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in포커스] 2차례 美국방장관 지낸 '강성 매파' 럼스펠드 별세
최연소 및 최고령 국방장관 타이틀…"힘에 의한 평화" 주장
이라크 전쟁 실패 평가에도 "후세인 정권 축출해 안전한 세상 만들어졌다" 주장
- 김현 기자
(서울=뉴스1) 김현 기자 = 지난 29일(현지시간) 다발성 골수종으로 사망한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 국방장관은 2차례 미 국방장관을 지낸 '강성 매파'로 통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은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75년부터 1977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1년부터 2006년까지 2차례 미국의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최연소(43세) 국방장관이자, 최고령(74세) 국방장관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는 미국 대통령 4명을 보좌했고, 길리어드 사이언스 등 기업에서도 25년 가까이 몸담았다. 그는 1988년과 1996년 등 2차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럼스펠드는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했고, 1960년대 일리노이주에서 공화당으로 출마해 3선 하원 의원을 지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백악관 참모로 합류하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고, 경제기회국(OEO) 국장으로 대통령 경제보좌관과 브뤼셀 나토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했다.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뒤 럼스펠드는 워싱턴으로 복귀해 후임인 포드 전 대통령 밑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낼 때 럼스펠드 전 장관은 국방부 관료체제의 축소와 무기체계의 효율화 등 국방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 발생 이후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자 럼스펠드 전 장관은 그에 대한 전략 계획의 최고 집행자가 됐다. 이후 미국은 9·11 테러의 배후였던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을 진압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을 단행했다.
2003년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은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알카에다와 동맹을 하고 있으며, 대량살상무기를 소지하고 있어 곧 세계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럼즈펠드 전 장관은 이라크에 병력을 투입해 선제공격을 가했다. 바그다드를 3주 만에 함락시켰고 사담 후세인은 체포돼 처형됐다.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이라크내 거센 저항이 지속되면서 럼스펠드 전 장관은 사전에 충분한 계획을 짜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럼즈펠드 전 장관은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할 정도로 '강성 매파'로 유명했다.
NYT는 "럼스펠드 전 장관은 내각의 경쟁자들이나 의회 의원들, 군사적 통설들과 충돌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호전적"이었고, "베트남전 당시 재임했던 로버트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 이후 가장 강력한 실세 국방장관이었다"고 평가했다.
실제 포드 대통령 재임 시절 최연소 국방장관을 지낸 럼스펠드 전 장관은 당시 온건파인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대립각을 세우며 주목을 받았고, 부시 행정부 시절엔 이라크 전쟁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의 정치적 삶도 무너졌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완패하자 럼즈펠드 전 장관의 경질을 발표했고, 후임으로 로버트 게이츠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기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럼스펠드 전 장관은 이라크 전쟁이 실패했다는 평가에 대해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2011년 회고록 '노운 앤드 언노운(Known and Unknown)'에서 7000억 달러와 4400명의 미국인의 목숨을 앗아간 이라크 침공 결정에 대해 전혀 유감을 표명하지 않았고, 사담 후세인의 축출이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담 후세인의 잔혹한 정권을 제거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이고 안전한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썼다.
gayunlov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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