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다녀간 푸틴 열흘째 요지부동…트럼프 브로맨스 '헛일'

NYT "일관된 전략 대신 트럼프 개인에 의존…한계 드러내"
"근본 이해부터 잘못…푸틴, 우크라의 서방화 차단 원해"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정상 간 개인적 우정에 의존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브로맨스 외교'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이 열린 지 열흘 가까이 지났지만, 휴전도 없고 후속 정상회담도 없음을 지적했다.

러시아는 아직 정상회담을 위한 의제조차 준비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지도자들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파병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러시아는 되레 자신들이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체제에 참여해야 한다며 판을 뒤집으려 했다.

침략국 군대가 피해국 영토에 안전보장 당사자로 주둔하는 건 모순에 가깝다. NYT는 러시아의 이런 요구를 '여우에게 닭장을 맡기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엘멘도르프-리처드슨 합동 기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협상을 위한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 2025.8.15 ⓒ 로이터=뉴스1
무대는 화려하지만 합의는 실종

러시아가 이렇게 나오는 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일관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때로는 중재자로서 영토 양보를 전제로 한 '빅딜'을 시사하고, 때로는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약속하며 동맹들과 보조를 맞추는 듯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까지만 해도 "푸틴과 내가 만나기 전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공언하며 개인 설득력에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알래스카 회담은 과거 북미정상회담을 연상시키는 장면 연출에 비해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 일각에서는 전문적인 준비와 집행 구조 없이 정치 이벤트 중심으로 흘러가는 회담은 지속 가능한 결과를 낳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협상 전제인 '무조건적 휴전' 자체가 흔들렸다.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직후 갑자기 '휴전 말고 평화협정으로 직행하자'는 톤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러시아의 시간 끌기 전술에 걸려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왼쪽부터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외교정책보좌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맨 오른쪽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이들은 15일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 엘먼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열린 미국과의 회담에 참석했다. 2025.8.15 ⓒ AFP=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러시아, 영토보다 우크라의 서방 흡수 방지 추구

전현직 안보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지연 전술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 의존적인 성향을 활용한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영토 거래 가능성을 강조하지만 러시아의 목표는 영토 그 자체보다는 우크라이나의 서방화 차단에 가깝다. 이런 불일치가 협상의 개념 자체를 흐린다는 지적이다.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이보 달더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 갈등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하지만 러시아에 이 갈등은 우크라이나가 서방에 합류할 것인지 아니면 사실상 러시아의 통제하에 있을 것인지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자 억지 구조와 전범성 판단, 점령지의 법적 지위 등 고차 방정식을 동반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수 차례 경고한 '가혹한 제재'는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 이런 허울뿐인 위협은 러시아에 더 버티면 된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압박 수단이 없는 데드라인은 협상 지렛대가 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데드라인을 자꾸 미루기까지 한다.

오리시아 루체비치 채텀하우스 러시아 담당 부국장은 우크라이나 관련 사안의 핵심은 개인 신뢰가 아니라 집단 억지와 집행이라며 "핀란드 등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국가들이 강조하듯 약속과 서명으로는 러시아군을 멈추지 못한다. 실력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보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영토 교환만으로는 종전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감시와 안보, 재건과 납치 아동 송환 등 다층적인 의제가 필수"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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