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충격' 안겼던 닉슨의 50년 전 방중은 '실수'였을까

소련 견제는 성공했지만 신냉전 시대 개막
닉슨, 마오쩌둥과 '공동의 적' 소련 견제 합의…코뮈니케 성명

1972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방중해 마오쩌뚱과 만났다. ⓒ 뉴스1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 카탈로그)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1972년 2월21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냉전시절 소련과 사이가 좋지 못했던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헨리 키신저 당시 미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중국에 머물며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국가주석의 만남을 조율했고, 양국 정상은 끝내 '공동의 적'인 소련을 물리치는데 힘을 쏟겠다며 머리를 맞댔다. 닉슨 대통령은 자신의 방문을 "세계를 바꾼 일주일"이라고 불렀다.

닉슨 대통령, 키신저 보좌관과 함께 순방길에 올랐던 윈스턴 로드 주중 미국 대사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이들의 만남에 대해 "마오쩌둥은 직접적으로 대만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어려운 문제'를 당장 풀어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미-중이 나란히 소련 문제를 다루는 동안 대만 문제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고 시사하는 발언이었다"고 회상했다.

닉슨의 일주일간 방중은 '상하이 코뮈니케'로 알려진 공동성명이라는 결과물을 낳았다. 코뮈니케는 소련을 염두에 두고 미중이 경제, 문화 교류를 확장하겠다는 내용과 더불에 미군의 단계적 대만 철수 등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순방을 통해 양국은 연락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급진적인 변화를 꾀해 나갔으며, 미국이 중국을 경제적으로 일어서는데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현재,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신냉전 시대를 연상케 한다.

베이징에선 미국이 최종적인 쇠락의 단계에 있고 중국 시스템이 결국에는 우세할 것이란 관점을 가진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 2월4일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 당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공동 성명을 통해 "양국의 우정은 '무한'하며 협력이 금지된 분야는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022년 2월 4일 베이징에서 회담을 가지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김지현 기자

일각에서는 현 권력과 신흥 권력 사이 구조적 문제로 미중간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킹스 칼리지 런던의 제노 레오니 박사는 "많은 이들이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나면 미·중 간 긴장이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해 알래스카 앵커리지 '설전'부터 무역 분쟁, 냉전 이후 첫 올림픽 보이콧까지. 양국이 마주하고 있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은 대전략을 통해 독일, 일본, 중국과 같은 잠재적 경쟁국을 미국의 이익에 맞춘 세계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하도록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 전략은 중국의 부상 등 사례에서 보았듯 '블로 백(미국의 대외 강경책으로 인한 역풍)'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1972년 닉슨의 중국 방문이 '실수'였을까.

로드 전 주중 미 대사는 반 세기 전 닉슨의 중국 방문에 대해 '훌륭한 전략적 움직임'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당시 대안이 무엇이 있었나"라며 "우리가 중국과 손을 잡지 않았다면 미국은 소련과 군비통제 협정을 맺지 못했을 것이고, 베트남 전쟁을 끝내는 데 중국이나 소련의 도움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드는 "우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중국이 결코 부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관측은 말도 안된다. 중국 인구의 규모와 재능을 볼 때 이들은 부상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부상할 때 우리의 대안은 무엇이 있었나. 중국을 봉쇄하는 시도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이 동참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애당초 불가능 했다"고 말했다.

레오니 박사는 당시 닉슨의 방문에 대해 "세계 경제의 큰 성장과 냉전의 종식을 이끌었다"고 평가하면서도 "미국에 이익이 되는 이기적인 조치였다. 화해의 장기적인 의미에 대해 미국은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우드로 윌슨 센터 산하 키신저 미중연구소의 로버트 댈리 소장은 "비평가들이 닉슨의 방문을 중요한 '지정학적 체스 게임'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더욱 중요한 것은 50년 전 닉슨의 방중으로 양국간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이라고 가리켰다.

그는 "1972년 이전까지만 해도 양국은 안보의 관점에서만 서로를 봤지만, 닉슨의 방문 이후 양측은 서로를 인간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다시 안보 관점으로 서로를 바라 보는 것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비평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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