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 정당" 트럼프, 심각성 깨닫고 움찔…"계속 일해줘" 유턴

사태 초기 '정당한 법 집행' 강조…韓 항의·분노와 국내외 언론 일제 비판에 입장 선회
백악관 "국토부·상무부, 비자 개선 등 검토"…트럼프, 석방 관련 "韓 원하는 대로 조치" 지시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09.07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지완 기자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구금했던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을 11일(현지시간) 석방했다. 이들은 공항으로 이동해 이날 낮 12시(한국시간 12일 새벽 1시)쯤 대한항공 전세기 편으로 귀국길에 오른다. 지난 4일 미국 이민단속당국에 의해 체포된 지 1주일 만이다.

특히 미국 측은 한국 요구대로 이날 새벽 구금시설에서 한국인들을 석방하면서 수갑을 채우지 않고 공항으로 이송했고, 향후 재입국시에도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불법 체류가 아니라는 주장을 미국 측도 받아들인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는 사태 초기 강경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분위기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다.

지난 4일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을 대거 투입해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을 급습한 트럼프 행정부는 "체포된 이들은 비자 및 체류 신분의 조건을 위반하여 불법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정당한 조치임을 강조했다.

특히 체포 이튿날인 5일에는 ICE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인 근로자들을 사슬로 묶고 수갑을 채워 중범죄자를 다루듯 체포하는 영상과 사진을 올려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헬리콥터까지 동원하고 500여명이 투입돼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장면에 "이게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는 동맹국에 할 짓이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한국인 근로자 석방을 위해 방미한 조현 외교부 장관은 10일 미국 워싱턴DC 주미한국대사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300여명의 우리 국민이 구금 시설에 갇혀 있어 이번 일을 초유의 사태로 인식했다"며 "무거운 마음을 갖고 워싱턴DC에 왔고 어떻게 강하게 분노를 전달할지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가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기습 단속·구금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ICE 홈페이지. 재판매 및 DB금지) 2025.9.6/뉴스1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5일 기자들과 만나 "(체포된)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고, ICE가 본분을 다했을 뿐"이라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한국 언론은 물론 미국과 유럽 언론들도 일제히 트럼프 행정부 최대 규모의 단일 사업장 이민 단속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주요 언론들은 미국 땅에 공장을 지으라는 요구와 그 공장을 짓는 외국 노동자를 체포하는 정책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모순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면서 해당국 근로자 비자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은 미국 정부의 실책이 지적됐다.

이번 사태로 인해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물론 다른 국가의 기업들까지 불안해 하며 우려가 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에 외국인 직원을 둔 다국적 기업들의 출장 중단과 법률 자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트럼프는 7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우리는 여러분의 투자를 환영하며,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위대한 기술을 지닌 뛰어난 인재들을 '합법적으로' 데려오도록 장려한다"며 "우리는 신속하게 그것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대신 요구하는 것은 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훈련시키는 것"이라며 대미 투자를 위한 기술 인재의 입국시 비자 발급을 완화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9일 정례 브리핑에서 '조지아주 공장 단속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규칙이나 비자 규정, 법적 조항 등에 변경을 검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국토안보부와 상무부가 이 문제를 공동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레빗은 "미국인들에 일자리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기업들이 이미 해당 기술을 보유한 근로자들을 데려올 필요성도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의 접근 방식은 매우 미묘하면서도 책임감 있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한층 전향적인 입장을 취했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체포·구금된 한국인들을 태울 대한항공 전세기(오른쪽)가 10일 미국 조지아주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대기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단속 직후인 5일 처음 말한 것과 7일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 9일 백악관 대변인 언급까지 (입장과 톤이) 달라진다"며 "(그러면서) 미국이 예상 못했던 조치(불이익 없는 자진 출국)를 취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조현 장관과 만나 이번 사안에 대한 한국 국민의 민감성을 이해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근로자들을 석방하기에 앞서 이들이 미국에 잔류하며 미국인을 훈련시켜줄 수 있느냐는 제안까지 했다. 추방 대상인 불법 체류자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귀국일이 11일로 하루 늦춰진 것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근로자들이 숙련공이라는 것을 인지한 뒤,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아 일하면서 미국 인력 교육훈련을 하는 방안과 혹은 그대로 귀국하는 방안에 대한 한국 측 의사를 물어왔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해 일단 귀국 절차를 중단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이에 조현 장관은 근로자들이 굉장히 놀라고 지친 상태이기 때문에 먼저 귀국했다가 다시 미국에 들어와서 일하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를 했고, 미측에서도 우리 의견을 존중해 귀국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ryupd0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