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권도형 한국 송환 무효…다시 미국행 결정되나(종합)
몬테네그로 대법 원심 파기환송…"인도국 결정은 법무장관 몫"
美 민사재판 배심원단 사기혐의 인정…형사재판서 100년형도 가능
- 김성식 기자, 박재하 기자,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박재하 강민경 기자 = 몬테네그로에 체류 중인 암호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한국 송환이 없던 일이 됐다.
몬테네그로 대법원이 한국행 결정을 무효화하고 사건을 원심으로 돌려보내면서다. 미국 인도 결정을 내렸다가 한국행으로 번복했던 원심 결정이 대법원에서 또 한번 뒤집힌 것으로 권 대표의 최종 송환지가 미국이 될 가능성도 다시 열리게 됐다.
몬테네그로 일간지 포베다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대법원은 권 대표의 한국 송환을 결정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몬테네그로 대법은 이날 판결문을 통해 "동일 인물의 범죄인 인도를 두고 두 국가가 경합하는 상황에서 법원의 의무는 피고인의 인도 요건이 충족됐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며 "인도 우선순위는 법원이 아닌 주무부 장관이 결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사건은 1심인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이 맡게 됐다. 권 대표는 구금 기간이 만료되는 지난달 23일 한국 땅을 밟을 예정이었지만 송환 하루 전 몬테네그로 대법이 원심의 적법성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몬테네그로 대검찰청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건을 심리하면서 한국 송환이 보류됐다.
현지 법상 범죄인 인도 집행 권한은 몬테네그로 법무장관에게 있다. 몬테네그로 대검찰청은 이를 근거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이 권 대표의 한국 인도 허가를 직접 내린 건 월권이라고 봤고 이러한 논리를 몬테네그로 대법원도 이날 수용했다. 이로써 권 대표 인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법원 판결이 마무리되면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이 최종 결정하게 됐다.
금융사기 등의 혐의로 권 대표를 수사해 온 한국과 미국은 권 대표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몬테네그로를 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해 3월 각각 몬테네그로 법무부에 범죄인 인도를 공식 요청했다. 이에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지난 2월 권 대표 미국 인도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2심인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은 지난달 5일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이 미국보다 사흘 더 빨랐다며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지난달 7일 미국 인도를 결정한 기존 판결을 뒤집고 권 대표의 한국 인도를 결정했고, 지난달 20일 항소법원 역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
테라폼랩스에서 발행한 테라와 루나는 달러와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을 자처했지만, 2022년 5월 폭락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추산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400억 달러(약 53조 원) 상당의 피해를 입혔다. 같은 해 9월 한국 검찰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권 대표를 상대로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며, 이듬해 3월 미 뉴욕 연방검찰은 증권사기와 시세조작 등 8개 혐의로 권 대표를 기소했다.
당초 권 대표 송환지는 미국이 될 거란 전망이 우세했다. 안드레이 밀로비치 몬테네그로 법무장관은 지난해 11월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권 대표 인도와 관련해 "정치적인 문제"라며 "미국은 우리의 주요 외교정책 파트너"라고 밝혔다.
발칸반도에 자리한 몬테네그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기도 하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계기로 유럽의 안보 불안이 커지고 대서양 결속이 강화된 상황도 권 대표의 미국 송환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미국 법무부는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이 권 대표 미국 송환 결정을 뒤집고 한국행을 결정한 지난달 7일 즉각 성명을 내고 "양자협정과 국제조약을 토대로 권 대표의 신병 인도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몬테네그로 대법원이 권 대표 한국행에 제동을 걸면서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권 대표가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한국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은 경제 사범의 최고 형량이 약 40년이지만,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시행한다. 2022년 11월 파산한 암호화폐 거래소 FTX를 설립한 뱅크먼 프리드는 현재 사기 및 돈세탁 등 7개 혐의를 받고 있는데, 모두 인정될 경우 최대 징역 110년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 배경이다.
이날 미국 뉴욕에서 열린 민사재판에선 권 대표 사기 혐의를 인정하는 평결이 나왔다. 뉴욕 남부연방법원 배심원단은 가상화폐 테라가 안전하다고 속여 투자자들에게 거액의 손실을 입혔다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평결했다. 이날 평결은 2021년 11월 SEC가 권 대표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것으로, 권 대표가 미국에서 받는 형사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 한 달 전인 2022년 4월 한국을 출국한 권 대표는 11개월간 도피 행각을 벌이다가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코스타리카 국적의 위조 여권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돼 현지 법원에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이후 권 대표는 형기를 마쳤지만, 금융 사기 혐의를 수사하던 한국·미국 정부가 동시에 신병 인도를 요구하면서 몬테네그로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구금 기한이 연장됐다가 지난달 23일 구금 기한 만료로 출소했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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