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핑크타이드' 모랄레스 사퇴에 둘로 나뉜 중남미

베네수·아르헨 등 시위대 비난…멕시코 망명 제안
브라질 "잘 됐다"… 콜롬비아·페루 "합법 선거 촉구"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 ⓒ AFP=뉴스1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의 부정선거 논란에 따른 불명예 퇴진을 둘러싸고 중남미 정치 지형이 극심한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모랄레스는 2000년대 초반 중남미를 휩쓸었던 '핑크 타이드'(온건한 사회주의 좌파 물결)의 마지막 멤버로 분류된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부정선거 의혹으로 지난 3주간 격렬한 반(反)정부 시위에 시달린 끝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2006년 1월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지도자'로 대통령궁에 입성한 지 13년 10개월 만이다.

그는 '핑크 타이드'의 대부격인 우고 차베스와 '남미 좌파의 아이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와 함께 반미(反美)·진보를 내세운 '남미연합(Unasur·우나수르)'를 구축한 인물이다.

이런 모랄레스의 사임에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등 좌파 지도자들은 반정부 시위를 '쿠데타'로 규정하고 모랄레스에게 연대를 표한 반면, 브라질·콜롬비아·페루 등 우파 정부는 모랄레스 사임에 환영의 뜻을 밝히는 등 분열과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가장 먼저 차베스의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모랄레스에게 '형제'라는 표현을 쓰며 좌파 동맹국들에게 지지를 요청했다. 마두로는 '핑크 타이드' 퇴조 이후 궁지에 몰렸다가, 최근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에서 좌파 정부가 들어서며 다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모랄레스의 오랜 동맹국 쿠바의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도 이날 트위터에 '연대'를 언급하며 "에보(모랄레스)의 생명과 자유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89년 만에 좌파 집권에 성공한 멕시코는 모랄레스에게 더 직접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마르셀로 에브라드 멕시코 외무장관은 이날 "모랄레스가 망명을 요청할 경우 그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당선인도 트위터를 통해 "군과 경찰, 폭력 시위의 결과로 쿠데타가 발생했다"며 "볼리비아의 붕괴는 용납할 수 없다"고 시위대를 규탄했다. 페르난데스는 국가 주도적 사회·경제정책을 옹호하는 중도 좌파 성향의 인물이다.

반면 우파 지도자들은 모랄레스의 사임에 한목소리로 환영의 뜻을 밝혔다. 콜롬비아와 페루는 성명을 통해 새 선거를 합법적으로 치를 것을 촉구했고, '극우 민족주의자'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심지어 모랄레스의 몰락을 반긴다는 입장을 밝혔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이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 ⓒ AFP=뉴스1

핑크 타이드란 1990년대 말부터 약 15년간 중남미 12개국 중 10개국에 좌파정권이 연달아 집권한 기조로, 1999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의 정권의 출범부터 시작됐다. 그러다 2015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석유와 구리 등 원자재값이 줄줄이 하락해 돈줄이 마르면서 핑크 타이드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 용어는 공산주의(보통 빨강으로 상징)와 비교해 온건한 좌파라는 의미에서 색이 다소 옅은 '핑크', 그리고 파도가 물결치듯 정권이 들어선다는 '타이드'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그러나 핑크타이드가 아예 사라졌다고 보기엔 이르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는 부정부패와 불평등, 빈곤에 대한 분노를 파고 든 좌파 세력이 정권 교체에 성공했고, 우파가 집권한 에콰도르와 칠레에서도 최근 들어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angela0204@news1.kr