개국일지도 모른다고?
이것이 ‘왕은 없다(No Kings)’ 운동의 주장이다. 2025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과 동시에 시작된 이 시위의 주최자들은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가 미국에 일종의 군주제를 세우려는 목표를 가진 일련의 권위주의적 권력 장악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불법 이민자 추적, 연방 지출 삭감, 초부유층 감세, 선거 축소 시도 등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을 다른 이름의 왕정으로 규정한다.
그들의 임무 선언문에는 “이 나라는 왕, 독재자, 폭군의 소유가 아니다. 이 나라는 우리 국민의 소유다……. 왕좌도, 왕관도, 왕도 없다”고 적혀 있다.
트럼프가 직접 이 표현을 조롱하지 않았더라면, 이들의 주장은 지나친 엄살로 치부되었을지도 모른다. 2025년 2월, 그가 뉴욕시의 혼잡 통행료 도입 시도를 무산시킨 후, 백악관의 X 계정은 트럼프가 왕관을 쓴 모습을 조롱하는 타임지 표지를 게시하면서 ‘국왕 폐하 만세(Long Live the King)’라는 문구를 달았다.
그보다 며칠 전에는 ‘트루스 소셜(Truth Social, 트럼프가 회장을 맡아 소유 중인 트럼프 미디어 & 테크놀로지 그룹이 개발·운영을 담당하는 SNS)’에 “자신의 나라를 구하는 자는 어떤 법도 위반하지 않는다”는 상투적인 문구를 게시했다.
군주제에 매료된 트럼프는 2025년 9월 이례적으로 두 번째 영국 국빈 방문을 단행했다. 그는 윈저성의 만찬에서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환대를 받았다.
한편, 본국에서는 백악관 집무실이 왕실처럼 금박 장식으로 변했다. 백악관 동쪽 별관은 러시아 차르나 가질 법한 새로운 무도회 장소를 만들기 위해 철거됐다.
트럼프는 첫 임기 동안 미국 헌법 제2조에 따라 “나는 대통령으로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짐이 곧 국가다(L’Etat, c’est moi)”라고 말했다는 일화와 섬뜩하게 닮아 있다.
트럼프의 반대파들이 독재, 군주제, 또는 폭정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트럼프 추종자들이 빠르게 옹호하는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는 예측은 가능하다.
2024년 선거 훨씬 전부터, 한스-헤르만 호페 같은 학자와 커티스 야빈 같은 미국의 보수 논객들은 미국 민주주의를 일종의 행정 군주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레드-필’ 정치(‘Red-Pill’ politics: 정치적 극단주의, 음모론, 그리고 사회 변화에 대한 경계심을 강조하는 인터넷 기반 정치 담론)라는 기술 친화적인 자유지상주의 그룹에서 지지자를 찾았다.
이들 사이에서는 성가신 민주 제도가 사회·경제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었다. 억만장자 기업가 피터 틸 같은 인물은 “나는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말로 이 견해를 가장 잘 드러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극심한 반미국적인 성향으로 여겨졌을 이러한 정서가 미국 내에 존재한다는 것은 이제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는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현재 세계의 다른 초강대국인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70대의 강력한 지도자들이 수년 동안 무기한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며, 그들의 권력기반은 점점 더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유세계 전반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민주주의 제도가 코로나 이후 시대의 문제들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유명인의 영향력이 세진 사회는 언론, 사법부, 의회 같은 전후 사회의 핵심 기관들이 변화를 거부하는 엘리트들에게 장악됐다고 보기 시작했다.
잠시 트럼프의 정부 효율성 고문을 맡았던 일론 머스크는, 거대하고 영구적인 관료제의 존재 때문에 유권자의 바람과 관계없이 민주주의가 의미 있는 변화를 구조적으로 방해받는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주된 해결책은 군주제 스타일의 칙령 통치였다. 즉, 행정명령을 폭풍처럼 쏟아내고, 다른 정부 부처의 반대를 무시하거나 밀어붙이며, 초부유층 과두정치인들에게는 그들의 지속적인 번영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충성을 요구하고, 독립적인 사고 능력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자신과의 가족 관계 또는 맹목적인 충성심 때문에 선택된 측근들로 구성된 내각에 의존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트럼프를 중세의 왕으로 만드는 것일까? 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반론이 있다. 1787년, 조지 3세가 식민지에서 쫓겨나고 새로운 미국이 만들어지고 있을 때, 알렉산더 해밀턴은 대통령이 헌법제정회의에서 선출되더라도 종신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어쩌면 미국이 군주제에 가장 가까웠던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밀턴의 제안은 수용되지 않았고, 대통령직은 4년 임기로 제한됐다. 이후 수정헌법 22조에 의해 법적으로 두 번까지만 재임할 수 있게 됐다. 트럼프가 헌법에 도전하려는 시도나, 스티브 배넌 같은 그의 전직 보좌관이자 팟캐스트 진행자의 2028년 트럼프 재출마 주장은 아직까지는
허세에 불과하다.
이 점이 중요하다. 중세 왕정을 다른 모든 통치 형태와 구별 짓는 한 가지 특징은 영속성과 세습성이다. 죽을 때까지 권력을 갖고, 그 후 왕위를 직계 상속인에게 물려주는 중세의 논리는 공권력의 근원과 흐름에 대한 모든 질문을 없애는 것이었다. 왕과 왕실의 시대를 초월한 인물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정치 체제가 구축될 수 있었다.
트럼프의 통치와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이 선은 아직 넘어가지 않았다. 진정한 미국 군주제는 단순히 ‘도널드 1세’를 왕위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 가문의 왕조를 세우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는 18세기 혁명에 필적하거나 그보다 더 큰 혁명이 될 것이다. 모든 소란과 시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의미의 왕의 귀환은 우리에겐 아득히 먼 이야기다.
※ 위 내용은 뉴욕타임스(NYT)가 발간하는 새해 전망서 '터닝 포인트 어젠다 2026(이하 '터닝 포인트')'에 수록된 기사다. 다채로운 콘텐츠로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혜안을 제공하는 '터닝 포인트'는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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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터닝 포인트: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권한 강화와 독재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2025년 6월과 10월에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노 킹스(No Kings, 왕은 없다)’ 집회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