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도심엔 무장 군인이, 워싱턴엔 탱크가[최종일의 월드 뷰]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최근 며칠 미국 CNN 방송에는 로스앤젤레스(LA) 시위 모습이 거의 하루 종일 나온다. 대부분 불법 이민자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경찰이나 주방위군과 대치하는 장면들인데 유혈 사태로 번질지 우려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동의 없이 주방위군 투입을 일방적으로 지시했고, 급기야 해병대 병력도 동원했다.
트럼프는 "불법 체류 외국인과 범죄자들의 침략과 점령"에 맞서 LA를 "해방하겠다"고 강경 대응을 합리화하려고 하지만, LA에서 최근 벌어진 이민단속 반대 시위의 폭력 수준이 전혀 군을 투입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은 동원된 군인들조차 동의할 것이다.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올 3월에 남부 국경을 통해 입국한 불법 이민자 수는 7181명에 그쳤다. 전년 동기 대비 95% 감소한 수치다. 백악관은 "트럼프 효과"라고 자평했다. 또 LA를 포함해 미국 전역에서 중범죄는 감소 추세를 보여왔다.
군대 동원은 질서 회복보다 복합적인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정책 실패로부터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고,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법과 질서'의 수호자란 이미지로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동시에 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뉴섬 주지사)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LA 시위대는 트럼프가 그간 미국 내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언급할 때 사용한 "내부의 적"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부의 적'이 더 큰 문제" "'내부의 적'은 중국, 러시아보다 위험하다"고 같은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고, 지난해 10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필요하다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이들을 저지해야 한다"라고까지 말했다.
시위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강성 우파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내부의 적을 규정하고 이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혐오와 분노를 자극해 대중을 동원하며, 자신을 강인한 마초 리더로 내세우는 전략이다. 핵심 공약에 대한 반대 의견은 묵살하고, 정책 집행을 위해 국가 폭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 모습도 그러하다.
국가권력에 대한 트럼프의 위험한 인식은 과거 인터뷰에서 잘 드러난다. 트럼프는 중국 톈안먼(천안문) 사태 발생 1년 뒤인 1990년 3월 플레이보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사악하고 끔찍했다. 하지만 힘으로 (학생들을) 진압했다"며 "이건 힘의 위력(power of strength)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나라(미국)는 현재 약체로 여겨진다. 다른 나라들은 우리나라에 침을 뱉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을 본받아야 한다는 투다.
트럼프의 배제와 분열, 갈라치기 정치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미국의 민주주의이다. 미국 전역의 정치학자 500여명이 민주주의 상황을 모니터하는 조직인 '브라이트라인 워치'가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다. 학자들이 부여한 미국 민주주의 이행 평가 지수는 지난해 11월 67점에서 올해 4월에는 53점으로 하락했다. 점수는 0이면 '완전한 독재'이고 100이면 '완전한 민주주의'를 뜻한다.
점수는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에서 60~70점에서 머물렀다. 트럼프가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고 시도했던 때에도 60점 아래로는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추락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미국을 포함한 9개국 비교에서 캐나다(88점)와 영국(83점)은 아주 높은 점수를 받았다. 폴란드(63점)와 멕시코(60점)도 미국을 앞섰다. 미국보다 낮은 나라는 이스라엘(49점), 헝가리(30점), 튀르키예(28점), 러시아(11점)가 있다.
서부 LA에 시위 진압을 위해 군 병력이 투입된 가운데 동부 워싱턴D.C에선 오는 14일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예정돼 있다. 미 육군 창설 250주년을 기념한다는데 마침(?) 그날이 트럼프의 79번째 생일날이다. 퍼레이드에는 약 6600명의 병력과 150대 이상의 전차, 장갑차 등 군용 차량, 약 50대의 군용기 등이 동원될 예정이다. 생일상 비용은 최대 4500만 달러(약 62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사 퍼레이드는 내부적으로 정권의 권위를 확립하고, 외부적으로는 국가의 군사력을 과시해 주변 국가나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주로 추진한다. 독재자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트럼프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고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것 외에 다른 개최 이유는 찾기 힘들다.
미국 매체들은 군사 퍼레이드가 시위 진압에 군 병력이 투입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비칠 수 있어 다수의 미군 전·현직 간부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국가 통합 세력의 상징인 군에 대한 미 국민들의 신뢰 추락은 피할 수 없을 듯 보인다. 외부에선 미국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 '미국이 다시 위대하게' 되고 있다기보단 '미국이 어쩌다가'란 생각이 계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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